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우고 나면 졸린 눈을 뒤집고 나와 밀린 집안일들을 한다. 건조기에 들어갔던 빨래들을 꺼내어 개고, 어지럽혀진 집안을 정리하고.
어거지로 굳어진 육신을 펴고 앉아 또 어거지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운동을 못한 지 3달이 되었다. 나이가 40대 중반이 되니, 운동은 모양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닌 생존의 필수 요건이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피가 몸 구석구석까지 가지 않는다. 쉬 피곤해지고, 화장실도 못가고 소화는 당연하고. 낯빛도 그럴 것이고, 아무튼 하지 않으면 정말 안되는 나이가 되었다.
유튜브를 켜고 몸 여기저기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어깨를 내리고 척추를 펴본다. 이렇게라도 해서 내일의 내가 괜찮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정기일에 나가서도 내가 엄청 엄청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두고두고 후회하고 아깝게 만들어야지. 때깔좋게 보이려면... 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운동은 하고 자야한다.. -_-
분명히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하며 가사조사 몇번을 빼고는 상대방을 만날 일은 없다고 했는데. 이건 뭐 만나지 않아도 되는 날은 고작 변론준비기일과 변론 기일 2번 이었을 뿐, 조정 2번 가사조사 2번 에 또 조정을 하게 되어서 만나는 날이 안만나는 날보다 많아졌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인생 중에서 더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송사.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번이나 생각했지만 일상을 문서화하는 과정을 참 괴롭고 지치고 힘이 든다. 그래서 좋은 변호사를 만나서 지지받고 따라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다.
다시 시작된 조정은, 지겨웠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난 이 정도를 받아야겠고, 저 쪽은 줄 수 없다. 팽팽하게 맞서는 중에 난감해하는 조정위원의 얼굴을 보는 것도. 익숙하고 또 지겹다.
달라진 것은 상대방이 이제는 이혼 자체를 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다. 그는 이혼을 할 수 없으니 부부상담을 하게 해달라고 몇장이나 써들고 왔다. 도대체 정말 몇번째 말을 바꾸냐.. 왜 이러는 거냐... 처음에 한다고 했잖아 합의해달라고 까지 했잖아? 여러차례의 말이 오가고, 조정위원에게 아니 이건 말이 안된다고 말하다가 화가 나서 엉겁결에 나온 말은.
그럼! 자기가 소장에 쓴대로! 그 거짓말 대로 저한테 그 집 명의이전하라고 하세요. 그러면 제가 이혼 다시 생각해볼게요! 근데, 절대 안그럴 걸요?
?? 하는 변호사와 조정위원에게 자초지종을 또 설명한다. 소송이랑 항상 이렇게 내 상태를 상대방이 알아듣게 설명해야하는 과정이다.
그가 낸 답변서에. 내가 한달 동안을 그의 명의로된 부동산을 이전해달라고 집요하게 졸라서 괴로웠다고 썼었다.
시댁이 투자목적으로 그 집을 산 것은 알고 있었다. 변두리에서도 구석에 있는 작은 다세대주택의 반지하층. 그 집에 남편의 매형 주도로 두개인가를 그 가족들이 매입했고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어서, 중간에 아버님 산소다녀오는 길에 들른 적이 있다.
그 뿐이었다. 그게 얼만지 뭐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소를 제기할 때 남편의 재산 중에 그게 있다는 걸 기억해냈고, 더듬더듬 갔던 길을 되돌아 주소도 기억해냈다. 그래서 그 때 시가 2억 정도의 그 집을 가압류 했었다. 내 소송의 가액과도 얼추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전적으로 키우며 용돈도 받지 못하고 양육수당 10만원을 들고, 아이용품을 중고로 사며 근근히 살았는데 언감생심 이런 내가 부동산 명의이전을 요구했다니 정말 가만두지 않을거야.. 다짐하게 했던 바로 그 집.
그거 주면, 이혼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지금은 1억 5천으로 떨어졌어도 상관 없었다. 변호사는 자신도 이런 케이스를 다뤄보았다고. 그들은 황혼이혼이었는데 아파트 명의를 아내에게 이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했다.
어차피 이혼소송이 마무리 되어도 재산분할을 받게 될 액수와 근사하니 그간 답이 없어보였던 조정위원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하며 얼굴에 화색까지 돌았다.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다. 나랑 살고 싶으면, 니가 했던 행동들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맨입으로는 안돼. 니가 너희 집안이 소중히 여기는 재산 한귀퉁이를 헐면, 내가 그 진정성을 믿어줄게. 그러면 설사 같이 살며 또 다시 이혼하고 싶어도 저 재산을 보며 견딜 수 있을 거야. 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알고 있기도 했다.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쟤가 지금 나랑 이혼 안한다고 우기는 건 돈이 아까워서이지, 진짜 나랑 살고 싶은 게 아니야. 지네 엄마면 다 되는 인간이다. 속지 말자.
또 한참의 설전이 지나고, 여러번 번갈아 가며 조정실을 들락거린 끝에. 남편은 역시나 그것은 명의만 자기 것일 뿐 어머니 것이라 줄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럴 줄 알았어.
그리고. 절차를 마무리하러 들어온 판사는 나도 그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에게 어차피 이혼하면 그 부동산의 가액만큼을 줘야하는데 일단 주는 건 어떠냐고 설득하다가, 내가 그 부동산을 받으면 이혼을 재고해본다는 데에선 무슨 인과관계가 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깊이 질문하거나 내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판사는 왠지 답을 정해놓고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난다.
그리고 나온 결정은.
조정은 다시 결렬되었고, 이렇게 일방이 거부하는 이혼판결은 재판부도 부담스럽다. 아직 여지가 있어보이니.
부부상담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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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날은 정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아이 어린이집까지 거의 기어갔나봐요. 변호사입장에선 이제 선고만 남은 재판이 무기한 연기된 느낌이고.. 저는 당장 쟤가 바라는 대로 된 것이 싫었어요.
어린이집으로 찾으러가며, 제발 오늘은 아이 할아버지인 우리 아빠가 오지 않았기를 또 간절히 바랐습니다.
관계가 틀어지고, 저를 그렇게 비난하던 저희 아빠는 한주에 한번 꼴로 본인 내키는 대로 와서 아이를 찾고 저를 기다렸어요. 사과하러 오거나 한 것이 아니라 저한테는 화가 나지만 그냥 손녀는 너무 보고 싶고. 그러니 무작정 오신 거지요.
왜 하비 함미가 안오냐고 묻는 아이에게 여행을 가셨다고 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치면 정말 난감했습니다. 일하다 뛰어나가서 싸울 수도 없고.. 그 치부마저 어린이집에 보일 수도 없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