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장사꾼 판매실적 분석
며칠 사이 당근 알람의 횟수가 확연히 줄어든 느낌이다. 나는 여전히 이사를 위한 짐 정리 중이고 거래로 올릴 물건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고 나올 예정이지만, 판매 물품 올리기를 잠시 멈춘 것은 이미 올려둔 것이 너무 많아서였다. 15개가 넘어가니, 우선 올려둔 것부터 완료하지 않으면 내가 더 헷갈릴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거냐고.
막간을 이용해 판매실적 분석에 들어간다. 나는 지금 당근 장사꾼 모드이고, 자고로 마케팅이란 실적 분석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판매 완료된 물건들의 목록을 되짚어보니,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첫 번째, 올리자마자 문의가 쇄도했던 물건들은 주로 이른바 국민템이라고 불리는 것들이었다. 아동용 역사공부 만화책 세트라던가, 특정 브랜드의 트롤리나 서랍장, 국민 가습기로 불리던 가습기 등은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하나씩은 있을 법할 정도로 유명한 것들이었다. 그런 물건들은 가격이 아주 저렴하지 않더라도 가져가는 사람이 있었다.
두 번째, 물건 찾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정말 저렴하게 가격을 매긴 경우였다. 일반적인 물품이 아닌 개인적인 취미 용품이라 수요자가 '관심사가 맞는 사람'으로 좁혀진다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당근 거래로 알게 된 사실은 '세상은 넓고, 나와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주말에 거래성사 건이 더 많다는 점이었다. 평일보다는 여유로운 주말에 사람들은 쉬면서 당근 장터를 구경하는 게 분명했다. 지금 당장 가지러 갈 수도 있으니 '거래할래요!' 손드는 것도 훨씬 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당근거래하러 나가는 건수는 토일월에 훨씬 많았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찜찜하게 짐작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버려지는 물건이 아까워 하나둘씩 올려보던 초반의 물건들에 거래 성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현실 자각 타임.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누가 가져가서 써주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격을 매겼던 초심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1초에 한 번씩 당근! 이 울리며 거래 문의가 쇄도하는 경험을 한 후 생각한 것은, 내가 너무 저렴하게 내놨구나,였다.
'만 원 올려 받을 걸.'
또, 50% 낮춘 가격 제안을 수락한 직후에 원래의 가격으로 문의가 들어오는 걸 경험한 후 생각한 것은, 좀 더 느긋하게 배짱부려도 되겠구나, 였다.
'거절하고 기다려볼걸.'
2,3일이 지난 후 게시글을 끌어올리기 할 때 가격을 낮추면 관심을 누른 사람들에게 알림이 뜨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생각한 것은, 처음부터 가격을 낮게 책정할 필요는 없겠구나, 였다.
'안 팔리면 낮추지 뭐.'
이런저런 경험이 생기는 동안 물건 배달로 몸만 바쁜 장사꾼이 아니라, 물건을 넘기는 마음에도 잇속을 따지는 장사꾼이 들어앉아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물건을 올리기 전에 비슷한 물건의 가격 수준과 최근 거래 완료된 물건의 가격을 검색해 보고, 가격의 마지노선과 상한선을 가늠해 본 후 가격을 책정하고 있었다. 약간의 주저함이 있을 때면 안 팔리면 그때 낮추지 뭐, 두둑한 배짱도 장착되어 있었다. 하! 가져가주기만 해도 좋겠다는 초심은 어디로 가고 놀부 심보가 들어앉았나.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애써 나를 두둔해 본다. 인기 있는 물건은 매진되고 지금은 비주류의 물건만 남은 걸 거야.
그러나 인정해야 했다. 당근! 알람이 줄어든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내 안에 자리 잡은 놀부 심보를 탓해야지 누굴 탓할까. 문의하는 첫 메시지부터 50%의 가격으로 제안하는 걸 보면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반값에 가져가겠다고? 도둑놈 심보아냐?'
너 자신을 알라.
네 안에 놀부가 들어앉아 있어,
상대를 도둑놈으로 몰아가고 있거늘.
내 안에 두 개의 내가 있다.
상대를 도둑놈으로 몰아가는 나와, 그런 나를 꾸짖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