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 진한연맹 아달라이사금 4년(서기 157)이 되었다. 얼어붙은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순이 부풀어 오르더니 어느새 봄날이다.
연오(延烏)는 바닷가 언덕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풀피리를 불고 있었다. 삘릴리, 피리 소리는 뺨을 스치는 화사한 바람을 타고 수평선 너머로 흩어졌다.
저 멀리 하늘이 열리는가 싶더니 새하얀 돛이 해처럼 둥실 떠올랐다.
“천반선이다! 바위배가 온다!”
연오(延烏)는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바위배’는 잔물결을 헤치면서 해안으로 곱게 밀려왔다. 선체가 널찍한 바위처럼 생겨 ‘천반선(天磐船)’이라고 부르는 바다 건너 왜(倭)의 배다.
청년은 소식을 알리기 위해 언덕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 내려갔다. 숯이 흘러든 검은 내를 훌쩍 뛰어넘어 한달음에 까마귀철막에 이르렀다.
철막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야철로(冶鐵爐)에 철광석과 목탄을 쟁여 넣고 발풀무에 올라서서 불바람을 일으키는 건 쇠불아비들이다.
두들아비들은 단야로(鍛冶爐)에 달군 쇳덩이를 모루(받침) 위에 올려놓고 큰 망치로 번갈아 두들긴다. 서로들 호흡을 맞추며 땀을 콩죽처럼 쏟아낸다.
헐레벌떡 뛰어온 연오가 문간에서 숨을 고르자 아비들이 집게와 망치를 내려놓고 모여들었다. 웃통을 벗어부친 우락부락한 대장장이들이다. 이마에 질끈 동여맨 수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연오는 꿀꺽 침을 삼키고,
“천반선이 왔습니다. 철정을 사러 또 왔어요.”
우와! 철막이 술렁거리며 신명에 휩싸였다. 까마귀철막을 찾아 왜에서 건너온 상인들이다. 우람한 대장장이들의 어깨가 자긍심에 한껏 올라갔다.
철기가 곧 먹거리요, 힘이 되는 시대다.
농사를 잘 짓고 수확을 늘리려면 튼튼한 철제 농기구가 필수다. 굳센 철제 무기를 갖춰야 전쟁에서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다. 먹여 살리는 일이, 지키고 빼앗는 싸움이 철기의 우열에 달려 있었다.
철정(鐵鋌, iron bar)은 바로 그 철기의 알짜다.
까마귀철막은 철광석에서 맥석을 분리하고 철을 생성하는 야철(冶鐵) 기술을 갖고 있다.
삼한(三韓)에 야철로가 드문 것은 아니다. 철광산 부근에서 더러 야철을 행한다.
그러나 까마귀철막처럼 규모를 갖춘 곳은 얼마 없다. 야철로의 직경이 열 자(230cm)로 삼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쇠불아비들도 숙련되어 있다. 불바람을 일으키고 광석 찌꺼기를 배출하여 쇳덩이를 척척 만들어 낸다.
야철로 생성한 철을 곧바로 쓸 수는 없다. 소재를 정제하는 단야(鍛冶) 기술이 필수다. 두들아비들이 쇳덩이를 단야로에 가열하고 망치로 두들겨 불순물을 뽑아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납작해진 쇠붙이를 접거나 잘라서 붙이고 다시 가열하여 두들기는 작업을 수십 차례 반복한다. 조직을 치밀하게 하고 강도를 적절히 높이는 공정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고 땀을 쏟아야 정제된 철정을 얻는다. 농기구나 무기로 가공할 수 있는 쇠 막대기다.
까마귀철막에서 생산하는 ‘삼족오철정’은 근래 들어 삼한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봉(棒) 모양에 삼족오 문양을 찍은 철정이 여러 소국과 부족의 대장간으로 팔려나간다. 철제 농기구와 무기를 성형할 때 깨지거나 부러지는 일이 거의 없어 평판이 매우 좋다.
이제 삼한은 물론 왜, 낙랑, 부여 등지에서 산 넘고 물 건너 까마귀철막을 찾아올 정도다. 철정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상단 간에 경쟁이 붙었다고 한다.
진한연맹에서는 공신력 있는 철기의 소재라 하여 교환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물건을 사고팔 때 삼족오철정을 화폐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대장장이들은 우쭐하였다. 쇠불아비와 두들아비에게 철정은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자식이 잘되면 아비도 신명 나기 마련이다.
왜의 천반선이 반년 만에 또 들어오자 철막은 떠들썩하니 달아올랐다. 흥이 오른 아비들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솜씨 자랑에 열을 올린다. 온갖 허풍을 떨며 입씨름을 벌인다.
“요즘 일이 산더미라 풀무를 계속 굴렸더니 오늘 아침에 퍼졌다네. 그래서 내가 바람구멍에 대고 한숨을 쉬었는데 목탄이 이글이글 타오르지 뭔가. 오늘 불바람은 내 한숨이었네.”
“흥, 그까짓 게 무슨 자랑이라고 목에 힘을 잔뜩 주는가?”
“어허, 자네는 그럼 대단한 잔재주라도 부린다는 말인가?”
“내가 아까 피곤해서 잠깐 졸다가 눈을 떴는데, 아 글쎄 망치가 저절로 쇠붙이를 떡 주무르듯 두드리지 않겠나. 내가 곧 망치이고, 망치가 곧 나일세.”
“이 인간은 입만 열었다 하면 허풍이네그려. 입으로 방귀를 뀌면 쓰나.”
아비들의 옥신각신 너스레에 연오는 모루채를 부둥켜안고 배꼽을 잡았다. 대장장이들이 땀도 식힐 겸 모처럼 신명풀이를 하고 있는데,
“이놈들! 농땡이 치지 말고 쇠나 단디 두드려라.”
언제 나왔는지 야철장(冶鐵長) 무쇠 할배가 칼칼한 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노인의 지랄맞은 성정을 잘 아는 사내들은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야철로에 대고 풀무질을 얼마나 한 걸까? 할배의 누런 베옷은 목탄의 열기에 그을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뜨끈뜨끈해 수건을 물에 적셔 건넸더니,
“자넨 안 움직이고 뭐 하는가? 담금질 안 할 거야?”
이크, 불똥이 튄다. 뿔난 걸 보니 오늘 피운 불이 성에 안 차는가 보다.
“연오는 좀 봐주시죠. 곧 장가가는 새신랑 아닙니까?”
반가운 목소리에 돌아보니 단야장(鍛冶長) 몽돌 아재가 너털웃음을 짓고 서 있었다.
연오의 뺨이 삶은 문어처럼 발그레해졌다. 며칠 후면 세오(細烏)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가슴이 방망이질하여 왠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