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대면 거래, 이렇게 편한 거였군요.

콩알만 한 간은 호박이 되었다

by 김글인


이사 준비라는 목적이 생기기 전에는 당근 거래에 대해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약속을 조율하고 일부러 나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어찌 보면 배부르고 게으른 면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당근거래가 일상이 되고 보니 약속을 잡고 나가는 것도 할 만했다. 지금은 짐 정리라는 목적이 있어서겠지만.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언제 가지러 오실 수 있는지를 묻는 건, 'How are you?' 인사에 한국인이 자동응답기처럼 'Fine thank you. and you?'로 답하는 것만큼이나 자동으로 나오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플라스틱 수납함을 사겠다는 사람이 말했다.


"계좌로 입금하고 비대면으로 가져가도 될까요?"


비대면으로 거래해 본 적이 없었기에, 순간 당황했다. 당근 페이를 안 쓰고 있으니, 계좌번호와 이름을 알려줘야 하고 집 주소도 공개해야 한다는 건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내 정보를 다 알려준다고?


즉각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주거래 은행이 아닌, 별도의 계좌 하나에 이번 당근 거래의 매출을 모아보기로 한 터라, 나답지 않게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에라 모르겠다. 별 일이야 있겠어.'


조심스럽게 계좌번호를 찍었더니, 개인정보 노출 위험 없는 당근페이를 사용해 보라는 메시지가 뜬다. 애써 눌렀던 경계심이 다시 고개를 든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하나둘 대체되다가 어느새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세상으로의 전환 과정을 다 겪어온 마흔 중반 아줌마는, 또 하나 추가되는 기능을 접할 때마다 보수적인 시각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젊은 세대들이 보면 코웃음칠지도 모른다. 당근페이를 쓰지 않은 이유도 새로운 페이를 무한정 늘리고 싶지 않은 보수적인 생각의 결과였다. 계좌번호와 이름으로 내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뻥뻥 뚫릴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 정보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내 집 앞까지 왔다 간다는 생각이 불러일으키는 경계심은 세상을 너무 위험하게 바라보는 시선인 걸까.


바로 물건 값이 입금되고, 약속한 시간대에 나는 물건을 집 앞에 내놓았다. '잘 가져갑니다' 메시지를 확인함으로써 생애 첫 비대면 거래를 마친 나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편으론 뭘 그렇게 경계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우리나라의 신뢰도, 정직함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면하지 않고 미리 돈부터 입금해 버린 구매자는 나의 무엇을 믿었던 걸까.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직거래인데도, 나를 믿었던 구매자와 약속대로 물건을 내어놓았던 나 사이에는 법적인 구속력이 깔려있지 않아도 각자의 양심을 바탕으로 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첫 비대면 거래 경험은 나의 당근장사꾼 캐릭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생각보다 비대면 거래를 제안하는 사람이 많았고, 대면 약속 시간을 정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도 있었거니와 낯선 사람과 어색하게 서서 주고받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편리한 방법인 것이었다. 첫 비대면 거래 이후, 계좌를 메시지로 찍어주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진 나는 당근페이 사용의 장벽도 넘어서게 되었다.






비대면 거래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어느 날, 이번에는 주방용품이었다. 여유 있는 수량으로 보관 중인 접시 정리대였는데, 대면 거래를 위한 시간 조율을 하다 보니 내가 외출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비대면 거래를 먼저 제안하는 나.


"문 앞에 둘 테니 비대면으로 가져가시겠어요?"

"그럼 돈은 문 앞 우유통이나 뭐 있나요?"


(음? 우유통?)


"돈은 당근페이로 주시면 돼요."

"당근페이는 못해요. 안 해봐서."

"그럼 일반 계좌이체는요?"


그다음 답장이 한참 동안이나 오지 않는 걸로 보아, 또 주방용품 거래인 것으로 미뤄 보아, 계좌이체가 어려운 어르신인가 싶었다. 아직도 현금이 더 편하신 어르신들이 많으니까.


"그럼 문고리에 주머니 하나 걸어둘 테니까, 거기에 넣어주시겠어요? 오전에는 제가 나갈 수 있는데 오후에는 외출해야 해서요."


주머니에 오천 원


나의 간은 며칠 사이 콩알에서 호박만 해진 게 아닐까. 비대면 거래를 먼저 제안할 뿐만 아니라, 돈도 미리 받지 않고 주머니에 돈이라니. 그런 내 마음속에는 아직 당근 거래가 뭔지도 모르는, 폰으로 계좌이체도 어려운 내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있었다. 주머니에 넣은 오천 원을 사진 찍어 인증샷까지 보내주시는 분이 왠지 귀엽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리고, 반성했다. 우선은 대면 거래 먼저! 그리고 어르신 배려 필수!






keyword
이전 04화이런 도파민이라면 중독되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