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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Feb 24. 2024

이혼일기(53)

눈동자

30대 초중반에, 굉장한 위기감에 시달렸었다. 내 나름의 생각으로 너무 억울하고 아쉽게 떨어졌던 시험은 좀처럼 되지 않았다. 그냥 시험에 떨어진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커멓고 두꺼운 저주구름이 내 삶에 아주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빠져나가려 해도, 이 구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잠시라도 따뜻한 햇빛을 쬐고 들어오면 힘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무엇을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나빠져만 갔다.

죽을 힘을 내어 시험 전날의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이기고 간신히 시험을 보았는데, 시험이 끝나면 참담한 시험의 결과만 남았고. 제대로 쉬거나 마음을 풀지도 못한 채로 아프고 괴롭고 끝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또 내 몫이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게 죽을까..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믿었던, 나를 지켜주셨던 하나님을 한번만 만나보고 싶다. 만나서 나 왜 이렇게 된 거냐고 한번 여쭤보고 싶다... 억지로 엄마에게서 분리당한 아이가 본능적으로  젖냄새를 그리워하듯 괴롭고 고통스럽게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런 시간을 보내서인지, 육아와 공부를 병행했던 시절도, 이혼도,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기 힘든 것은 할 수 없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업고 뛰어서 출근할 때마다 입에서는 오래달리기 할 때처럼 피맛이 나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인데  직장에서 상급자로 앉아있는 것이 몹시 부끄러울 때가 있지만, 이건 그냥 힘든 것이다. 아무튼 내가 있어도 좋다. 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돌아가서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눈 맞춰줄 사람이 있다면, 그건 모두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은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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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에서 아이는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변덕도 자주 부렸다. 회전목마는 타기 싫다고 했다가 줄이 늘어난 타이밍이 되면 타고 싶다고 했다가, 사탕젤리도 양껏 사고 싶고 풍선도 사고 싶고. 원하는 것이 참 많았다.

사실 모두 너무 비싸...기도 했지만, 원하는 것을 다 사주기는 것이 오히려 간단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여러번 고민을 한다. 그리고 논리를 만든다. 내 기분대로 사주어서는 안되고, 안사줄때는 아이도 납득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대야한다. 그런 신경을 잘게 쪼개어 쓰는 것이 또 쉽지 않았다.

아이 손에 들린 로티로리의 커다란 풍선과 함께 집으로 왔다. 그래도 전리품처럼 한동안 두고 볼 기념될만한 것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였다. 5시가 넘어 들어갔으니 놀이기구를 몇개 타고, 퍼레이드를 보고,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나왔는데 이미 9시가 다 되었고,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오니 9시 반이 넘었다. 빨리 씻고 자고 내일 다시 출근을 해야한다. 사실 내 출근보다 아이의 잠이 제일 문제였다.

 10시에 잠들어도 7시반에 일어나면 수면시간이 9시간 반 밖에 되지 않았다. 충분히 자고 잘 먹어야 잘 클텐데.. 마음이 급해져서 옷을 벗기려는데, 이제는 또 영상을 보겠다고 우긴다.

아가, 너 오늘 굉장히 재밌는데 다녀왔잖아. 그러면 난나(영상)는 안보는 거야.


- 아냐! 볼거야! 보고 싶어!


안돼. 오늘은 안돼. 그냥 엄마랑 책보다가 자는거야. 


- 엄마는 나쁜 엄마야! 나는 엄마랑 안살고 아빠랑 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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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빤한 아이들은 이런 소리도 한다.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사는 것도, 그리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 이런 협박이 먹힌다는 것도 아는 것이다.

이미 여러번 들었던 소리다. 이런 헛소리를 하면 지지 않고 나도 대꾸했었다.

난 너랑 오래오래 살거야! 니가 아무리 그래도 엄마는 너랑 오래오래 살을거야! 엄마는 죽을 때까지 우리 아기를 사랑하니까! 

근데, 이 날은 그러지 못했다.

하루 종일, 괴로움에 시달렸었다. 그럼에도 내가 참고 버틴 이유는 우리 아이가 내 곁에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 생각을 하며 종일 분노도 슬픔도 흘려보냈는데, 이제는 한꼬집의 기운도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아서. 더는 그 소리에 평소처럼 힘차게 맞받아칠 수가 없었다.

아가, 엄마 너무 슬퍼.

한마디를 남기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머리를 감았다. 아이 앞에서 목놓아 울 수도 없고, 같이 화를 낼 수도 없다. 그건 내가 이혼하며 나와 한 가장 큰 약속이었다. 절대로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 절대로 내 아픔과 서러움을 아이에게 보이지 말자.

머리를 감고 있는데, 화장실 문이 열린다. 다시 닫혔다. 또 한번 열린다. 또 닫혔다. 이제는 헹구고 수건으로 덮고 있는데,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엄마, 왜 슬퍼..?


니가 엄마를 배려해주지 않아서. 그래서 슬퍼.

다시 문이 닫히고, 나는 머리를 털고 언제나 그랬듯, 드라이어로 앞머리만 최소한으로 말리고 나갔다.

아이는 외투도 벗지 않은 채로 엄지손가락으로 문을 문지르고 있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눈이 시뻘겋게 부어서는 딸꾹질하듯, 숨을 몰아쉬고 있는 작은 가슴을 끌어 안았다.

아가, 이제 엄마랑 사이좋게 지내자. 싸우지 말고, 서로 슬프게 하지 말고.

와아앙. 터지는 울음이 오히려 고맙다.

엄마가 슬프다고 해서 불안했구나, 엄마가 화난 것 같아서 속상했어?

 얼굴을 손으로 감싸쥐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 속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내 얼굴이 비춰보인다.

화장을 다 지워 초라해도, 이렇게 못생겼어도, 매일 매일 늙어가도 내 옆을 맴돌아주는 아기는 정말. 이미 나에게 넘치도록 고마운 존재였다.

그러니, 기운이 없다고 서운해하지 말자. 다만,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은 되도록 안해야한다는 것만 알려줘야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혼자 냉동되어 가는 듯이 외롭던 그 때에 비하면,

아이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때로, 내 역량을 뛰어넘는 비참한 상황이라도.

하기 힘든 것은 할 수 없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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