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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몽글 Aug 21. 2024

학생을 망가트리는 완벽한 방법: 시작

1. 시작

  서준은 물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 이거지?"

  제안된 아이디어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불신의 표정이었다. 인상을 가득 찌푸리며 30쪽 정도의 얇은 문서를 집어든 서준을 향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율희는 대답했다.

  "이것만큼 확실한 건 없다니까. 한 번 믿고 진행시켜 봐."

  자신만만한 율희와는 달리 서준은 확신이 가질 않았다.

  "대한민국 전체를 파괴와 고작 어린 소학생 아이들 몇 명 괴롭히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고작 어린 소학생이라. 아마 넌 지금 머릿속으로 '한국은 이제 저출산으로 죽어가는 나라인데, 어차피 아이들 수는 얼마 있지도 않은 거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 아냐? 맞나, 설마."


  율희의 말이 사실 맞았다. 서준의 눈에 대한민국은 어차피 길게 보면 저출산으로 곧 힘을 잃을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 이 중요한 시점에, 굳이 얼마 남지도 않은 초등학생들을 망가트린다고 뭐가 될까 싶었다.

  "뭐, 그 말도 맞지 않나? 이미 학생 수가 절반 넘게 줄었다며. 그런데도 굳이 우리가 우리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뭔가를 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아직도 난 모르겠는데."

  율희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 높은 하이톤의 소리였다. 서준은 다시 인상 가득한 표정으로 율희를 쳐다봤다. 서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율희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네가 한 수 아래라는 거야. 자,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발전한 나라였지?"

  서준은 대답하기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가며 시간을 벌다가, 대충 생각나는 몇 가지 단어를 끼워 맞춰 생각을 정리했다.

  "뭐, 뻔하지. 복잡한 세계정세 속에서 경제 발전 흐름도 타이밍 좋게 맞춰 타고, 나중에 민주화 운동으로 정치적 발전도 이루고. 선진국이라는 타이틀도 마지막에 가까스로 얻은 그런 나라 정도로 요약하면 되려나."


  율희는 눈을 번뜩거리며 무서운 얼굴, 뭐 사실은 웃고 있는 얼굴이긴 하다만, 서준의 입장에서는 되게 기분 나쁜 그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도 얼추 맞는 부분도 있지. 그런데 더욱 명확한 거 하나를 짚자고. 대한민국이 석유가 어디서 팡 팡 뿜어져 나온 적이 있나? 대한민국에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광산 하나가 제대로 있어? 걔네가 먹고사는 자원이 뭐야."

  율희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또 모른다고 대답하여 조롱당하는 꼴을 더는 겪고 싶지 않은 서준은 그녀의 의도에 맞추어 대답했다.

  "그래, 사람. 인적 자원으로 부르는!"

  "그렇지, 서준. 오늘은 머리가 그래도 꽤나 돌아가네."


  율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또 깔깔 웃음을 터트리곤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소파의 숨이 죽어가며 '푸식-' 소리가 멎을 때, 율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인적 자원이 고갈되는 상태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해에 많으면 100만 명, 적어 60만 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나 성장하고 교육받으며, 거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학문과 노동 시장에 진입했지. 그들의 노력으로 또 여러 발전을 이루었고 말이야."

  서준은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는 시늉을 했다. 율희는 살짝 고개를 돌려 서준의 반응을 살폈다. 서준이 아예 딴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란 것을 확인한 후, 또 괜히 기분이 들떠 목소리는 한 톤 정도 더 올라갔다.

  "하지만 이제는 40만, 또 조금만 지나면 30만, 20만의 시대를 맞이하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이 아이들을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해. 그런데 정말 웃긴 게 뭔지 알아?"

  귀찮았지만 아예 안 듣고 있던 건 아닌 서준은 율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되묻기 전법을 사용했다.

  "그게 뭔데?"

  "사람들은 신생아 수가 적어져서 이 아이들을 더욱 귀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반면, 사람이 적어지는데 왜 교육에 투자하냐는 생각을 갖는다는 거지. 자기네가 가진 유일한 자원이 인적 자원이라고 얼마 전까지 교과서에도 명시했던 사람들이 말이야. 그러면서 교육 죽이기에 정당화를 할 수 있게 돼. 어차피 교육을 강화해도 수혜 받는 가정도 얼마 몇 없거든. 즉 남일이 된다는 거야. 내 가족과는 무관한 영역이니 질적 저하가 생겨도 별 상관 없다는 이기심도 발현되는 셈이고."

  "그래, 그러면 그냥 놔두면 되겠네. 알아서 교육에 무관심해지겠구만."


  그저 율희의 말을 듣고 있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가벼운 리액션을 했을 뿐인데, 율희는 쓰레기 같은 말을 들었다는 듯이 격하게 고개를 가로지으며 비웃었다.

  "에휴, 아니지. 그게 아니지. 그래서 내가 널 무시한다니까?"

  율희는 이내 허리를 세워 자세를 바로잡고는, 양반다리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서준에게 손가락질을 해가며 격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시작했다.

  "자,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 임무를 최대한 빨리 완수해야 하지. 그래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교육을 못 건든 거야. 우리가 언제 1년에 100만 명, 적어도 60만 명 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죄다 견제할 수 있겠어. 그런데 지금 이제 기회가 온 거라고. 대한민국의 신생아 수는 급감. 그리고 국민들은 교육에 대해 '중요하지만 이젠 쓸데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 조금만 흔들어주면 이제 알아서 대한민국은 침몰할 거야. 그렇게 우리는 학생들을 적당히 망가트려주면 돼. 정말 말 그대로 자원 없는 대한민국이 되는 거지."

  율희를 응대하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너무 신나면 말이 정말 길어진다. 흐름을 끊어갈 필요가 있었다.


  "아, 알았어. 이 의견 그대로 추진하자고. 대신 여기에 나온 순서대로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자고. 동시에 여러 개를 하는 것은 지금으로선 무리야."

  율희는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면서 신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아들었어? 좋아.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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