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여행 중 남편과 몇 번의 갈등이 있었는데 기억 남는 갈등 중 하나가 이탈리아에서 내가 화를 내고 길을 나섰는데 살아있는 쥐를 만났던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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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두브로브니크에서 일이다. 버스로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길을 건너 계단을 올라가면 우리가 머물 숙소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와서 도착 당일 무얼 하기엔 좀 그랬는지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아이들과 먹을 저녁을 사서 오기로 했다. 그런데 숙소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무엇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지나치게 감정을 가족들에게 투척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너무나 잘 안다.
감정이 해소될 때까지 온 가족들에게 트집을 잡거나 잔소리를 과장한 몹쓸 감정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내가 있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감정이 비워져 혼자 잠잠해진다. 침울한 표정으로 감정을 담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화가 나서 나랑 말도 하지 않으려는 등 돌린 남편이 있다. 그 절차를 내가 지금 밟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비가 많이 내려 숙소에 머물게 하고 나는 장바구니를 챙겨서 남편의 뒤를 밟아 걸었다. 내가 투척한 화를 담고 있는 화난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하기도 하면서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속이 밴댕이 소갈딱지라며 속으로 흉을 보며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문제는 계단이었다. 보통 한국의 계단은 시멘트나 거칠거칠한 표면을 가진 계단들이다. 그러나 유럽은 달랐다. 맨들맨들한 바닥이 빗물을 받아 아주 미끄러웠던 것이다. 내가 생각할 틈도 없이 하늘을 올라 계단의 모서리에 머리 뒷면과 엉덩이가 세게 떨어졌다는 표현보다는 박았다는 게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세상에! 유럽에서 저세상 구경을 하는 줄 알았다. 여기저기 몸을 잘 부딪혀서 평소 내 몸에서 멍이 든 곳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어디서 멍이 든지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웬만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먼저 머리에 피가 나는지 확인했는데 다행히 피가 나지 않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화가 덜 풀린 남편은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갔다. 나는 아프다며 뇌진탕으로 죽는 거 아니냐며 남편에게 앓는 소리를 했다.
" 그러니깐 심보를 곱게 써야지."
숙소 돌아와서 나의 엉덩이를 본 아이들은 놀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별명이 하나 더 늘었다.
'유럽 엉덩이'
이 글을 쓰며 아이들을 불러 물었다. 엄마가 크로아티아에서 넘어진 일 기억하냐고,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웃더니 나를 보며
"유럽 엉덩이요!"라며 웃는다.
그래, 못난 심보로 아이들과 남편의 맘을 상하게 한 죄로 나는 시퍼렇게 물든 엉덩이를 가졌고 꽤나 오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