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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구 Aug 16. 2023

할 수 없는 효도

친구 H의 결혼식을 다녀와서

요즘 부쩍 엄마아빠의 노화가 눈에 보이고, 상경 후 10여 년 동안 너무 못 보고 살았단 생각을 자주 한다.


젊은 날의 어리석음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물론 지금의 나 역시 지혜롭진 않다.


어쩌면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계속 되뇌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과의 순간들이 자꾸 뇌리에 박히는 느낌이 든다. 서른이 넘은 나를 한 순간에 어린애로 돌아가게 하는 게 부모인 거 같다.


재수학원에서 만난 친구 H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H와 연락한 지 오래되어서 H에게는 내 번호도 없었고, 결혼식 전날에 모바일 청첩장으로 날짜를 알려줬다. 가야 할까 망설였는데, 축의는 하지 않아도 되고 점심 먹으러 와달라. 그냥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는 친구의 말에 그냥 가서 축하를 해 주고 싶어서 다녀왔다. 아 축의는 했다. 기쁜 마음으로.


몸살로 전날 8시부터 잠에 들었음에도 늦잠을 잤다. 그래서 신부대기실도 가지 못하고 미사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성당결혼식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재수학원에서 반은 달랐지만, 종교활동 찬양팀으로 만났다. 신랑이 천주교신자인가 보다 했다. 함께 친한 친구 G옆에 앉았다. 혼인서약을 하는 친구의 목소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목소리가 맑고 고았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스무 살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이 새벽에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은 친구들과의 사진 촬영을 보고 있는 H의 아버지의 표정이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H는 늦둥이였다.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뻐하는 백발의 H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얼굴을 나의 부모에게도 볼 수 있을까.


서른이 넘어가면서 부쩍 결혼라이팅을 많이 당하는데, 엄마의 로직은 항상 그거다. 당신은 나를 낳아 기르면서 내가 너무 귀엽고 똑똑해서 정말 행복했다는 것이다. "너도 애를 낳으면 그 애는 정말 귀엽고 똑똑할 텐데" 나도 그런 행복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데 그건 내가 엄마 딸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가 원하는 모습대로 자라온 것인 걸 엄마는 아직도 모르는 거 같다. 엄마가 예전보다 더 많이 내가 어릴 때를 얘기하곤 한다.


“내가 했지만 내가 먹어봐도 맛이 그저 그런 걸 너는 너무 맛있다며 먹더라. 배려를 해주는 건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맛있지 않고 어딘가 부족해도 난 엄마가 해줘서 맛있었을 것이다. 적고 보니 날 때부터 엔프피인가.


아휴 몰라.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인데 어떡하나. 한 번도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며 내 삶에서 배제한 적은 없다. 할 수 없는 효도의 의미는 안 하겠다가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좋은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하겠지. 아니라면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평생 불꽃효녀로 살다가 서른이 넘어서 혼자라 나는 못한 것도 없이 불효녀가 된다. 새벽에 청승이 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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