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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Mar 04. 2023

일상이 소원이 되는 순간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사람은 일상을 잃어봐야만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안다. 한 여름날의 아이스크림, 늦잠을 잔 주말 아침 희미하게 들려오는 TV 소리, 운동회날의 도시락, 여름 밤하늘에 터져 오르는 불꽃놀이 같은 것들.


나는 어릴 적에, 가족끼리 무슨 행사를 하는 게 싫었다. 엄마 아빠 동창회를 따라가서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께 어색하게 인사를 드리는 것도 싫었고, 가족여행을 간답시고 귀찮게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어릴 적 가족사진에는 내가 웃는 모습이 별로 없다. 나는 여기 와서 지루하다는 것을 티라도 내듯, 항상 무표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어른이 되고 그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그런 삶이, 그 모든 것들을 귀찮고 지루해했던 어린 시절이 큰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지루했던 시간은 내가 커서 힘들 때마다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였다. 그 기억으로 다녀오는 날마다, 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을 빌곤 했다.


그리고 어제 동생의 결혼식에서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네 가족이 한 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은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시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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