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우리에게 의외성을 준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by 나무

둘이, 넷이 되어 삶을 살아가며, 가정의 모습을 , '달라지다', '변화하다', '성장하다'와 같은 하나의 서술어 하나로 표현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적절한 표현을 찾기가 마땅치 않으나 빗대어 표현하자면 '생명체가 한 생애를 살아가듯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남자 친구와의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며 매일 함께한다는 신기함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이별의 시간을 늦출 수 있는 관계가 생긴 것에 대한 안심이 가정에 대한 생각이었다. 또 한편으론 사회생활도 해 본 적 없이, 부모에서 남편에게로 이어진 경제적 의존하는 나를 마주하며 나는 온전한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못함에 불안함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남자 친구에서 남편이 된 그는

'우리 가정의 중심은 너야. 네가 있어야 우리 가정이 온전하다.'

며 써 놓고 출근했다. 그의 글로 인해 가정은 출퇴근하는 그의 모습과 가정을 지키는 나의 모습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내게 일이 생기면서 가정은 일터이며 불공평이 존재하며, 나의 희생만 요구하는 곳, 불만과 불신, 무엇보다 저 깊은 곳까지 묻어뒀던 나의 어두운 내면을 직면하게 하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상적인 인간관계 설정이 불가능했으며, 그로 인해 나와 내 가정은 병들어갔다.


크로아티아를 가게 된 이유는 순전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유럽 일정을 짜면서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고, 남편에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남편은 처음에 반대했다. 첫째는 차를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니기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들과 우리의 체력이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자꾸 늘어나는 나라를 보며 처음에 우리가 세웠던 유럽 여행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남편의 말이 타당했지만 그 논리에 답하는 나의 감정을 남편은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크로아티아를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기대가 컸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2박을 했다. 크로아티아를 쭉 여행하며, 남편은 서유럽의 화려함과 발전된 모습보다, 동유럽의 덜 발전된 모습과 자연경관을 더 좋아했다. 이렇게 여행은 우리에게 의외성을 준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무료하며, 늘어진 시간을 만났다. 서유럽의 빡빡한 일정과 달리, 자연을 마주하고 한가한 주말과 같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 하루가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우린 트램을 타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우리나라의 버스터미널과 유사한 곳으로 갔다. 미리 한국에서 버스 편을 예매했기에 버스 타는 곳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버스 매표소 직원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버스 타는 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버스 시간은 다가오고 남편은 마음이 급했다. 우리를 한 곳에 앉혀두고 그는 분주하게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 상황에서 나는 예기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

한국에서 나는 외출하기 전 늘 예민하게 굴고, 폭군으로 변해 남편과 싸우거나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시간 강박'과 예기불안이 합쳐져 나는 늘 초조해하고 식구들에게 나의 불안을 감정으로 표출한 것이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불안해하며 안 좋은 감정을 표출하던 내가 딸과 아들이 장난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

웃었다. 기다렸다. 조급함 없이, 불안함 없이,

그리고 10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남편이 우리에게 뛰어와 이끌었다. 우린 웃으며 달렸고, 무사히 차를 탔다. 여행이 나에게 예측 못하는 상황이 당연하다는 걸 알려줬다. 그건 내 삶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맨 뒷자리밖에 남지 않아 그리로 갔다. 그리고 그녀들을 만났다. 신생아 카시트 바구니에 앉아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소통하고자 한 그녀와 자기와 닮은 그녀에게 쉴 새 없이 눈길을 보내며, 챙겨 주는 그녀를,

무엇보다 그 어린 그녀와 둘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딘가 간다는 게 나에겐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 시절 아이에게 모유수유하며, 남편의 차가 아니면 어딜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내 삶은 아이에게 묶여 세상이 끝났다고 여기며 산후우울증을 겪던 때라, 그 감정이 올라와 그녀의 고달픔을 측은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기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자 그녀가 꺼내 들은 건 책이었다. 삶의 변화가 있다고 그녀는 자기 삶을 다 변화시키지 않았다. 자신의 삶 속에 변화된 삶을 조금 내어 쓰고, 자기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 목적지가 다 와 갈 때쯤 그녀들은 내렸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어린 그녀와 눈 맞춤으로 그녀는 내릴 때 고마움을 표하고 내렸다. 그녀에게서 나는 가정은 나의 희생을 요구하는 곳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전에 머문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간단히 먹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듯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걸으며 자연을 내 눈에 담았다. 어제 한번 갔다 와서 우린 자연스럽게 길을 걸었다. 그리고 짐을 찾아 다음 여정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반복되는 여행이 일상이 되어감을 느끼며, 나의 일상에 힘을 빼는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