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08년 한(漢)나라의 침략으로 조선(朝鮮)이 패망하였다.
왕검성을 짓밟은 중국 군대의 말발굽은 내친김에 동북 변경으로 치달았다. 전란을 피하여 두만강 유역의 대장장이 씨족이 길을 떠났다.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 것이다.
그들은 양곡(暘谷), 해가 돋는 곳을 찾아 길을 나섰다.
등에 망치를 멘 대장장이들이 앞에서 짐수레를 끌었다. 수레에는 풀무와 연장이 잔뜩 실려 있었다. 보따리를 인 여자와 아이들이 하염없이 그 뒤를 따랐다.
진한(辰韓)의 한 바닷가에 이르러 씨족은 드디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낙의 품처럼 포근한 바다에 감싸인 만(灣)이었다. 그 뒤로 구름을 두른 큰 산이 장군처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둥실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이곳에 삼족오(三足烏) 깃발을 꽂았다.
삼족오는 먼 옛날부터 동방에서 숭배해 온 세 발 까마귀다. 옛사람들은 태양에 어린 흑점을 삼족오라 여겼다. ‘해를 품은 까마귀’가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고, 사람의 마음을 천상에 전한다고 믿었다.
대장장이들은 양곡의 바다를 끌어안고 구름산 아래에 대장간을 열었다. 이름하여 ‘까마귀철막’, 삼족오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철기(鐵器)를 내려주는 곳이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펄펄 끓는 용광로가 되었다. 화덕마다 불을 지펴 쇳덩이를 달구고 두들기고 벼렸다. 숯검정을 묻히고 풀무질, 망치질, 담금질에 구슬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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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씨족은 바닷가 토착민과 더불어 부족을 이루고 고을을 일으켰다. ‘큰까막골’의 시작이었다.
한자로는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근오지(斤烏支)’라고 불렀다. 근오지는 진한연맹(辰韓聯盟)의 일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