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공메자 Nov 26. 2024

125 당신은 어떤 아버지인가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떻게 사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 클라렌스 버딕스

아버지는 삶의 진리를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구나 아버지가 다 있다. 아버지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겠는가? 필자도 아버지가 있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필자의 아버지는 그리 현명하지 못했다.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아버지도 가난하게 살았다. 필자에게는 할아버지이인 것이다. 아버지들 원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이 죄인가? 남들은 부자로 사는데 왜 필자의 아버지는 가난하게 살았을까? 현자들은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한다. 그러면 가난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건가? “싫습니다. 싫었습니다. 싫어요.” 결코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렇게 살았다. 36년 전 박봉의 소방공무원이 되었다. 첫 봉급이 아련하게 기억이 난다. 25만 원 언저리인 것 같다. 꿈이 있어서 공무원이 된 것은 아니다. 이곳저곳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다가 당시 소방관이시던 외삼촌의 권유로 소방관이 되었다. 멋있는 제복 공무원을 입고 소방관으로 살게 되었다. 타인(국민)을 위한 삶, 소중함을 처음에는 잘 몰랐다. 새내기 소방관일 때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 집과 직장을 오갔다. 결혼도 해야 되고 집도 사야 되고 차도 사야 되고 말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13평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그것도 은행 대출을 내서 말이다. 그렇게 필자의 인생 2막(31~60세)은 시작되었다. 


1988년 새내기 소방관으로 시작한 이후 15년 만에 소방간부 공무원(소방위 / 6급)이 되었다. 2003년 초임 근무지인 강원도 태백에서 영월 소방서로 발령이 났다. 이 무렵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2004년 필자의 아들 6살 때의 일이다. 


직장 아버지 학교를 다녔다. 좋은 아버지 재단이 운영하는 아버지 학교였다. 2주 동안 안○○ 강사님의 강의를 받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쓰는 편지로 마무리가 되었다. 당시 편지는 어디로 갔는지 분실하고 말았다. 그리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버지 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버지 면허증을 받았다. 


이제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음의 사항을 명심하여 지키겠습니다. 1) "자살"도 "살자"로 읽는 눈을 갖겠습니다. 2) 신은 두 손으로 때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언제든지 한 손을 남겨두겠습니다. 3) 어떤 장애물도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는 발로 모범이 되겠습니다. 4) 현관문을 들어설 때는 짜증을 털고 고통을 벗어 미소 띤 얼굴로 다가가겠습니다. 5) 자녀들에게 날마다 귀로 먹는 보약(칭찬과 격려)을 달여 먹이겠습니다. 6) 가정 행복은 시간으로 쌓아 올려지는 성(城)인 것을 잊지 않고 시간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7)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 아이들의 어머니를 사랑해 주는 것임을 믿으며 부부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필자는 아버지 면허증 대로 살아오지 못했다. 필자의 아이가 한창 성장 시기인 초등학교 시절을 함께 하지 못했다. 후회를 많이 하게 한 시기였다. 


소방간부가 되면서 영월 소방서 근무 중 2005년 9월경 상급부서인 강원도 소방본부로 발탁이 되었다. 1600만 원을 호주머니에 넣고 고향인 태백을 떠나 강원도 수부도시인 춘천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16평 공무원 임대 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당시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일과 술에 묻혀 살았다. 빨리 성장하기 위해서는 승진을 해야 되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다. 주말도 없었고 평일에는 밤 12시가 넘은 날이 비일비재했다. 하물며 밤을 꼬박 새워 일을 한 적도 있었다. 


일이 조금 한가할 때는 동료와 타 부서 직원들과의 술자리가 많아졌다. 핑계 갔지만 당시 필자는 사람 관계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소통의 방법을 술로 해결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은 하숙집이 되어 버렸다. 아들 잠잘 때 출근하고 퇴근했다. 아들 초등학교 6년 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잘 모를 정도로 말이다. 아들 케어는 오로지 아내 몫이었다. 아내와 아들에게 늘 죄를 지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 지나간 세월 돌이킬 수는 없지만, 남은 삶은 아내와 아들을 위해 집중하려고 한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로 살고 있는가?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는 자녀의 유전자를 절반 제공하는 부모 중 한 명이다. 또 아버지는 가족 내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가족의 보호자, 생계 책임자, 자녀의 교육과 훈육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아버지는 자녀에게 정서적 지지이자 모델이다. 아버지와의 상호작용은 자녀의 자아 존중감, 사회적 기술, 정서적 안정성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어떤 아버지로 살아야 하는지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삶의 몇 가지 원칙들은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자녀와 열린 마음으로의 소통이 중요할 것 같다. 자녀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 항상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 자녀에게 긍정적인 모델이 되는 것이 중요하겠다. 행동과 말로써 도덕적 가치와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 번째, 자녀에게 적절한 사랑과 지지를 표현해야 한다. 자녀가 안전하고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정서적 지지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네 번째, 자녀의 독립성을 존중해 줘야 한다. 과잉보호나 통제보다는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 번째, 부모는 스스로의 건강과 행복을 챙겨야 한다. 건강한 부모가 건강한 자녀를 기를 수 있기에, 부모 자신의 삶도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핵심> 좋은 아버지는 소통하고, 본보기가 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고민  한번 해 보신적이 있는가? 


<글의 요약: 좋은 아버지란>


가난 속에도 등을 펴고,

작은 집에도 꿈을 담고,

사랑의 무게를 등에 지며,

내일을 준비하던 그대.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으로 가치를 보여주며,

칭찬과 격려를 보약 삼아,

기둥 같은 믿음을 세우네.


가끔은 후회 속에 멈추어도,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다짐하는 마음,

그것이 아버지의 이름이다.


아버지여, 당신의 발자국은

길 위의 등불이 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