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굴의 사투, 주술사의 정체

by 권경률

아차포는 연오를 향해 사악한 어둠의 주술을 걸었다.


“나의 동굴은 결계를 치고 내 뱀은 독을 품었으니, 어둠 속의 어둠으로 삼족오를 잡아 가두리라! 아라하바키, 이루스카 키스마!”


주문과 함께 땅이 아래위로 흔들렸다. 땅속에서 뭔가 꿈틀꿈틀 뒤척였다.


몸의 중심을 잃은 하루카가 뒤로 넘어지는 걸 보고 연오가 재빨리 붙잡았다.


—우르르 쾅!


별안간 땅이 쩍 갈라지더니 어둠의 그림자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그림자들은 연오와 하루카를 에워싸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암흑의 회오리가 일어나 두 사람을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얼마 후 회오리가 잦아들어 땅에 내려앉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캄캄한 동굴 안이었다. 어둠 속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쉭쉭!


뱀이었다. 크고 작은 뱀이 득실거렸다. 에미시 주술사의 소굴인 뱀굴에 떨어진 것이다. 사납게 고개를 치켜든 뱀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하루카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뱀굴의 살벌한 한기에 몸을 떨고 있었다. 연오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마음을 다독이고 불꽃망치를 꽉 움켜쥐었다.


어둠의 장막을 걷고 아차포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어느새 곰의 해골과 모피를 벗고 목에 두른 뱀도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가만 보니 귀가 유달리 컸다.


“흐흐흐. 어떠냐? 이곳이 너희의 무덤이 될 것이다.”


연오는 망치를 뱅그르르 돌려 불꽃을 소환했다. 그러나 동굴에 습기가 가득 차 불꽃이 좀처럼 일지 않았다.


낭패다.


아차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씩 웃었다. 가뭄에 메마른 땅처럼 쩍쩍 갈라진 얼굴에 서늘한 비소가 매달렸다.


주술사는 단검을 꺼내 손바닥을 그었다. 피가 손목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이즈모에서 뱀의 요괴를 부를 때 보았던 모습이다.


“카악, 이빨의 혼이여. 뼈와 가죽 사이에서 깨어나 내게 오라!”


어둠이 세차게 요동치고 땅이 울부짖었다. 암흑의 세계에서 시커먼 괴물이 기어 나왔다.


상반신은 머리에 뿔이 난 사내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단단한 비늘로 뒤덮인 구렁이였다.


“네 짝을 해친 자가 저기 있다. 갈가리 찢어 원수를 갚아라!”


주술사의 말에 괴물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알고 보니 이즈모에서 죽인 뱀 요괴의 수컷이었다.


—드르륵, 득득


뱀 요괴는 이빨을 갈면서 연오에게 스멀스멀 다가갔다. 동굴의 뱀들도 두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두 겹 세 겹으로 에워쌌다.


하루카는 선 채로 얼어붙어 버렸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심장이 기겁해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연오는 급히 기도문을 외워 광명의 삼족오를 불렀다. 스스로 현신하여 눈부신 빛의 날갯짓으로 뱀 요괴를 떨칠 생각이었다.


“이 땅은 말이 있고 이 불은 귀가 있으니, 숨 하나 머물 자리를 열어 두노라. 삼족오여, 해에게서 내게 와 광명을 비추소서.”


그러나, 삼족오 현신은 이뤄지지 않았다. 뱀굴은 암흑신 아라하바키의 영역이었다. 아직 얕은 연오의 내공으로는 어둠의 장막을 찢고 광명을 비출 수 없었다.


그 틈에 뱀의 요괴가 닥쳐와 꼬리로 연오를 낚아챘다. 하반신으로 칭칭 휘감고 이빨을 들이댔다. 뾰족하게 돌출한 어금니가 연오의 목을 물어뜯을 참이었다.


이제 죽는 건가. 두렵지는 않다. 더 바랄 것도 없다. 세오를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연오는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고통스럽게 찢겨지는 처참한 환희를 고대했다. 스르르, 손에서 불꽃망치가 떨어졌다.


망치는 아래에 있는 단단한 바위를 치고 흙바닥에 굴렀다. 그러자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뼈가 떨리는 깊은 울림이었다.


