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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공메자 Nov 26. 2024

126 긴 여행을 떠난 엄마와의 기억

"어머니는 우리가 세상에 처음 만나는 천사이다." 

- 도로시

어머니는 우리가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사랑과 보호를 주는 존재이다.


11년 전인 2013년 11월 엄마는 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엄마 나이 72세, 반평생 갓 넘은 나이인데 하늘나라에서 데려가셨다. 아직 긴 여행을 떠나실 나이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자식들은 엄마를 여행 보낼 준비가 안되었는데 질병이란 놈이 엄마와 영영 이별하게 만들었다.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 등이 원인이었다. 


필자의 집은 조상 대대로 척박한 농토를 일궈 풀칠로 연명하여 왔다. 가난은 그렇게 대물림 되어 필자의 부모님은 힘든 삶의 무게를 버텨 왔다. 오로지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서 말이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지만 요즘 말하는 금수저가 될 수 없었던  부모님은 흙 수저일 뿐이었다. 필자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방황을 많이 하였다. 일은 잘 하지 않고 늘 술에 절어 힘든 나날을 살아오셨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엄마였다. 그렇게 엄마는 생존을 위해 옥수수와 무·배추를 심어 리어카에 싣고 10리나 되는 재래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다. 


10리 길(4km)을 걸어서 국민학교(5학년) 다닐 때의 일로 기억한다. 엄마가 이른 아침에 밭에 심었던 무를 수확해서 흙을 털어내고 리어카에 가득 싣고 재래시장으로 팔러 간다기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일요일 쉬는 날이었던 것 같다. 조금이나마 엄마를 돕고 싶었다. 엄마가 재래시장에서 무를 다 팔고 나서 뭔가를 사준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다. 맛있게 먹었다는 것만이 엄마를 기억하게 한다. 


리어카는 엄마를 그려보는 기억이기도 하지만 안 좋은 기억도 있다. 이전에 "여동생이 있었습니다."라는 글을 블로그에 쓴 적이 있었다. 집 앞 통나무 다리가 부러져 연탄을 실은 리어카에 깔려 여동생이 “엄마, 나 아파.”라고 한 마디만 하고 엄마 보다 먼저 하늘나라도 떠났다. 


야속한 리어카이기도 하다. 농작물을 팔러 다니는 것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뭐 하고 있었을까? 상상에 맡겨 본다. 아버지도 엄마 만나러  2018년 2월 긴 여행을 떠나셨다. 


생전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때 그 시절 사정이 있었겠지. 부모님께서는 삶의 성실함 만큼은 물려주신 듯하다. 필자가 금수저는 못되었지만 흙 수저는 벗어 날 수 있었다. 열심히 살았다. 남한테 피해 주지 않았다. 아내의 수고가 많았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까지 쌀 밥을 마음 놓고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조상들 제삿날이나 명절이 되어야 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때는 마음속으로 명절이 기다려지곤 했다. 왜냐고? 쌀 밥도 먹고 다른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를 회고해 본다. 당시 옥수수밥을 도시락으로 싸 가지고 다닌 기억이 있다. 옆 짝꿍은 쌀 밥 도시락에 계란프라이 그리고 소시지까지…  너무 부러웠다. 한 날은 짝꿍이 도시락을 바꿔 먹자고 하였다. 너무 맛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못 만났는데 고마운 친구 만나 보고 싶다.  


"더 많은 부를 얻으려 너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의 등급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높은 등급을 차지하는 자산은 아름다움과 도덕성, 건강과 같은 인격 그 자체다. 다음으로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재산과 소유물, 마지막으로는 명예와 명성처럼 남에게 주는 인상이다. 이 세 가지의 자산이 어느 하나가 과하거나 모자람이 없이 골고루 갖춰졌을 때, 인간은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난한 삶과 부자인 사람의 격차가 그러하고 사람의 앉아 있는 자세나 운동하는 자세가 그러한 것처럼, 이러한 자산들도 그것들 사이의 대칭이나 균형이 과하게 맞지 않으면 반드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고 열변을 토하는 세상이지만 사실 먹고 살 만큼을 까마득히 넘어선 필요 이상의 부는 우리의 만족감과 행복에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작용할 뿐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오는 걱정과 불안 때문에 행복에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부의 수준을 스스로가 정해두어야 한다. 너무 어마어마하지는 않게 말이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여 해당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면, 그 이후로는 건강과 능력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궁극적인 행복을 쌓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되겠다. -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인생수업" 


가난은 누구 책임인가?  조상님 탓인가? 부모님 탓인가? 아니면 네 탓인가? 혹자는 말한다. 생존이 우선인 서민들이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당신이 내 위치라면 신문 볼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경제 뉴스가 눈에 들어오냐고? 또 주식에 투자할 돈이 어디 있냐고? 삼시 세끼 다 챙겨 먹고 언제 돈 버냐고? 운동할 시간 아껴서 돈 벌어야지? 공감하고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황하던 20대 초반 때 막노동하고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된다.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러나 부자가 태어날 때부터 부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예외는 있겠지만 말이다. <핵심> 부자는 피나는 노력으로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가난한 사람들도 지레 포기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정주영 전 회장님의 어록이 생각난다. "이봐, 해봤어?"에 답이 있을 것 같다. 죽을 각오로 한번 해 봤냐고 말이다. 


<글의 요약: 엄마의 리어카>


엄마는 시장으로 가셨고,

리어카에 실린 무와 배추,

내 작은 발로 따라갔던 그 길.


그 길 위엔 힘겨운 삶의 흔적,

엄마의 손, 아버지의 방황.

“엄마, 나 아파,”

여동생의 마지막 말.


가난 속에서도 배운 성실함,

부모님의 사랑, 그 길을 잇는다.

“해봤어?”

그 길을 나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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