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로 돌아가는 에미시 전사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병력 일천 명 가운데 사상자가 절반에 이른다. 전투종족의 명성에 먹칠을 한 셈이다.
“아버지, 상심하지 마세요. 그자의 신력이 막강해서 진 거예요. 우리 잘못이 아니라….”
하루카는 어깨가 축 처진 우타리 족장을 다독이며 주술사에게 눈을 흘겼다. 아차포가 신력 대결에서 밀리는 바람에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고 패했다는 것이다.
주술사 아차포는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분명히 어둠의 손으로 꽉 움켜쥐었는데 광명의 날갯짓에 힘을 쓸 수 없었다. 허망한 꿈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산채에는 장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대책을 의논하러 온 것이다.
이번에 이즈모를 친 병력은 족장 휘하의 전사들이었다. 큰 타격을 입었지만 다섯 명의 장로는 별 손실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 전사 삼사백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족장은 부족 회합을 열어 장로들에게 중앙 병력 보충을 요구했다.
“아시다시피 중앙 산채에 전사들이 충분해야 하오. 대족장이 이끄는 병력이 강해야 우리 부족이 힘을 쓸 수 있지 않겠소?”
우타리는 오장로에게 각각 전사 일백 명을 뽑아 산채로 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장로들은 냉담했다.
“그 전에 이즈모의 일을 돌아보고 어째서 실패했는지 따져봐야지요.”
젊고 패기만만한 장로 쿠아리가 족장에게 딴지를 걸었다.
쿠아리는 족장의 처조카로 세력이 큰 씨족을 이끌고 있었다. 우타리는 죽은 부인을 생각해 그의 씨족을 예우하고 장로 자리를 보장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다른 장로들이 반대했지만 족장은 쿠아리를 도와 기어코 장로로 만들었다.
젊은 처조카는 궁술의 달인이었다. 전투든, 사냥이든 활을 쏘았다 하면 백발백중이었다. 쿠아리는 전사들을 강하게 조련하고 교역에 적극적으로 나서 씨족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세력이 급성장하자 부족 회합에서도 발언권이 커졌다.
중앙 병력 보충 건은 난항 끝에 보류되었다. 쿠아리의 발의로 여러 장로들이 이즈모 공략전을 비난하고 책임 추궁을 하였기에 족장은 궁지에 몰렸다.
“건방진 놈! 은혜도 모르고 뒤통수를 쳐?”
장막으로 돌아온 우타리는 격분하여 펄펄 뛰었다. 대족장의 권위에 손상을 입었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노카이를 불러 뛰어난 전사들을 뽑아 은밀히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병력을 나눠줄 수 없다면 빼앗는 수밖에.”
“아버지, 내전은 안 돼요. 가뜩이나 부족이 어려운데 우리끼리 싸우다니요. 이러다가 에미시가 둘로 쪼개질 지도 몰라요.”
하루카가 만류했으나 우타리 족장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평소엔 노련하고 지혜롭지만 흥분하면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이는 게 그의 병폐였다.
이튿날 새벽 한 무리의 전사들이 발소리를 죽이며 쿠아리의 장막으로 다가갔다. 젊은 장로는 부족 회합을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쳐라!”
우타리의 명이 떨어지자 전사들은 바람처럼 날렵하게 경비병들을 제압하고 장막으로 뛰어들었다. 노카이가 침상으로 가 이불을 걷었다. 그런데….
쿠아리가 누워있어야 할 자리에 불룩한 가죽 더미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으스스한 한기에 우타리는 흠칫 몸을 떨었다.
“함정이다!”
전사들은 서둘러 장막을 빠져나갔지만 이내 멈춰서야 했다. 젊은 장로의 수하들이 빙 둘러싸고 화살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쿠아리에게 조련 받은 명사수들이었다.
수하들 뒤쪽에서 쿠아리가 다른 장로들과 함께 걸어 나왔다. 놀랍게도, 주술사 아차포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대족장은 그제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두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반란이었다. 우타리 족장이 병력을 거느리고 장로의 장막을 습격했으니 이제 명분을 쥔 쪽은 쿠아리였다. 주도권이 넘어간 것이다.
우타리는 뒤늦게 후회했다. 부족 회합에 격분한 나머지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이것은 반란이지만 반란이 아니다. 쿠아리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 그가 대족장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에미시 부족은 수긍할 것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쿠아리가 보여준 능력에 비춰보면 오히려 환영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알게 모르게 신망을 얻고 있다. 에미시의 떠오르는 별이다.
이즈모 공략 실패로 사기가 떨어진 전사들은 쿠아리를 새로운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부족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것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걸까? 대족장은 입술을 깨물고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타리 족장은 하루카를 떠올렸다. 그 아이가 산채를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그 시각, 쿠아리의 명을 받은 씨족 전사들이 대족장의 장막을 쳤다. 우타리의 심복들이 모두 붙잡혔지만 족장의 딸은 보이지 않았다.
낭패를 예감한 하루카는 십여 명의 여전사들과 함께 가까스로 달아났다. 그녀가 새벽이슬을 맞으며 달려가는 곳은 바로 이즈모였다.
하루카는 연오의 늠름한 모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