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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퀵

새로운 거래방식의 발견

by 김글인

날이 갈수록 봄볕이 거실창으로 들어오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다른 계절 보다도 봄이 되면 더 오래 시선을 두던 습관 때문인지, 올해도 자꾸 창가로 눈이 가는 게 느껴졌다. 봄이면 초록이들이 더 예뻐 보이고, 그래서 게으른 가드너도 조금은 더 부지런해진다. 원래라면 화분을 가꾸는데 부지런해졌을 테지만, 올해는 화분을 떠나보낼 마음이 분주해졌다.


나 스스로도 잘 키우지 못했다고 생각한 화분 두 개를 당근에 나눔 하기로 했다. 햇빛 잘 드는 창가에서 찍었더니, 실물보다 더 예뻐 보이는 사진이 나왔다. 사진이 중요하긴 하지. 그러나 이건 너무 사기 같아서 받아볼 사람을 생각하면 양심에 찔린다. 그렇다고 못난이로 보이도록 일부러 사진을 다시 찍을 수는 없는 일.


잘 키우진 못했어요.
우리 집에선 뭐가 문제인지,
색이 진해지지 않고 연해지는 건 왜일까요?
저보다 더 예쁘게 잘 키워주실 분이요.


사진이 다 했다.


보이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잘 키우지 못했음을 고백함과 동시에 가드닝 고민을 솔직하게 썼다. 6번의 당근! 이 줄기차게 울려대는 걸 보니, 역시 사진이 너무 잘 나온 게 분명하다. 이럴 땐 공평하게 첫 번째 문의자에게 드린다. 더 잘 키워보겠다고 손드는 분들의 의욕이 대단하다. 가드닝 조언까지!


"제가 살려보겠습니다!"


"그럴 땐 거름을 줘야 할 때에요."


"제가 데려가서 잘 키워봐도 될까요?"


잘 키우진 못했다고 분명 말했는데, 양심이 없는 건 사진이다. 한 발 늦었음을 알려주는 내가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된다.


"잘 키워줄 수 있다는 분이 이렇게 많으실 줄 몰랐는데… 죄송합니다. 다른 분과 예약되었어요."


나머지 5개의 대화창에 복사해서 붙여 넣기 완료! 그런데, 느닷없이 날아온 한마디.


"저도 화초 잘 키우는데요."


뭐지? 따지는 건가? 잘 키우는 실력 순서에서 밀렸다고 생각한 걸까?


"네. 제일 먼저 문의하신 분과 예약되었어요."


나눔 하다가 시비가 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왠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꽃 달린 화분은 남겨서 좀 더 감상하자고 생각하며, 다른 화분은 정리하기로 했다. 게으른 가드너 답게 역시 건조에 강한 '콩알' 다육이와 '러브체인'이었는데, 두 개 모두 아래로 늘어지며 자라는 종이라 둘을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었다. 볕이 잘 드는 낮, 창가에 두고 사진을 찍으면 식물들은 자연광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애지중지가 아니라 방임주의로 키우긴 했지만, 남들에게 보내는 심정은 마치 아이를 입양 보내며 더 많은 사랑받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 같다고 할까. 보낼 때가 돼서야 시든 잎을 따주고, 광나게 닦아주고, 매무새를 만져주다니.





"두 개 다 제가 구매할게요."


두 화분 모두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시간이 잘 안 나서 퀵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퀵으로요? 퀵을 어떻게 보내는지 저는 잘 모르는데요."

"제가 보낼게요. 잘 포장하셔서 주시기만 하면 돼요."


또 새로운 거래 방식이 등장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거래 방법이 아닌가. 사실,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물건을 바로 픽업해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양측 모두 그 물건만 바라보고 일상을 살진 않기에 일정 조율을 하다 보면 퇴근 후, 다음날, 주말까지 약속이 미뤄지곤 했던 것이다. 비대면 거래와 반값 택배를 경험해 보면서 다양한 방법이 많구나, 했는데, 아직도 등장할 방법이 남아있었다니. 이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거래 방식을 기대하게 될 지경이다.


퀵을 보낼 테니 화분을 포장해서 내놔달라는 말에, 나는 화분의 안위가 걱정됐다. 줄기가 끊어지거나, 화분이 깨지거나, 아마도 오토바이로 이동할 퀵 기사님의 와일드한 모습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단히 고정이 될만한 종이가방으로 이중, 삼중으로 포장을 했다. 배달 기사님에게 전달할 메모 쪽지도 써서 붙였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이동해 주세요. 화분이 들어있음'



늘어진 줄기들을 조심스레 들어 올려 머리를 틀어 올리듯이 얹어주었다. 이동하면서 혹은 꺼내면서 끊어지면 안 되니까. 그런데 넣는 과정에서부터 벌써 떨어진 콩알이 저기 보인다. 다른 물건도 아니고 하필이면 퀵으로 이동해야 할 물건이 화분인 건지. 구매자는 아마도 퀵을 많이 이용해 본 사람일 테고, 줄기 한두 개 끊어지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한 사람인 모양이라고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건 내 추측일 뿐, 받아본 식물이 다 끊어졌다며 불만을 따질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나는 줄기 하나 끊어지는 것에도 마음 졸이고, 구매자의 불만도 지레 짐작하는 소심한 사람이 맞는 모양이다.


정들었던 기간은 오래였는데 내 곁에서 떠난 건 그야말로 번개 같은 속도였던 화분들. 화분을 정리하는 일이 나에게는 유독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곳에서 또 새로운 초록이를 들이면 되겠지. 그렇게 다시 정을 주면 되겠지. 그러나, 해외살이가 끝나는 날이 오면 다시 또 정을 떼야하는 날이 올 텐데, 정을 주지 말아야 하나? 그러나 그게 내 맘대로 될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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