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리트
일상에서 공간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내 방이 생긴 순간부터 그 공간으로 나를 표현했다. 어떤 날은 책상을 창가로 옮기고, 어떤 날은 창가를 가리기도 하고 그렇게 공간 속 가구 배치를 통해서 마음 상태를 표현했다. 그건 내 가정이 생겨서도 마찬가지라, 만삭 때 냉장고를 혼자 옮긴 나를 보고 남편이 가구, 가전 옮기는 것 금하기도 했으나 지금도 가구를 옮긴다. 공간을 재배치하면서 기운을 내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기도 하고, 묵은 때를 벗기듯 그렇게 나를 다독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가 가구를 옮기면 관람자 모드가 되어 나를 관찰하고 바뀐 구조를 즐겨주기도 하고, 엄마가 또 가구를 옮긴다며 아빠에게 이르기도 한다. 그럼 남편은 못 말린다고 어처구니없어하며 나를 받아들인다. 한 달 반이라는 여행을 하면서 짐을 풀었다 챙기는 일, 숙소로 옮기는 일은 어쩌면 공간을 재구성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집을 바꾼다는 건 흔하지 않으나 여행에서는 흔한 일이며, 바뀐 잠자리에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그 하루가 어떤 모습이든 새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다르에서 하룻밤을 묵고 스플리트로 이동했다.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 사전에 알아보고 간 정보로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를 위해 건설한 궁전이 있으며, 중세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스플리트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한 숙소를 먼저 찾아갔다. 그곳은 일반 주택가에 있는 빌라와 같은 형태로 뛴 곳이었다. 일층보다는 약간 지대가 낮은 곳이 머물 곳이며, 호스트는 같은 건물의 위층에 머물고 있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그는 약간의 간식과 음료를 준비해 맞이했으며, 어디를 가면 좋은지 이것저것 정보를 알려주었다. 2박 3일 머무르는 동안 그곳은 편안했으며, 스플리트 어디를 가든 돌아다니기 좋은 위치였다. 무엇보다 주택에 살고 싶은 나에게 1층의 마당에 약간의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이 맘에 들었고, 내가 좋아하는 로즈메리가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로즈메리를 쓰다듬으면 손끝에 묻어나는 그 향기가 나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로즈메리를 만날 때면 손끝으로 인사하곤 한다.
스플리트에서 우리는 젤라또를 사 먹고, 황제가 머물렀다는 옛 궁터를 돌아다니기도 했으며, 맛있는 음식을 사 먹기도 하고, 숙소에서 한국 음식을 해먹기도 하며 보냈다. 그런데 그곳에서 기억에 남는 건 중세의 모습도 맛있는 음식도 아닌, 해안가에서 아이들이 발 담그며 놀았던 것이다. 4월 말의 스플리트는 반팔을 입고 돌아디니기 적당한 날씨였다. 그러나 해안가에서 놀기엔 감기가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처음엔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언제 이곳에 올까, 이번이 아니라면 아드리아해에 몸을 담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아이들에게 발 담그기를 허락했다. 스플리트에서 기억은 아드리아해와 함께였다.
여행 속 공간은 시간과 돈과 마음을 일부러 써서 공들인 것이라 그 순간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무언가 하려고 애썼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지 글을 쓰는 이 순간에 깨닫는다. 적당한 바람이 거실을 통과하며, 주말 오후 평일에 밀린 빨래를 하고 그 빨래에 남아 있는 세제의 향을 맡으며,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사이사이 들리는 속에서 여행을 추억하며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여행의 공간과 다를 것이 없는데 나는 자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음을 지금 느낀다. 어쩌면 그래서 여행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이 여행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