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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Jun 08. 2024

이혼일기(68)

절대로

딱 하루에 필요한 기운만 있으면 좋겠다.

어느날은 밤이 되어도 특히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비척거리며 괴로워한다.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지금 잠을 자둬야 하는데.


또 어느날은 이미 퇴근 전부터 졸리기 시작해서 간신히 간신히 아이와 놀고 저녁을 먹이고 씻겨서 같이 쓰러지듯 자버린다.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과 운동을 하고 자면 제일 좋은데,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날은 두주일이 지나면 한번 있을까 말까 였다.


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하는 사회생활은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침 출근은 항상 부담스럽고, 아이를 깨워 가야하니 더욱 그랬다. 내 컨디션이 나쁜 것은 그냥 버티면 되지만,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은 그렇게 넘겨지지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짜증내는 아이를 달래고 얼러 옷을 입혀 떠매고 나오는 생활의 반복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

참 발상이 기상천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육아휴직이라니 육아휴직이라니..


관련 판례를 찾아보니, 부부가 아이를 조부모에개 맡겨두고 해외로 나간 사례가 있었다. 1심에서는 육아휴직급여 부정수급이라고 했지만 2심에서는 직접 양육을 하지 않았어도 실질적으로 아이의 생활비로 많이 들어갔으므로 부정수급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고 한다.


나에게 오는 양육비는 고작 50만원. 그의 육아휴직수당은 월급의 60%면 130은 될 것이고, 사전처분서에 버젓이 내가 임시양육자로 되어 있고 지금 주민등록도 다르므로 부정수급이 될 것 같았다. 일단 부정수급이라고 환수처분을 내리면 차마 행정소송까지 할 배포는 없는 인간이다.


정말, 신고해서 그렇게 만들어버릴까.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를 재우고 난 어떤 날의 밤. 겁이라도 주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문자 하나를 보냈다.


어디, 두고 보자.


당황함이 서린, 갑자기 왜 이러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구차하고도 어처구니없는 하소연들이 이어진다. 육아휴직을 했냐는 소리는 끝내 꺼내지 않았다. 겁먹게 만들고 싶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어라. 그게 지금 니가 겪을 몫이야. 


지금의 분노를 이전의 사건들에 대한 비난으로 바꾸어 마음껏 퍼부어 댔다. 같이 살며 차마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던 이야기들, 그동안 한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입술을 깨물고 참았던 말들이 줄줄줄 비집고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매형 회사 어디에 있었는데? 너따위가 앉아서 무슨 일을 했어. 말해봐 답변서에 그렇게 적었잖아? 어디로 어떻게 매일 출근을 하며 일을 했는데? 


행여나 증거가 남을까봐서인지 이 말에 대답은 늘 회피했었다. 그게 더 분통이 터지는데 이번엔 답이 다르다.


- ... 그 기록 검찰에 있어.. 매형도 나도 수사중이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안 궁금한 척 했지만 보내온 문자들로 유추를 해보니,


 참 대단도 한 얘는 매형회사에서 근무했다는 허위기록으로 실업급여까지 받은 모양이다. 그래.. 기간이 딱 맞네. 법원에 제출하기 위해 검색해본 그 매형의 회사는 22년 9월에 폐업을 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공무원으로 임용된 것은 23년 4월이다.


그 6개월 동안 알뜰히 실업급여도 받아먹더니, 그게 어디에선가 탈이 난 모양이었다.


 근데 실업급여 받은 걸로 검찰까지 가나..? 찾아보니 고용보험법에 형사처벌 조항이 있었다. 고용주와 공모한 경우 5년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도 있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라고는 해도 일단 벌금형 전과는 기본으로 남을 것이고 수사를 받는 것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닐텐데 그게 지금 저쪽 집안에 벌어지고 있단다.


 한번 말이 터지더니 줄줄이 나오는지 잠시 전화기를 안보는 사이에 문자가 46개가 와 있었다.


