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여행의 절반을 보냈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 하루하루 할 일들, 볼 것들, 사진으로 기록하며, 세끼 챙겨 먹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가는 나의 현실은 잠시 접어 둔 이 순간이 감사하고, 간단하며, 간소하게 살아가는 하루가 감사로 넘친다. 내 가족에게 더 다가가길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길 바라본다.
- 2023년 4월 26일 나의 다이어리 메모
우리는 크로아티아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다. 빈을 여행지에 넣은 건 순전히 크로아티아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였다. 그래서 여러 경유지 중 어디에 머물 것인지 남편이 물어봤을 때, 나는 고민 없이 빈에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스페인으로 가기 전 3박 4일을 빈에서 머물렀다. 여행을 한지 한 달을 향해 가는 그 시점, 우리에겐 유럽은 생소하지도 낯설지도 않으며, 짐을 풀고 싸고 반복하는 일은 익숙해졌다. 그다음 머물 곳의 상태가 사진과 비슷할지, 잠자리가 편할지, 단순한 생각을 하며 지내는 게 익숙해진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두브로브니크 공항으로 가는 길은 아쉬움이 많았다. 내가 언제 다시 이곳을 올 수 있을까, 생애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 순간순간이 내가 다 기억해야 할 장면 같았다. 그래서 우버를 타고 공항 가는 길 나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내가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추적추적 왔는데, 이놈의 날씨는 내가 미련 한가득 가지고 떠나길 바라는지 아주 화창해서 발길이 떨어지기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주어진 일정과 성실함으로 무장한 나, 자신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강박이 시작이 되는 나를 막아 세우진 못했다. 다만 심정적으로 이곳에 언젠가 또 올 일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한구석에 두고 그렇게 나는 크로아티아를 떠났다.
우리는 생애 마지막을 매 순간을 놓치고 아니, 보내고 있다. 단지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뿐이다. 여행이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런 생의 선명함을 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일상은 나를 익숙하게 만들며, 무던한 하루를 보내게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나를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이 여행에서 얼마나 나를 많이 발견했던가. 놀 줄 아는 나, 쉼을 쉬고 있는 나, 선명하게 웃고 있는 나,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나, 사랑하는 가족을 보며 사랑의 말을 건네는 나, 자연의 일부로 숨 쉬고 있는 나, 나는 저 파란 하늘만큼이나 파란, 맑음의 나를 보았다.
우리가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이었다. 그래서 호텔에 짐을 대충 던져놓고, 다음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빈에서의 3박 4일 일정 중 내가 미리 한 것이 있다면, 빈필하모니오케스트라 공연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빈에서 머무는 기간 동안 내가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짜를 검색하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매 후, 그날에 입을 나름 깔끔한 옷을 준비해서 다녔다. 그리고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숲을 잘 못 보는 사람이다. 늘 눈앞의 나무나 꽃에 집중하고, 그것만 바라보다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허똑똑이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런 내 모습이 여행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아무리 가족과 함께하고 큰 틀에서 계획을 짰다고 하더라도 즉흥적이며, 어느 하나에 마음이 고정되는 내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빈에서는 오로지 빈필하모니오케스트라 공연 하나만 생각하고 온 것이다. 그 어떤 것을 검색할 생각도 못한 것이다. 그래서 숙소에 도착한 밤에 레오폴트 미술관과 벨베데레 궁전을 예약하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우리는 빈에서 아주 멋진, 괜찮은 시간 속에 머물렀다. 미리 일정을 꼼꼼하게 짜서 왔든, 느슨하게 왔든, 어쨌든 우리의 여행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행에서는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데, 삶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빈틈이 없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이불킥은 당연하고 몇 날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책하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말도 건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말조차 타인을 통해서 듣길 원하고, 가족에게 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만큼 나는 스스로에겐 조금의 인정도 베풀지 않았으며 나를 바로 보지도 못했고 내 마음을 드려다 보는 일을 외면하곤 했다.
내가 빈에서 빈필하모니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자 한 데는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거나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나는 지금도 내가 어떤 곡을 들었는지 잘 모른다. 단지 익숙한 연주음을 들으며 온몸으로 느낀 나를 떠올릴 뿐이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 앞을 지나가며 들었던 그 피아노 소리가 듣기 좋았다.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몇 년을 조르니 엄마가 아빠 몰래 피아노 학원을 초등학교 6학년 때 보내줬다. 유치원생과 함께 바이엘을 치면서도 나는 좋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엔 이걸 아빠에게 들키면 엄청 맞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나는 오래 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우연히 들은 바이올린 연주에 매료되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잘 모르지만 악기음에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 나의 가정이 생기고 혼자 육아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감정을 다스릴 때, 악기음이 나를 다독여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일반 대중가요를 들으면 노래 가사를 해석하고, 어느 순간 그 행위를 하고 있는 나를 견디지 못하는 걸 발견하곤 깨달았다. 나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 이 여행의 경유지에서 나는 경험하고 싶었다. 그 공간 속에 머물러 있어보고 싶었다.
저녁 7시 반 공연, 영화에서 볼 만한 장면들을 나왔다. 짐과 외투를 맡기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외투를 맡기는 모습, 공연장에 입장하기 전에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우리처럼 여행을 왔다가 공연을 보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차례대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때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 첫째가 4학년이라 객석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다. 그런 아들을 본 노부부는 깜짝 놀라며, 아들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당시 만 나이를 얘기해 줬다. 할아버지는 웃으면 잠을 자둬 괜찮다며, 대신 코는 골지 말라고 농담을 하셨고, 남편은 아들에게 그 말을 전달해 줬다. 그리고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었고, 끝날 때까지 어느 누구 하나 졸거나 코 골지 않고 연주를 즐겼다. 그리고 공연이 다 끝나고 일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오늘 멋졌다는 말을 전하며 자리를 떠났다. 외국인 할아버지의 작은 관심과 칭찬이 아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기도 했고, 훗날 아이들과 그 이야기를 회자하며, 여행 중 작은 에피소드로 남아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공연장을 나온 그 시간 밖은 깜깜했고, 그 건물은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건물과 그 상황에 심취해서 정말 멋지다며, 기분 좋은 마음을 힘껏 뿜어내주고 있었다. 여행 중 하나이면서도 나름 기대한 여정이라,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도 함께 느끼고 즐거워해, 그 순간이 마치 오래 간직될 것을 짐작이라도 한 것 마냥 나는 그 당시 나의 표정, 아이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그 공연은 어쩌면 어린아이들보다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선망의 눈으로 봐왔으며, 음악이든 미술이든 예술을 하는 향유하는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시간들, 보고 느끼며 즐기는 일과 멀었던 어린 시절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이제껏 나의 인생의 경유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나에게 어떤 경험을 주었던, 나는 빈에서의 경유지가 내 인생의 경유지로 남을 것이다. 내 인생의 경유지는 빈과 같이 경험하고 느끼며, 나에게 선물을 주는 시간임을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