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보자
아기는 어린이집을 옮겼다. 마냥 데리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되도록 안전하게 어린이집을 옮긴 것이지만 적응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초면인 선생님께 밝히고 싶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고 적응기간 동안은 2시간만 어린이집에 있다가 시간을 쪼개어 친정 부모님과 내가 번갈아 데리고 있기로 했다. 정말로 닥치는 일들만 바로바로 처리하기도 벅차다. 조금 먼 일은 생각할 여유도 없다.
때로는 슬프고 아프다. 그럼에도 달리 다른 방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프고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공상태보다는 훨씬 괜찮다. 언젠가는 이 시간이 끝날 것을 알고 있다. 꾸역꾸역 되도 않는 공간을 살고 있는 것 같아도 시간은 흐를 것이고, 엉망진창인 일들은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러니 불평이 아니라 감사를 해야 한다.
이혼스토리를 보내고, 바로 다음날로 변호사가 소장을 보내왔다. 읽어보고 내가 고치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나니, 법원에 접수했다는 연락이 왔다. 7말 8초는 법원의 휴가기간이라 진행이 조금 늦을 것이다. 변호사가 이런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지는 않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찾았다. 이미 변호사에게는 물어볼 것이 너무 많아서 이런 지엽적인 것까지 물어가며 귀찮게 할 수는 없었다. 가압류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안 하면 또 어떻게 되는지. 이 부동산 말고 다른 부동산에 하는 것은 어떨지.. 이런 법적이고 실무적인 것들은 물어도 물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이제 어느 정도 진행이 된 것인가. 나 정말 이 소송절차를 잠시라도 잊고 싶은데... 근데 왠지 안 끝날 것 같아...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있을 때 즈음. 또 연락이 왔다. 보정명령을 이행하라고 한다.
무슨 보정명령인가 메일을 보니 이혼과 관련된 법원 영상을 보고 소감문을 써내는 것. 오늘은 연수가 끝나고 저녁에 팀과제 보고서를 쓰기 위해 나가야 하니. 바로 영상을 틀고 소감문을 썼다. 두 세장되는 분량인데 빨리 보고 빨리 썼다. 태생이 예민하게 태어나서 어려서도 아빠 엄마의 싸움을 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지금도 아빠엄마가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다투면, 초등학교 3학년 짜리로 돌아가 떨고 있는 내가 보인다. 절대로, 절대로 이혼의 과정을 아이에게 보이지 않으리라. 어떤 이야기든 감정을 섞지 말고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그러지 못할 바엔 차라리 같이 살면서 싸우는 게 낫다. 이왕 아이 아빠와 분리될 바에는 아기에게 아빠 엄마의 부정적인 마음은 전가시키지 않아야 한다.
소감문은 자필로 쓴다. 출력이 필요하니 또 교회로 기어가 출력을 해서 꾹꾹 눌러썼다. 늘 염두에 두던 생각을 쏟아내는 것이라 힘들지는 않았는데 사건번호를 보는 것은, 속상하다.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원고와 피고, 그리고 사건 본인. 그냥 오붓이 살 수 있었던 우리 세 식구가, 제도의 이름으로 규정지어졌다. 내가 끌고 온 상황이긴 해도, 정말로 진심으로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어버렸다.
나만 일을 해도, 정말 상관이 없었다. 남편은 능력이 없어도 집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그저 너는 놀더라도 실질적으로 월세를 벌어오는 거다. 생각하면 사실 억울할 것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상황에 사람의 욕심이 개입되면 지옥이 된다. 어머니는 나의 합격을 적잖이 당황해하며 축하해주지 못하는 맥락 없는 모성을 가지고 있었고, 남편은 늘 품고 있었으나 입증되지 않았던 자격지심을 마음껏 분출하기 시작했었다. 내 존재가 본인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너무 당연했다. 되받아 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디 두고 봐. 내가 이만큼 있는 게 너한테 얼마나 득이었는지.. 설사 내가 시험에 못 붙은 상태였어도 나라는 존재가 너한테 얼마나 득이 되었었는지 곧 알게 될 거야.
공무원 시험을 붙으면 바로 육아휴직을 하고 로스쿨을 가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정말 말 같지도 않은 계획. 그 따위 생각이나 하는 너한테 좋은 일이 생길 리 없어... 그렇게 불성실한 태도로 모자란 머리나 굴리며 사는 너한테 보상이 주어질 리 없어. 시험에 붙을 리도 없거니와, 이혼을 하면 붙어도 육아휴직 같은 거 절대 못 쓸 텐데 말이지. 연애할 때도 대책 없는 타입이다..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한 죄책으로 돌아오기에 이제는 중간중간 끊어버리고 마는 회상들.
어제는 일이 많았던 날이다. 난 왜 그랬을까. 2주면 아이의 안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소장을 접수하고 송달되는 데에 한 달이 넘게 걸릴 것이며. 그렇게 진행되어 첫 기일이 8개월 만에 열렸다는 사람도 있다. 상대방의 답변서 제출에도 한 달이라는 기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임시양육자 지정은 어쨌든 기일이 열려야 되는 것인데, 그게 멘붕이었다. 아기가 위험하게 있으면 안 되는 데. 아기의 상태가 이렇게 불안정하면, 이런 스트레스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인데....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보니 왜인지 임시양육권자 지정신청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고!!!!!!! ( 아마, 깜빡했던 듯 - 이래서 변호사만 믿지 말고 즁요하다고 생각하는 토픽은 점검을 해야 한다 ) 임시양육권자지정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정말 머리를 얻어맞은 상태로 언제까지 집을 나서며 주위를 둘러보고 덜덜 떨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니 또 아득해져서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자. 지금 상황을 잘 판단해 보자.
변호사의 말은 일단 소를 제기하고 나면, 그래도 소제기 후에 저쪽에서 아이를 뺏어가도, 재판부에 이의신청을 해서 다시 데려올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그전까지 조심하라는 이야기. 그래서 소장이 접수되는 2주간은 각별히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거였다..... 아무튼 일단 접수는 했고, 나머지 과정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장사를 해야 하고 언제까지나 아이를 데리고 있을 수는 없고. 나는 연수를 듣고 보고서를 쓰러 나가야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마음을 비우기에 지금은 너무 중요한 상황이다. 최선을 다했더라도, 결과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기를 빼앗겨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소송의 성패를 떠나서, 법원에 이의신청을 해서 빼앗아 온다고 해도, 그 와중에 받는 아기의 상처는 어떻게 하겠는가.. 다시 찾아오는 과정도 험난할뿐더러 아기가 불안정하게 지낼 것을 생각하면 모든 사고가 정지된다.
하루하루가 무섭다. 정말 정말 무서웠다. 캐나다에 사는 언니가 곧 들어와서 한달을 있는다고 했다. 오랜만에 언니 얼굴을 보면, 그리고 같이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 굉장히 좋을 거야.. 그리고 우리 언니는 전투력이 충만하니까, 혹시 내가 합숙 연수를 가서 집에 없어도 어떻게든 우리 아기를 우리의 일상을, 잘 지켜줄 거야. 그러면 마음이 좀 놓일 테니....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