요약해보면


자신도 회사에서 징계위기에 처해 있다. 팀장과 차장이 비연고자라는 이유로 본인을 배척해왔으며.. 그래서 너무너무 힘이 들었고, 그러던 차에 수사가 시작되었고, 공무원이니 그 사실에 회사에 알려졌고.


 그래서 징계 대상이 되었는데, 회사에는 그를 이유로 징계위원회를 연다는 것 조차 귀찮아하며 그 전에 그만두려고 해도 징계를 받기전에는 의원면직이 되지 않는다. 


는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


 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1. 배척의 이유는 비연고자라서가 아닐텐데. 하긴 서울 살면서 경기도 시의회를 다닌다는 것부터가  딱 보기만 해도 낮은 커트라인 찾아 전전한 티가 나는데 반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선입견이나 편견은 사실 어느 집단에나 있는 것이고 일정 부분은 본인의 능력과 호감도로 감수하고 넘어서야 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남탓만하며 살고 있네.


2. 공무원은 수사 대상이 되면 소문이 금방 퍼지긴 한다. 근데 그래도, 대부분 입직 이후의 잘못이 아니라면, 그것도 파렴치범이 아니라면 그다지 미움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일한지 1년이 되어가는 데 마음을 나눌 사람도 만들지 못했고 자기 편도 만들지 못했고. 징계위원회조차 열기를 귀찮아 한다는 것은 전혀 제대로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3. 더구나 본인이 휴직이면 어디서 새로 인원을 받아오지도 못하고 조직에서 안고 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것에 대한 민망함이 전혀 없었다. 참 참 대단하다. 아무리 사회성이 없다고 한들 이렇게나 없을까. 이렇게나 이기적일까. 요즘 흔히 탓하는 MZ도 아니고..


- 난 전과자가 될거야... 회사도 못다녀.. 그만 둘거야... 그래도 너만 있으면 다 괜찮을 것 같아.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내내 니 생각을 했어 너랑 아이가 있으면 괜찮을 텐데 생각했어.. 생각 좀 돌려줘.


내가 이혼소송을 안했으면 지금 니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 니가 아무 일없이 회사를 다녔어도 넌 그모양이라 똑같은 일이 생겼을텐데 말야 그랬음 니가 그런 생각을 했을까? 또 나를 잡아댔겠지. 혼자 고시붙어서 좋으니 간이 배밖으로 나왔구나 니가 뭐라도 된 줄아냐. 이 소리 멈췄을까. 난 아마 흙빛이 된 얼굴로 비실거리며 애도 챙기고 회사도 다니고 생활비도 모두! 모두 감당하며 시들어갔을거야.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니가 이런 인간이야. 현실을 똑바로 봐. 어머니 치맛폭에서 잘났다 잘났다 해주니까 니 주제를 몰랐지. 그 바깥 세상에 나오면 넌 이렇게 형편없고 호감도 없는 정말 바닥같은 인간이야. 근데 아직도 남탓이지. 아직도 본인이 잘못한 건 생각을 안하고 회사탓이나 하고 있지. 너 그렇게 수사받지 않았으면 저 생각까지 갔겠니. 아무 잘못없는 아내를 그렇게 조롱하고 무시하고 비난해대던 인격이 어디 가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돌아가지 않아. 


-----


그동안 못 했던 이야기들,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던 험한 말까지. 쌍욕직전까지 가서 퍼부었습니다. 하나도 불쌍하지 않았어요. 사실 모두 예상했던 일입니다.


같이 살면서 내내 제가 파악한 사람은 저런 모습이었는데, 시댁식구들이 감싸고 도니 저는 힘이 없었고, 또 제가 빌붙어 사는 형국이다보니, 저 조차 저를 의심하며 근근히 5년을 지냈어요.


사실 저 사람으로부터 성격장애니 뭐니, 너는 나 아니었음 아무데도 갈 데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보다.


제가 저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숨죽이고 살았던 것이. 더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그러니. 제 잘못이에요.


 그런데도 주체할 수 없게 화가 났어요.


그랬. 습니다.


오늘고 정말 감사합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주시는 은혜에 힘입어. 오늘도 또 나가야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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