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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안에 아빠가 있었다.

피아노는 추억을 남긴다

by 김글인

해외이사를 결정하던 시점부터 가장 묵직하게 고민거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피아노였다. 추억의 피아노도 이젠 정리를 해야 한다. 당근마켓에도 피아노 게시글이 많았지만 거래되지 않은 피아노들이 몇 개월 전부터 많이 남아 있었다. 요즘은 층간 소음 문제 때문에 예전의 덩치 큰 피아노보다는 전자 피아노를 선호한다. 헤드셋을 끼고 연주하면 본인 귀에만 들리는 소리가 어찌나 신기하던지.


'피아노 중고매입 또는 수거, 폐기'를 내건 업체에 문의했더니 30년이 넘은 거라 매입, 수출 불가! 운반 폐기 비용으로 7만 원을 제시했다. 버리는 것도 아까운데 돈을 들여 버려야 하는 현실이라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올려나 보자, 당근에 피아노 나눔글을 올렸다.


피아노 처분합니다.
수거 업체에 문의했더니,
폐기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어가네요.
오래되긴 했어도 음이 이탈한 것도 없고
건반도 깨끗한데,
뽀개지고, 부서질 생각을 하니
너무 아깝고 마음이 아프네요.
가져가실 분 있을까요?
없으면 폐기해야 해요.


당근에 게시글을 쓰면서도 구구절절 감정이입이 되고 있는 나. 성격은 다를지라도 브런치와 당근을 오가며 글 쓰는 생활이 몇 주 째. 브런치에 써야 할 <당근대작전> 감성이 당근 거래글에 자꾸만 나오려고 꿈틀댄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섭섭함이 묻어나는 당근 거래글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피아노 여행기>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이곳 대구에서 열 살의 나는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피아노 하나씩 장만하는 것도 붐이었던지,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생겼다. 당시 아빠의 한 달 월급 수준이었을 수준의 피아노를 들여놓고, 퇴근한 아빠는 딸내미에게 피아노 연주 한번 해보라고 청하고는 흐뭇하게 바라보곤 하셨다. 아빠는 본인의 짧은 배움 때문이었는지, 딸이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피아노를 사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린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랬던 아빠는 너무나 일찍, 내가 고3 수험생이던 때에 갑자기 돌아가셨고, 삼 남매 중 장녀로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오는 동안 19년간의 기억이 전부인 아빠는 점점 기억에서 옅어져가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대구에서 외가가 있는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삼 남매는 전학을 했고, 피아노는 더 이상 연주의 대상이 아니라 물건을 올려두는 용도로 전락했다. 삼 남매가 아빠와 빙고 게임을 하던 배경에도 피아노가 있었고, 아빠가 낮잠을 자던 거실의 한쪽 배경에도 피아노가 있었다. 배경으로서의 피아노가 거기에 있었다. 고3 5월에 갑자기 뇌출혈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서울로의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지역의 대학과 인근 도시인 청주에서의 직장 생활 동안 피아노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스물여덟이 되던 해 결혼을 하면서 여백의 미 가득한 청주의 신혼집에 피아노를 옮겨왔다. 친정집에 배경으로 못 박혀 있던 피아노는 신혼집에서도 연주의 대상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이후 피아노와 멀어진 나는 이제 건반 위에서의 손가락이 어색한 30대였다. 그러고 보면 피아노를 신혼집에 옮겨온 건 나에게 자매가 생길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장남에 장손인 남편이었지만, 첫째도 둘째도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었다. 두 딸은 엄마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앉아서 엄마의 연주에 맞춰 나란히 노래를 불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차례차례 피아노를 배웠다. 배경으로 박제된 듯했던 피아노는 딸들에 의해 다시 현재에 살아나고 있었다. 앞니가 다 빠진 채 활짝 웃으며 피아노 건반을 손가락 한 개로 쳐보던 모습, 양손으로 똑같이 칠 수 있는 법을 배워왔다며 엄마 앞에서 보여주던 두 딸의 모습은 피아노에 새로운 추억을 입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하던 시기에 남편이 대구로 발령이 났다. 청주 토박이인 남편이었지만, 어린 시절 10년을 대구에서 보냈던 나의 용기 덕인지, 우리 가족은 낯선 지역으로의 이동을 감행했고, 피아노도 당연히 따라왔다. 그러나 두 딸 역시 중학생이 되자 피아노와 멀어지면서, 피아노는 다시 배경이 되어갔다. 그리고, 대구에서의 2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우리 가족은 이제 폴란드로의 이동을 앞두고 있고, 피아노는 더 이상 우리를 따라 바다를 건널 수는 없는 것이었다.



