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세오와의 혼례와 마루치 계승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연오는 큰까막골의 장로와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철막과 치소를 나와 호젓한 들길을 걸어 읍성과 어촌을 오갔다.
들판에는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에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맺히고, 들꽃이란 들꽃은 눈길 닿는 곳마다 흐드러졌다.
돌돌돌 실개천이 감아 도는 기름진 밭엔 허리까지 자란 청보리가 이삭을 잔뜩 머금고 바람에 일렁였다. 길에서 만난 농부들은 참새떼를 쫓으며 보리 풍년을 고대하였다.
봄날의 평화로운 풍경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근오지 읍성이 성큼 다가섰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읍성 한가운데 세오의 집, 천군당이 자리하고 있다.
천군의 거처는 원래 남산 기슭 소도(蘇塗)에 있었는데, 10년 전 준오가 임시로 군장을 맡으면서 이리로 옮겼다.
안채가 삼한에서는 보기 드문 벽돌집이다. 낙랑에서 흙을 구워 만든 벽돌을 들여와 읍성 한복판에 쌓아 올렸다. 군장의 위엄을 세우려고 지은 것이다.
전체적인 규모도 꽤 커서 방, 살림채, 객사, 마구간, 곳간 등이 십수 칸에 이른다.
연오는 담장 너머로 가만히 마당을 살폈다. 뜨락에서 장사치들이 짐을 풀고 있었다. 복색을 보아하니 천반선에서 내린 왜의 상인들이 틀림없다.
중국산 비단뿐 아니라 먼바다에서 온 진주, 대모, 상아, 정향 등이 천군의 곳간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삼족오철정과 맞바꿀 진귀한 물건들이다.
상단의 행수인 듯한 자가 짐꾼들을 부리며 물목(物目)을 확인했다.
그런데 머리에 검은색 도관(道冠)을 쓰고 있다. 도관이라면 언젠가 죽간(竹簡)에서 본 적이 있다. 중국 음양가 도사들이 쓰는 모자다.
왜의 상인이 도관을 쓰다니 별일이라고 연오는 생각했다.
때마침 천군 준오가 툇마루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면에 웃음을 한껏 지으며 바다를 건너온 객을 환대한다.
그는 옥골선풍(玉骨仙風)에 언변이 뛰어난 인물이다. 젊었을 때는 큰까막골 처자들이 애간장깨나 태웠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천군의 자질을 타고난 셈이다.
준오가 행수의 손을 덥석 잡고 객사의 청석 너와 아래로 사라지자 연오는 뻘쭘해졌다. 혼례를 앞두고 인사하러 왔건만 장인이 손님을 맞이하느라 여의치않다.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했다. 사실 연오는 늘 준오가 껄끄러웠다. 왠지 모르게 눈을 맞추기가 불편했다.
어쩌면 몽돌 아재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재는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자라며 천군을 경계했다. 장인으로 모셔야 할 연오로서는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천군당 앞에서 공연히 서성거리다가 연오가 돌아섰을 때다.
언제부터였을까? 세오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박꽃처럼 뽀얀 세오의 얼굴이 그에게로 사뿐 다가섰다. 한 발짝 안이다. 그녀의 향긋한 살내음에 정신이 아득해진 연오는,
“응, 읍성에 볼 일이 좀 있어서….”
저도 모르게 딴청을 부리고 말았다.
그러자 세오는 볼우물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더니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우리 술 한잔 할까?”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총총 걸음을 옮겼다.
사흘 후면 혼례를 치를 신랑·신부가 따로 만나 술이라니 가당치 않은 일이다. 달래 유모가 알면 그 매운 손에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오는 어느새 세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