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날리면' 1심 판결에 나타난 몇 가지 쟁점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에서의 발언을 보도한 것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논란이다. 판결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브런치에 글을 써서 페북에 공유했더니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괜찮느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다 받았으니 대충 짐작이 된다. 예민한 사안에 대해 생각을 밝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 글이 불편한 사람이 6쯤 되고 대충 수긍한 사람이 3에서 4쯤 되었을 것이다.
전화를 받은 김에 조금 더 생각을 해봤다. 이 판결은 생각할수록 이례적인 면이 많기는 하다. 앞으로 연구할 지점도 많다. 항소심까지 나오면 한번 공부를 좀 더 해서 글을 제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이 A라는 보도를 하자 보도 대상이 ‘A가 아니라 B’라며 정정을 요구한 사안에서 재판 과정에서 과학적 감정 결과는 A인지 B인지 판단 불가로 나왔을 때 적어도 A라는 입증이 없다면 이 보도는 오보일까. 갖고 있는 판례는 여기서 참고할 것이 없어서 검색을 좀 해봐도 이런 사안에 쓸 수 있는 판례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B라는 원고의 주장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역시 과학적 방법으로는 사실로 입증되지 못한 A가 ‘진실한 보도’의 지위를 누릴 수는 있을까. 이것이 두 번째 쟁점이다. 이렇게 과학적 방법으로는 A인지 B인지를 알 수 없을 때, 순전히 전후 맥락을 따져서 어느 하나를 사실로 정해서 ‘그걸 사실인 것으로 하자’고 선언하고 그에 맞춰 정정보도를 명령할 수 있을까, 이것은 세 번째 쟁점이다.
통상 정정보도에서 논란이 되는 언론보도의 진실성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기만 하면 인정되며, 세부에 있어서 진실과 다소 차이가 나거나 약간의 과장이 있어도 무방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이다(ex.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다49766 판결). 하지만 이 사안은 진실과 다소 다르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A냐 B이냐의 양자택일적 문제인데 실상은 어느 쪽도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안에서 ‘바이든’이라는 원 기사의 보도가 사실이라는 입증은 여러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들었다는 것이고, 통상 어떤 사람의 말이 무엇인지는 사람들이 통상의 방법으로 듣고 이해하는 것을 토대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이번 판결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 부분이 ‘바이든’으로 들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나도 그 말이 바이든으로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발언자와 원고(외교부)는 그 발언이 ‘날리면’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들리는 사람도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토마토>에서 1009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 말을 ‘바이든’으로 들었다는 사람이 58.7%, ‘날리면’으로 들었다는 사람이 29.0%,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12.4%다. 그런데 이것이 철저하게 정치적 견해와 동조하고 있다는 것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당시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93.4%,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84.5%가 ‘바이든’으로 들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65%,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53.6%가 ‘날리면’으로 들었다. 중도층은 바이든 60.2%, 날리면 23.8%다. 무당층도 비슷하다. 연령별로는 젊은 사람일수록 ‘바이든’으로 들었다는 응답이 훨씬 높았다. 조금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지속적으로 낮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가 이 말을 어떻게 듣느냐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모양이다. 어떻든 그 기사에서도 지적하지만 전 국민이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를 판단해 보겠다고 대통령의 비속어 섞인 말을 몇 번씩 듣고 있었으니 대통령 지지도에는 분명히 역효과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순전히 ‘가정’을 해서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재판부의 판사 3명 가운데 2명은 바이든으로 듣고 1명은 날리면으로 들었을 경우다. 이것은 대략 비율로 추정을 한 것인데 아주 우연히 이 재판부는 2명 혹은 전부가 날리면으로 들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분명히 사실 판단의 영역이다(의견이라면 애초에 정정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데 사실 판단을 다수결로 하는 것이 맞느냐는 원칙 앞에서, ‘우리 귀에는 그렇게 들리니 그것이 맞는 것으로 하겠다’고 어떤 재판부가 사실 판단을 하는 것은 옳을까. 이것도 의문이다. 물론 민사재판에서 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리고 법률이 없다면 관습법과 조리를 동원해서라도 결론을 내려주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하나의 사실을 참과 거짓으로 종국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하나의 사실이 참으로 입증되지 못하면 바로 거짓이 되는 것일까. 만약 1심 재판부의 결론이 그런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2심 재판부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참과 거짓의 판단 기준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결국은 음성 감정이라고 하는 일종의 과학적 방법에 의존한 것인데 결론은 감정불가였다.
여기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과학적으로 감정불가인 음성을 A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면 그것은 오보인가? 자, 만약 오보라는 재판부의 결론에 동의할 경우 그 정정은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까? 1심 판결문에서는 “사실 확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정정보도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조금 생각을 해보면 그 자체로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다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다는 입증이 없다고 해서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진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하면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해야 맞다. 물론 재판부는 다른 여러 맥락을 판단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정황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정보도의 영역에서 재판부가 맥락에 따라 사실을 구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오늘 몇몇 언론인들과 이 사안을 논의한 적이 있는데 대체로 법원의 정정보도문안이 너무 강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항소심에서도 정정보도를 하라는 1심의 결론이 유지되더라도 구체적인 정정보도문의 내용은 아무래도 조정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덧) 이번 1심 재판부가 PD수첩 광우병편의 과학적 사실에 대한 판단 논리를 가져온 것을 비판하면서 사람의 말이 뭐로 들리느냐가 무슨 과학적 사실에 대한 거냐는 의견들이 있던데, 그건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그런데 음성 분석을 통한 감정도 ‘내가 들어보니 그렇다’는 식으로는 어려우니 나름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 아닐까. 사실 법원 판결이라는 게 심급에 따라서도 다르고 재판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 1심 판결을 놓고 너무 소동을 벌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바이든/날리면’을 듣는 비율이 대통령 지지도랑 비슷하다는 것도 특징적인 부분인데, 서로 상대방을 정치적 입장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똑같다. 각자 자기 확신에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