피아노는 추억을 남긴다




폐기밖에 방법이 없다는 견적을 받고 나니, 멋들어진 음각 문양이 망치로 뽀개지고 조각조각 분해되는 장면이 상상되면서 그 어떤 물건보다도 피아노는 내 감정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피아노, 아빠, 딸, 그리고 추억들...... (대구-대전-청주-다시 대구)로 나를 따라 그림자처럼 따라온 피아노를 처분하려니, 돌아가신 아빠와의 추억, 딸들의 유년기 때 추억이 녹아있는 이 덩치 큰 애물단지와의 헤어짐이 너무 애틋했다. 대구에서 만난 피아노와 돌고 돌아 다시 대구에 와서 헤어지는 이 상황은, 마치 필연적인 연결 고리라도 있는 것처럼 지난 내 삶의 자취를 따라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추억해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다 건너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다는 현실. 당근 게시글을 올리면서도 반신반의했던 내 감정을 <당근대작전>에 풀어놓고 있는데, 당근! 알람이 울렸다.


"피아노 가져갈 수 있습니다."

"네! 그런데 전문 기사님이 가지러 오시는 거지요?"

"네 업체입니다."


아마도 중고 피아노를 가져다 다시 매매하는 업체인 듯했다. 업체가 가져가겠다는 건 돈이 된다는 의미일 텐데 매입, 수출이 불가하다고 했던 업체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을까? 하마터면 그동안 알뜰살뜰 모은 당근거래 수입에서 7만 원을 빼줄 뻔했구나. 당근이 돈을 벌어준 셈. 비용을 아낄 수 있게 해 준 당근에 신이날 만도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허전했다. 가져간다는 사람이 나타나니 이젠 정말 보내는구나 싶어서.




무게도, 내 마음속 비중도 가장 크고 묵직했던 피아노는 아저씨 두 분에 의해 단 5분 만에 우리 집에서 떠났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나와서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바라보다가 아차차, 의자 뚜껑을 열었는데, 세월의 바스러짐이 묻어나는 서류봉투에서 아빠의 초상화가 나온 것이었다. 세밀하진 않지만, 거칠게 파스텔로 그려진 듯한 아빠의 얼굴. 아래에는 '94. 5. 30. 동성로 축제'라고 쓰여있었다. 대구를 떠나기 1년 전, 내가 막 중학생이 되었을 해인데, 가족과 축제에 간 기억도, 이런 초상화를 그려온 기억도 내 머릿속에는 없었다.



햇수를 따져보니, 아빠 나이 마흔둘,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젊었던 때다. 피아노를 사준 아빠, 나의 연주를 즐겨 듣던 아빠로 기억되기에 피아노를 보면 아빠 생각이 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피아노 안에 아빠가 있었다. 피아노를 생각하며 아빠를 떠올렸던 건 어쩌면 그 안에 있던, 내 추억에 깃들어 있던 아빠가 느껴졌던 걸까. 아빠는 돌아가신 이후에도 계속 피아노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를 보내고 나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나는 결국 복받친 울음을 왈칵 터뜨리고 말았다.


친정 가족들 단톡방에 공유했더니, 동생들은 물론이고, 친정 엄마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존재감 없이 오랜 세월 그 안에 있다가 나온 아빠의 얼굴에, 다 같이 놀라고 먹먹한 기분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25년,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났다. 피아노가 내 옆에 있던 시간이 35년이니, 아빠보다 피아노가 옆에 있던 세월이 더 길다. 아빠는 그동안 피아노와 함께 내 곁에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본다. 해외살이를 하러 떠날 딸에게 응원 한 마디 해주기 위해, 오랜 세월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떠난 건 아닐까.


혹시나 다른 곳에 가서 쓰임을 다하려나 싶어, 피아노 수거하러 오신 아저씨께 물었더랬다. 그러나, 피아노 후면을 확인하시더니, 오랜 건조함에 뒤쪽 나무가 다 갈라져서 팔 수도 없다고 했다. 당근 나눔글에서 앞쪽 사진이 괜찮아 보였는지, 혹시나 싶어 가져가려던 모양인데, 오히려 폐기 비용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나에게서 멀리 가더라도 다른 곳에서 계속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위로와 같은 말을 기대했건만. 그래도 7만 원은 아꼈다는 것에서 위로받아야 할까. 마치 아빠처럼 느껴지는 피아노와 헤어지는 아쉬움, 그리고 7만 원을 절약했다는 반가움. 아쉬움이라는 '감성'과, 절약이라는 현실적인 '이성'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라니.


피아노 안녕~

아빠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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