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장사꾼 열흘이면 반택도 한다.
당근 거래 성사 건이 많아지면서 그때그때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쌓여갔다. 왜 재밌게 느껴졌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 생각과 감정들을 묶어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걸 보면, 나는 이제 글쓰기를 정말 즐기게 되었나 보다. 구석을 뒤져 기억에서 잊혀져 있던 물건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닦고, 사진을 찍어 당근 게시글을 올리다가, 당근은 왜 이렇게 안 울리지 초조해하다가,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 글을 쓰다가... 내 하루가 당근에 의한, 당근을 통한 브런치로 채워지길 2주일째, 이번엔 또 다른 새로운 거래 방식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혹시 편의점 반택 가능하실까요?"
사춘기 딸들한테 줄임말 너무 쓰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지만 '반택'이 '반값 택배'를 말하는 것임은 알아들었다. 전혀 못 알아듣겠는 줄임말이 워낙 많지만, 이걸 알아들은 건 순전히 우리 집 중3 덕분이다. 반택 가능 여부를 물어오는 저 사람은 아마도 나보다는 젊은 사람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난 반택 불가능인데......
"반값 택배 보내본 적은 없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보내보지요."
당근장사꾼 열흘이면 반택도 한다? 안 해본 거 해보는 걸 그리 반기지 않는 나인데, 이번 기회에 반택 보내는 방법이나 배워보지 뭐, 싶었다. 중3이 된 큰 딸은 언젠가부터 필요한 물건을 직접 주문하고, SNS에서 아이돌 굿즈 등을 개인 간 거래도 하는 등 역시 젊은 세대는 새로운 기능을 받아들이는데 개방적이었다. 편의점에 가서 반값 택배를 보내기도 하고 받아오기도 하는 것을 보고, '이젠 별 걸 다 하네' 생각했더랬다. 중3 짜리도 하는데, 까짓 거 해보지 뭐.
"보통 1800원 나오는데 혹시 더 나오면 더 보내드릴게요."
구매자는 물건값에 2000원을 추가해서 계좌로 이체하고는, 휴대폰 번호와 이름, 받을 편의점 지점명을 남겼다. 받을 편의점 지점명이 필요한가 보다, 생각하며 '편의점 반값 택배 보내기'를 검색해서 정독했다. 택배 보내기 공부라니. 그다음은 배운 걸 실습할 차례. 앱을 깔고 받을 지점과 수신자 정보를 입력해서 택배 예약을 했다. 이래 봬도 새로운 기능에 조심스러워서 그렇지, 나도 밀레니엄 세대였다고. 하면 한다고.
집 앞에 배달되는 택배, 우체국에서 보내는 택배만 알았지, 귀찮긴 귀찮네...... 약간의 후회를 하며 물건을 담을 박스를 한참 만에 찾아서 포장을 했다. 집 주변 반값 택배 가능한 편의점을 검색하고 찾아갔더니, 카운터에 앉아있던 젊은 직원이 한쪽 편을 가리킨다. 평소에도 이용하던 편의점에 이런 게 있었다니. 택배 무게를 측정하고 송장을 출력할 수 있는 기계가 있는데, 내 바운더리 밖에 있었으니 이제껏 나에겐 존재감 없던 기계다. 처음 하는 건 늘 이렇게 어색하지. 무게를 달아보니 2200원이 나온다. 어라, 이거 내가 손해인데. 200원은 이번 기회에 반값 택배 보내기를 배운 수업료라고 치자고 생각하며 너그러워지려는 찰나, 할인 쿠폰 200원을 쓸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아귀가 딱 들어맞는 이 상황, 기가 막히는군.
택배를 보내고 돌아오는데, 이 뿌듯함은 뭐지? 당근장사꾼이 돼서 배우는 것도 있다는 사실. 하지만 꽤 귀찮은 것도 사실이니 반택은 웬만하면 거절하기로 한다. 하교 후 집에 온 딸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엄마 오늘 반값 택배 보내봤다?"
"큭, 귀엽네, 엄마."
40대 중반 엄마는 이제 중3 딸에게 뭔가 따라 잡히는 걸 넘어서 뒤처질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내 부모님 세대가 스마트한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걸 보면, 10년 후, 20년 후에는 나도 딸에게 뭔가 해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현재의 나에 마냥 머물러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디지털 약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절대, 그런 어른 세대가 되고 싶지 않으니, 나는 발 빠르게 따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