—북북, 부르륵


땅속에서 흙과 바위가 서로 밀어내고 꺾이면서 둔중한 마찰음이 새어 나왔다. 마치 땅이 안쪽에서 신음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바닥에 가느다란 금이 가더니 그 틈에서 붉은 빛이 번뜩였다. 땅의 상처를 비집고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쳤다. 다음 순간,


—쾅! 쾅! 콰르릉!


하고 땅이 안쪽에서 갈라지며 폭발했다. 굉음과 함께 시뻘건 용암이 터져 나왔다.


뱀굴은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연오를 휘감은 뱀의 요괴도, 하루카를 에워쌌던 뱀들도 화염에 휩싸여 사라졌다.


두 사람은 용암을 피해 동굴 가장자리의 큰 바위에 올라갔다. 숨 막히는 열기와 탄내에 질식하여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연오는 가까스로 집어 온 불꽃망치를 치켜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조종술을 시전했다.


날아오른 망치를 붙잡고 두 사람은 용암이 차오르는 동굴에서 아슬아슬하게 탈출했다.


뱀굴 밖에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달아오른 뺨을 어루만졌다. 열기를 식히고 숨을 고르던 하루카가 연오의 가슴에 기대 눈물을 떨구었다.


연오는 멈칫했지만 이내 그녀를 가볍게 안고 손가락으로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들을 구한 것은 불꽃망치의 신묘한 힘이었다. 불꽃망치는 해모수가 아버지 해님에게 간구하여 얻은 것이다. 그래서 해의 정기를 받은 것들과 공명하는데 땅속을 흐르는 용암도 그중 하나다. 용암의 맥을 잡아 땅바닥이나 바위를 치면 지상으로 끌어낼 수도 있다.


연오의 손에서 떨어진 불꽃망치가 단단한 바위를 쳤을 때 마침 그 아래 용암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루치의 신기(神器)가 미욱한 후계자를 살린 셈이다.


유업을 완수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는 선대 마루치들의 보살핌 같기도 했다. 그는 고개 숙여 선조들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때 등 뒤에서 공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뱀굴에서 뭔가 팔랑팔랑 날아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주술사 아차포의 머리였다. 유달리 커 보였던 두 귀를 양날개처럼 팔랑거려 힘겹게 동굴을 빠져나온 것이다.


머리는 간신히 수풀에 내려앉고서 길게 탄식을 했다.


“아, 고향도 밟지 못하고 객지에서 명이 다하는구나.”


머리가 따로 노는 인간이라니, 연오는 호기심이 동했다.


“필시 보통 인간이 아니구나.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나는 남해도의 최남단 섬에서 왔다. 우리 고향 사람들은 나처럼 머리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다.”


아차포가 체념하고 정체를 밝히자 연오가 궁금증을 못 참고 캐물었다.


“그럼 너의 고향까지 날아가면 되지 않느냐?”


“몸에서 떨어진 머리는 하루가 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다시 심장과 연결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내 심장은 저 굴속에서 타버렸다.”


사람 좋은 연오는 문득 아차포가 불쌍했다.


“좋다. 너의 머리만이라도 고향에 묻어주마.”


아차포는 대장장이의 오지랖에 웃음이 났다.


“하아, 내가 방금 전까지 널 죽이려 했다는 걸 잊었느냐?”


“이미 지난 일이지 않느냐? 나도 고향을 등지고 바다를 건너왔다. 언젠가 그리운 고향에 돌아가 묻히고 싶은 마음은 너와 다르지 않다.”


연오의 말에 아차포는 콧등이 시큰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침묵이 고였다.


“이렇게 된 이상 감출 필요가 없겠지. 너는 해모수의 신물을 찾고 있지 않느냐? 그중 오우관을 에미시 부족이 가지고 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연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흐흐. 어찌 모르겠느냐? 나는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에미시의 주술사가 되었다.”


아차포는 말을 마치고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쿨룩쿨룩


기력이 빠른 속도로 쇠하는 게 보였다. 급하게 몸에서 머리를 분리하느라 숨을 제대로 모으지 못한 것이다. 아차포는 죽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느냐?”


연오가 그의 머리를 품에 안고 물었다.


“조심해… 남해도의 무녀왕을… 조심… 히미코가 노린다… 나도 명령을… 불쌍한 우리 고향 사람들….”


이윽고 아차포의 숨이 멎었다. 연오는 주술사의 눈을 감겨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물러가고 희뿌옇게 동이 트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
이전 26화어미 곰의 슬픈 복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