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다시 만난 세계
4-2. 다시 만난 세계
발령 이후 2년차, 몇 학년으로 갈지 고민이 컸어요.
고심 끝에 제가 맡았던 아이들을 한 번 더 만나서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 6학년을 신청했습니다.
근데 처음부터 이 선택은 그리 쉽지 않았어요.
학교 관리자분들은 모든 학년에 한 자리씩을 비워두길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 온 선생님들이 원하는 학년을 가급적 골라갈 수 있게 하려는 배려일까요?
그런데 사실 6학년은 원래 기피 학년인데다가, 제가 맡았던 그 아이들이 힘든 학년이라고 소문이 나서 딱히 관리자분이 제지할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요.
저랑 다른 누나들, 한 부장님까지 모두가 6학년을 써서 자리가 꽉 차자,
몇 차례에 걸쳐서 학년을 바꿀 것을 종용하셨어요.
아쉽게도 저도 누나들도 그런 부분에서는 흐린 눈을 잘 해서 영향을 받진 않았어요.
그리고 다시 만난 우리 아이들하고 정말 열심히 1년을 보냈어요.
사회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나라를 운영했어요.
옆 반 누나가 알려준 방법을 조금 더 응용해서 아예 국가를 학급 안에 만들어보았지요.
사회 교육과정을 보니까, 차시 구성도 헌법의 위계를 그대로 따르더라구요.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을 공부하고, 이를 통해 우리 반의 헌법을 만들고, 입법부-행정부-사법부를 꾸리고 그 외 필요한 조직과 기구도 구성하여 나라를 직접 아이들이 운영해보게 했어요.
그 속에서 아이들은 많은 재미를 느낀 것 같아요.
5,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그 이벤트들을 이야기하더라구요.
자기가 검사를 맡았는데 어쨌고, 반통령(대통령의 학급 내 용어)을 했을 땐 어땠다느니 하면서요.
그런데 이런 순간도 한 번은 찾아오더군요.
[2017년 11월 2일 목요일, 날씨: 흐림]
"승우야, 좀 나와볼래."
학년 부장님이 부르셨다.
"야, 그 민원이 하나 나한테 들어왔다. 너가 어떤 수업을 하는지는 내가 알고 있어서 얼추 설명을 했다만, 너도 상황은 알아야 하니까 녹음본 들어봐라."
부장님이 들려준 녹음본은 충격스러웠다.
다짜고짜 부장님께 학부모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통화 속에서 부장님이 차분히 말했다.
"학부모님, 일단 말씀하신 내용을 담임교사가 알아야 하니까 녹음하고 전달하는 부분, 동의하시지요?"
"아, 동의해요. 동의하는데, 내가 화가 난다니까? 부장님! 지금 김승우 선생님 군대 간다고 애들 대충 가르치는 거 맞잖아욧!"
학부모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이들이 지금 학급을 나라를 운영하는 듯이 노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헌법을 공부하고, 헌법에 따라 학급의 법을 만든 것도 건방지다.
우리 아이가 그런 걸 공부해야 할 필요를 하나도 못 느낀다.
지금 교사가 군대 입대 예정이라서 대충 가르치는 것이 아니냐.
다행스럽게도 이후 부장님께선 내 수업 의도를 정확히 읽고 설명해주셨다.
"담임 선생님께 직접 전화를 거셔야 이 부분 의문이 풀리시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선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승우 선생님 대충 가르치는 사람 아니구요, 어머님. 사회과 교육과정이 헌법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지금 현행 6학년 교육과정입니다. 헌법을 가르치는 게 뭐 교육과정 이외의 것을 가르치는 그런 게 아니고, 단순히 놀고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장님이 잘 설명해주셔서 억울한 부분은 없었지만, 너무 슬펐다.
원래 울음이 없었는데, 교직에 들어선 후 눈물이 너무 많아졌나?
교실에 들어선 후 아이들을 바라보자 배신감과 서글픈 감정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 아이 중 몇 명은 내 수업을 자신의 부모에게 그런 수준으로 전했으리라.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아이들에게 솔직히 내 마음을 말했다.
내 수업의 의도는 이랬고, 이걸 다르게 받아들인 친구가 있다면 이해해주라고.
그 뒤로 전 그 프로젝트 수업을 더 용기있게 추진했습니다.
이 악물고 오기로요.
'내 수업을 얼마나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교과서로만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실천적이면서도 지식적으로 이해되는 수업이 얼마나 소중한데!'
화가 완전히 났죠.
하지만 여기서 하나 더 배웠어요.
학부모와의 소통.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는 수업이라 할 지라도 학부모와 소통이 잘 안 된다면 그 의미가 인정받기가 어렵겠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이후로는 제 수업 의도를 가정에도 틈틈이 알리는 편입니다.
특히 교과서를 있는 그대로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학급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고안한 PBL(Project Based Learning) 등을 활용할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생초짜로서 경험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긴 하죠.
그렇게 교실이라는 공간을 다시 만났어요.
'학생과 교사만이 영향을 주는 곳이 아니었구나.',
'다른 제3자가 개입할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