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 꿈에는 간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조그마한 상을 펴고 식사를 했다. 나는 꿈속에서 고개를 파묻고 울었다. 내게는 정말 이뤄질 수 없는 꿈같은 장면이었다.
마지막 가족 식사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정이 무너져가기 시작할 때, 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기억하려 애썼다. 마지막 우리 집, 마지막 피서, 마지막으로 아버지 오토바이의 뒷자리에 탔던 그 순간. 다 기억나는데 온 가족이 다 함께 식사하는 마지막 장면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너무나도 흔하고 자주 있던 장면이라, 기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흔한 장면을, 나는 꿈속에서 상상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어머니의 물음이 싫었는데, 이제는 좀 조용하게 살아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사실 가정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게 내가 그날 꿈에서 본, 싫지만 싫지 않고,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별을 존중한다. 내게 정말 좋은 아버지이고 어머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남편이나 아내는 아니었고 나는 그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도 부모님은 내가 성인이 되기까지 억지로라도 가정을 지켜주었다.
그래도, 스물넷씩이나 먹어도 가정의 파탄은 힘든 것이었다. 고통은 고통대로 받으면서, 부모님은 미워할 수 없으니까, 나는 원래 남녀관계란 그런 것이라고 합리화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고통을 숨기기 위해서, 나는 사랑의 가치를 폄훼해야만 했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의 이별이란 죽음과도 같고, 나는 그 위협을 간간이 받으며 자라왔다. 죽음을 피하는 길은, 애초에 사랑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감정 싸움과 이별이 죽음처럼 두려웠고, 고작 몇 번의 이별에 사랑을 포기했다. 그것을 깨달은 날의 저녁은 너무나도 길었다.
또 다른 어느 밤엔가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여인과 긴 꿈속을 함께 했다. 아주 길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꿈속이었다. 그게 누구였는지, 어떤 배경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잠에 깬 후에도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던 어떤 온기만이 기억날 뿐이다.
나는 당신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처럼, 내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