6시에 아기를 데리러 가면, 아기는 어딘가에서라도 좀 더 놀고 싶은데 놀이터를 가기에는 너무 무덥다. 그래도 놀다 들어가겠다고 떼를 써서 잠시 놀려보니 얼굴이 소세지처럼 달아올라서는 보는 내가 다 힘들 지경이었다.
근처 키즈카페에 가는 것도 한계가 있고, 친구네 집에서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이 시간에 고궁도 가고 이케아도 갈 수 있을 텐데, 수영장가서 우리 아기 물놀이 도 시켜주고 싶은데.. 정말 아무리 마음을 먹어봐도 운전은 안되겠다....... 왜 남들 모두 하는 일이 이렇게 매번 어려울까. 운전도, 직업을 갖는 일도, 결혼도. 신세한탄에 빠지려는 찰나에 마당이 있는 교회친구네서 풀장을 해놨다고 얼른 오라고 연락이 와서, 언제나처럼 간신히 구해졌었다. 그래도 운전은 정말 해야하는데.
오늘은 팀과제 중에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동기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숨죽여 전화를 받으니, 그동안 아르바이트했던 입금내역을 보내라고 한다.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은 것과 결혼 후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것이 변호사의 주력 공략 테마(?)여서 그가 마지막으로 생활비를 입금한 기록과 내가 따로 경제활동을 하며 노력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것이 하나 주어지면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인 성격이라 빨리 해야했다. 동기들 앞에서 열심히 보고서를 쓰는 척 하며. 정말 안되는 능력과 머리를 쥐어짜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찾아내어 은행 홈페이지들에 접속하고. 옛날 입금내역을 하나하나 캡쳐해서 보냈다.
그간의 입금내역을 보다보니, 그래도 결혼하고 나서 1년간은 생활비를 보냈더라.내 용돈이다. 60만원을 받으면 30만원은 저축을 하고 30만원으로 생활을 했었다. 그 땐. 아마도 내가 어머님께 1주일에 한번씩 새로운 요리로 저녁을 만들어 갔으니 그 돈이 아깝지 않았겠지. 아니 아까웠지만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름 연애시절 부르던 애칭들로 입금을 했는데, 그 때도 흔쾌히 주지는 않았고, 꼬박 1년간 수요일 저녁엔 어머님께 전화를 하고 토요일엔 오후부터 시댁을 가는 일정이 기억이 나서 내역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변호사와 통화를 마치고 부터 몸이 이상하더니, 집에 간신히 들어와서 다 토하고 한참을 누워있다가 늦게 아기를 데리고 왔다.
이제 그나마 이혼을 조금 잊고 살았는데, 다시 시작인건가. 다음날엔 또 가압류 결정에 따른 공탁금 연락이 왔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변호사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과 통화를 했는데...아무튼 내가 2천만원을 공탁해야 하는데, 그게 보증보험으로 되는 것이고.... 그러려면 등기비와 무슨무슨 돈해서 70만원 정도를 입금해야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보증보험에 전화를 하고 정말 여기저기 전화하고 시키는 대로 하며 입금도 하고.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후에 알아보니,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에 가압류를 하면 채무자는 그 재산을 사용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가압류의 전제가 된 소송이 이유없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면 소송기간동안 채무자는 불필요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므로 채권자의 가압류를 남용하지 않도록 통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사용이익 정도를 미리 추정해서 공탁을 하라는 것이다.
내 경우는 가압류 대상 재산이 2억 정도 였으므로 10%인 2천만원을 공탁하라고 했고, 대부분이 그렇듯 공탁하기는 쉽지 않으니 그걸 서울보증보험같은 곳에서 보험료를 받고 대신 처리해준다.
보험료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법원에서의 가압류 등기비가 꽤 비싸서 70만원을 입금해야했다. 통장의 마이너스 액수가 늘어갈 때마다 괜히 시작한 것은 아닐까 불안해진다. 그리고 다시 말씀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주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확신을 주신다. 내 선택에 대해서 주님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나를 그를 믿고 내 선택에 책임질 것이다. 나의 여정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
보증보험료 납부를 끝으로 가압류 결정이 나왔다. 남편 소유의 작은 반지하 빌라에 법원이 가압류 결정을 내렸다. 작은 건물과 이 빌라 두개 중에 어디에 가압류를 할 것이냐로 잠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소가에 미치지 못해도 할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 충분하다. 이미 감당 불가의 자극일테니 필요이상으로 키우지 말자. 그 건물은 아버님 유산이라, 얼굴 한 번 못 뵈었던 아버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소가를 적었다 해도 내 청구가 그대로 받아들여질 리도 없으니. 그리고 2억 넘게 나오면 다시 잔액을 청구해도 되니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명의의 재산이 있는 사람이랑 결혼을 해서 이런 것도 가능한 것인가, 쓴웃음이 나왔다. 한켠에서는 니가 이래봤자 어쨋든 그 쪽에서는 집안 말아먹으려 하는 나쁜년이야. 하는 자조섞인 비웃음도 들렸지만 상관없다. 해야할 일을 양심의 범위에서 하는 것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혼소장과 가압류 결정이 언제, 그에게 도달할 것인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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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정말 뭔가 더 제출하고 돈낼 일은 없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소송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빡빡하게 예산을 잡으시면 충격이 더 크니.. 꼭 넉넉히 준비하시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닌지라 저도 참 속상합니다 ㅠㅠ 가용범위를 천만원 정도는 생각하셔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처음 소 제기하고 2주 정도가 죽을 듯 힘들었어요. 딱 이 이야기까지가 2주입니다. 그 기간만 잘 참으시면 할 만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진행하시는 분들, 이미 지나오신 분들, 그리고 고민하며 준비하시는 분들께 제 응원도 드립니다. 힘내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