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내게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던 해였다. 철학을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여태 무엇을 해왔나 돌아보는 해였으며, 사랑이 끝나고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때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선이 되기도, 또 타인들에게 얕고 깊은 상처를 줬던 악이 되기도 했던 해였으며, 나와 세상을 규정짓던 선악의 이분법이 무너졌던 해이기도 했다. 그 누구의 마음도 함부로 재단해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고, 나는 더욱 깊은 사람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 심연으로 잠겨 들었다. 모든 나쁘고 우울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만큼 나쁘고 우울한 나도 그 마음을 바탕으로 위로받고 의지하고 싶었다. 애써 우울한 음악과 영화와 글을 찾아보는 것은 그 내용에 나를 이입하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유아적인 욕망의 연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위로받고 이해받기 위해 사랑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을 시험했고, 나의 부족하고 유아적인 면을 받아줄 수 있을지 가늠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나는 그때마다 밀려드는 감정을 부정하며 도망쳤다. 그 사람은 나를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그 사람에게 집착했다. 그 사람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욱 사랑받기 위해 내 상처를 일부러 덧내었고, 빠져나올 수 있는 슬픔 속에서도 일부러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당신이 나를 구해주길 바랐다. 그런 기다림 속에서라면, 어떤 상처와 우울도 더욱 달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나를 구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결국 아무도 나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하는 것임을, 또 그러한 마음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우울한 글과 음악과 영화를 찾아보고, 이러한 글을 적어 내려가는 일을 줄이려 한다. 슬픔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슬픔이 슬픔으로써 연쇄되는 일은 없기를. 사랑이 구원이 아니라, 사랑이 그저 사랑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