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와 아차포의 신력 대결

by 권경률

연오는 궁문 앞을 막아선 채로 망치를 빙글빙글 돌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자색 안개 사이로 시퍼런 불꽃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명멸했다.


바다를 건너온 젊은 마루치의 입에서 천천히 접속 주문이 흘러나왔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거북아 거북아…….”


주문은 되풀이할수록 점점 더 빨라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달아올랐다.


“수평선 아래 삼족오의 정령이여. 천상의 불꽃을 이 몸에 실으소서. 깊은 숨 가지신 나의 선조들이여. 마루치의 숨결로 불길을 일으키소서.”


이번에는 소환 주문을 외우고 망치를 힘차게 치켜들었다. 눈부신 광휘가 뿜어져 나오며 빛의 덩어리들이 삼족오의 형상을 이루었다.


연오는 불꽃망치로 앞쪽을 땅 내리쳤다. 삼족오가 크게 불길을 일으키며 공허한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캄캄한 암흑 속에서 번쩍 섬광이 일었다. 불길의 소용돌이가 어둠을 집어삼켰다.


이윽고 주술사 아차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곰의 해골과 모피를 뒤집어쓰고 목에 뱀을 칭칭 둘렀다. 말라붙은 흙처럼 갈라진 얼굴에는 섬뜩한 미소가 매달려 있다.


“네놈이 바로 그 대장장이 주술사구나.”


연오가 말없이 바라보자 아차포는 단검을 꺼내 왼손바닥을 그었다. 피가 땅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에미시 주술사는 주문을 외웠다.


“아아, 이빨의 혼이여. 뼈와 가죽 사이에서 깨어나라. 피의 길을 따라 내게로 오라.”


아차포가 부른 것은 뱀의 요괴였다. 머리 여덟 개가 달린 거대한 뱀이 어둠 속의 진정한 어둠에서 기어 나왔다. 아라하바키의 암흑세계에서 소환한 괴물이었다.


뱀 요괴는 순식간에 이즈모 궁을 둘러싸더니 여덟 개의 궁문을 부수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또 다시 어둠이 소용돌이치고 대지가 울부짖었다. 궁이 거세게 흔들렸다.


담장 안쪽에 있던 이즈모 결사대가 쌍수도로 내려치고 투겁창으로 찌르며 괴물의 진입을 막았다. 그러나 뱀 요괴는 비늘이 단단하여 상처 하나 내기도 힘들었다.


그때 안에서 결사대를 지휘하던 호공에게 묘안이 떠올랐다.


“국주, 얼른 곳간에 사람들을 보내 술독 여덟 개를 내오도록 하게.”


이자미 국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결사대원들과 함께 곳간으로 갔다. 잘 익은 보리술과 매실주가 쌓여있었다. 이자미는 독한 보리술이 담긴 술독을 골라서 내갔다.


호공은 궁문마다 술독을 하나씩 가져다 놓도록 했다. 이백 살이 넘은 노인은 알고 있었다. 오래 묵은 뱀이 요괴가 되면 인간이 마시는 술을 즐긴다. 취하게 만들자.


괴물 뱀은 솔솔 풍기는 술냄새를 맡고 와락 덤벼들었다. 여덟 군데 궁문에서 여덟 개의 머리가 술독에 빠지고 말았다.


궁 밖에서는 연오의 불꽃망치가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까스로 성곽을 돌파하고 궁으로 몰려온 에미시 전사들이 망치에 맞아 차례로 나가떨어졌다.


거인 노카이가 망치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우타리 족장과 하루카는 연오의 신력에 혀를 내둘렀다. 여러 명의 주술사를 만나봤지만 이런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차포는 연오를 제압하기 위해 세 번째 주술을 펼쳤다. 지진과 뱀 요괴 다음은 ‘어둠의 손’이었다.


“하악, 태초의 어둠이여. 아라하바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크륵, 어둠의 손을 쥐어 삼족오를 멸하라.”


소환 주문과 함께 어디선가 웅성웅성 소리가 나더니 어둠이 세차게 요동쳤다. 세계의 경계가 찢어지며 거대한 손이 쑥 나타났다.


허공을 짓쳐오는 압도적인 어둠 앞에서 연오는 얼어붙은 채로 꼼짝할 수 없었다. 그 틈을 타 어둠의 손이 연오를 꽉 움켜쥐었다.


온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터질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가물가물 혼미한 정신은 낯선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죽는다고?


아니야. 연오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고 아득히 멀어지던 의식을 붙잡았다. 아버지와 몽돌 아재, 그리고… 세오를 떠올렸다.


“이 땅은 말이 있고 이 불은 귀가 있으니, 지나던 숨 하나 잠시 머물 자리를 열어 두노라. 삼족오여, 해에게서 내게로 와 이 누리에 광명을 비추소서.”


간절한 기도였다. 잠시 정적이 어둠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것은 침묵의 칼이 벼려지는 시간. 어둠의 장막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광명의 빛이 쏟아져 연오를 겹겹이 에워쌌다. 눈부신 빛살 속에서 연오가 스르륵 모습을 바꿨다. 삼족오, 삼족오였다.


때마침 궁문 밖으로 나온 이즈모 결사대가 황홀한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 이자미 국주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광명의 삼족오가 날갯짓을 하자 몸을 움켜쥐고 있던 어둠의 손이 허공으로 튕겨 나가며 소멸했다. 삼족오는 빛살을 뿌리며 날아올랐다. 해가 떠오르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암흑의 힘은 삼족오 앞에서 사그라들었다.


에미시 주술사 아차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참담한 패배에 망연할 뿐이었다.


패배를 만회할 기회도 없었다. 암흑의 주술은 한 밤에 세 번 밖에 쓰지 못한다. 그것이 아라하바키가 그은 선이다. 승부는 끝났다.


에미시 전사들도 전의를 상실하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우타리 족장은 싸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졌소. 한바탕 혼례 잔치를 열어볼까 했는데 아쉽구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소.”


호공이 빙긋이 미소 지으며 일갈했다.


“이보시게, 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그냥 가면 어떡하는가?”


“죄송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경황이 없소. 일단 산에 가서 추스르고 다시 봅시다.”


우타리 족장은 후일을 기약하면서도 겸연쩍은지 낯을 붉혔다.


이자미 국주가 호공을 쳐다보고 생긋 웃었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신호였다.


“그럼, 안녕히 돌아가세요. 다음에 또 뵙지요.”


국주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자 족장은 쓴웃음으로 화답하고 돌아섰다.


이즈모 결사대는 성곽 위에서 에미시 전사들이 물러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궁으로 돌아왔다. 결사대를 따라 주민들도 몰려들었다.


궁에서는 태산과 이자기가 도끼로 뱀 요괴의 목을 치고 있었다. 여덟 개의 목을 모두 자르자 술에 취해 잠든 거대한 몸뚱이가 회색빛 재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다.


결사대와 주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승리의 함성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달빛 아래서 광명의 삼족오가 빛살을 뿌리며 훨훨 날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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