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u Feb 24. 2023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도망치고 싶을 때

여자와 남자가 밤에 한집에 있는데, ‘아 러브라인 같은 게 생기면 안 되는데’ 하며 마음을 졸였다. 사랑은 평온한 감정을 부여잡고 위아래로 마구 흔드는 일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정해진 기상 시간 없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고, 하늘을 바라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집에 한둘의 친구들을 불러, 내일 언제 출근할지를 걱정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편하게 얘기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사실 도망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봤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는 도망칠 시골도 없다. 도시 사람이 시골에 사는 게 그렇게 쉽고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사람 속으로 도망치곤 했는데, 요즘엔 사람들도 만날 수가 없고, 만나도 푸념 같은 것을 잘하지 못하게 된다.


며칠 쉬고 싶은데, 쉬는 날 밤이면 여태까지 해오던 반복적인 공부 말고는 할 것도, 떠날 곳도 없다. 그다지 먹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냉장고에 재료가 상해가니까 이런 거라도 만들어보자는 마음과, 겨울이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것을 의무감에 찾을 뿐이다.


그렇게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도 사랑도 없다. 글이나 영화 같은 것도 잘 안 보게 되고, 어떤 감정으로 차오르고 싶지도 않다. 그냥 매일이 똑같고 조용하다.


영화를 보면서 그래도 잠깐은 어디서 쉬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내일 아침엔 톳을 삶아 무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