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중보예배가 있는 날이다. 맨 뒷줄에 앉아 있는 나를 둘러싸고, 권사언니들이 기도해 주었다. 힘이 센 천사들이 이렇게 날 둘러서 보호해주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선하고 공의로우신 주님을 믿는다. 그분이 매일매일 내게 주시는 말씀을 믿는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아빠 엄마 출근길에 아이를 데리고 따라나섰다. 친정에 아기랑 둘이 있으면 갑자기 충동적으로 원래 살던 집에 갈까 봐 무섭기도 하고, 멍하니 있는 그 시간을 견딜 수가 없다. 늘 아기를 데리고 다니던 길들. 그런 길들을 다시 밟고 싶은 충동은 정말 억제하기가 힘들다. 늘 하던 것을 왜 못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바라는 내 안의 죄성이 참 힘들고 싫다. 이럴 땐 공간을 바꿔버리는 것이 정답이고. 그렇게 바꿔버릴 공간이 있다는 것 또한 정말 감사한 일이다.
가는 길에 이케아에 가서 아기와 여기저기를 다녀보았다. 앞으로 꾸밀 새로운 집에 대한 구상도 해보지만, 사실 아직도 이전 집 생각이 더 컸다. 오는 사람마다 칭찬하던 아담하고 깨끗한 집이었는데... 생각 끝에 보게된 침대에 파고 들어가 누워보는 아이의 얼굴은 한층 안쓰러웠다.
아빠가 보고 싶을까. 집에 가고 싶을까....?
마음이 바닥까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그런 생각을 떨친다. 아이의 아빠가 없어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빠를 만날 것이고, 다만 부모가 같이 살지 않을 뿐이다. 그 여백은 내가 열심히 메꿀 것이고,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일은 추호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하나님이 이 아이를 지켜주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아기를, 나를, 그리고 우리 교회를, 모두 강하게 지켜주실 것이다. 내가 할 일은 흔들리지 않는 것,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눈을 돌리지 않는 것.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 주신 힘으로 할 수 있다.
더운 날 아빠엄마의 좁은 가게에서나마 시원하게 낮잠 자고 일어난 아기를 데리고 놀이터에도 가고, 나는 중간에 보고서도 잠시 쓰고, 월급으로 다양한 것을 마음껏 살 수 있으니 그것도 참 좋은 일이었다.
다음날인 주일은, 더더더 마음이 놓이는 날. 예배를 드리려고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휴지 무더기를 갖다주었다. 너무너무 고마운 마음들. 다행히 많이 진정이 되어서 이제 그렇게까지 울고 힘들지는 않다. 주님 앞에서 우는 것은 감사해서다. 이런 일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해서. 그뿐이다 정말.
오후에는 다시 보고서를 쓰러 나갔다. 한 달 동안 진행될 이 과제는 연수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모두들 엄청나게 몰두를 한다. 나는 나이가 먹어서인지, 원래 좀 모자란 애가 가짜로 시험을 붙어서인지 사실, 따라기가 벅차다. 열심히 찾은 논문을 읽고 내용파악을 하고 나면 동기들은 어느새 또 저만치 가있다. 좌뇌로는 수험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자괴감에 시달리며, 우뇌로는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스터디 장소가 있는 용산역을 나서서 걸어가다보면, 즐비하게 와인바들이 있고, 모두들 그 안에서 옅은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 창에 비친 나는 또 이렇게 버거운 짐을 메고 허덕이며 가고 있다.
능숙하고 아름다운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미숙한 채로 백팩을 메고 거리를 떠도는 이 느낌이 너무너무 힘들고 싫었다. 근처에 산다는 미혼인 친구한테 연락을 해보고 싶었지만 사실 지금 만나면 이혼얘기만 줄줄 나올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망설였다. 그러면서도 끝내 볼 수 있냐는 연락은 해버렸는데, 그래도 다행히 그 친구가 제주도에 가 있다고 해서 잘 지나갔다.
보고서 쓰기가 끝나고 먹을 것을 주렁주렁 사들고 집에 오니 아빠와 엄마가 가구를 옮겨놓았다. 창고처럼 쓰이던 옷방에 아기가 이곳을 편안히 여기도록 아기방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흘리듯 말한 것을 들어준 아빠 엄마. 참 고맙고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나는 이제 내 밥벌이를 하니까 적어도 엄마아빠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까 정말 괜찮다. 괜찮다.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혼을 겪으며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쓰고 있습니다. 극히 개인적인 부분들을 뺄까 하다가.. 그래도 현장감과 진실성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넣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