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생애 다시는 안 올 그 자리
5-1. 생애 다시는 안 올 그 자리
이제 어느덧 어엿한 3년차.
3년차 교사는 그 당시 저희 지역에서 의미가 조금 남달랐어요.
1정 자격 연수를 들을 수 있는 시기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뭐랄까, 무책임한 막내 노릇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랄까요?
1정 자격도 얻으면 교사 밥값 1인분은 잘 해내야 하는 그런 압박감이 느껴지더라구요.
이때 제가 맡게 된 자리는 '영어 교과 전담' 및 '학교 방송 업무'였습니다.
상당히 괜찮은 조합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지라, 학교 방송 업무는 되게 해볼만한 업무라고 생각(착각)하고 있었고, 영어 교과 전담은 젊은 교사가 쉽게 맡기 어려운 자리였으니까요.
지난 에피소드들을 관심갖고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담임 업무가 덜어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요.
담임교사의 업무 자체가 어마어마하니까요.
그런데 저 같은 저경력 교사가, 더구나 1인분을 해야 하는 1정 자격 취득 시기와 맞물려 이런 자리를 얻을 수 있었냐구요?
하하, 바로 직전의 이야기 기억나시죠?
저 군대 가잖아요, 하하.
학교에서도 이제 '얘는 군대 갈 사람'으로 기정사실화된 상태였어요.
이때 저는 또 제 나름대로 즐겁게 인생을 삽니다.
군대 갈 사람은 사실 많이 터치를 안 하시잖아요.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합니다, 히히.
사실 3월 초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어마어마한 벽을 만났거든요.
[2018년 3월 6일 화요일, 날씨: 구름 조금]
충격이었다.
혹시 몰라서 다시 확인했다.
그렇지만 확실했다.
우리 학교 5학년 아이들은 알파벳 음가를 모른다.
파닉스가 안 된다.
BANANA를 [바나나], [버내너]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저 암기했기 때문이다.
BANANO, BAMAMA라고 적어줘도 이 친구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바나나], [버내너]로 읽고 있었다.
이 현상은 그냥 글자를 하나의 그림으로 기호화했을 뿐이기에 나올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걸 발견한 것은 5학년 1학기 1단원에서 인물의 이름을 읽는 코너에서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파닉스가 된다면 어느 누구나 쉽게 읽을 Min-Su, Jane 등과 같은 간단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다.
혹시나해서 파닉스 테스트를 5학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했더니….
100여 명의 학생 중에 파닉스가 되는 아이들은 10명도 안 됐다.
이대론 안 된다.
그래서 저는 군대 가기 전의 미션으로 '5학년 아이들 파닉스 마스터'를 세웠어요.
아, 그래도 제가 나름 심화전공 영어과 아닙니까.
제가 가진 모든 지식과 역량을 총동원해서 아이들의 파닉스를 끝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 일 년이 가자 다행스럽게도 80명이 넘는 아이들이 파닉스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인생 성공한 거죠.
그리고 여름 방학 시기에 1정 연수를 들으며 한 달 내내 알차게 시간을 보냅니다.
거기서 다시 동기들을 만나니 너무 반갑더라고요.
그렇게 차분히 군 입대를 준비하고 학교 생활을 정말로 마무리합니다.
언제라도 입대할 수 있게 짐도 다 싸놓았구요.
공군학사장교 시험을 합격하고, 체력 평가 최저기준만 통과하면 되는 상황이 2학기에 왔거든요.
설령 떨어져도 12월에는 반드시 끌려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느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