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로 2
여행을 하면서 제일 많이 한 것은 '걷기'와 '기념사진 찍기`이다. 한때는 카메라만 있다면 가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결혼도, 연애도, 먹고 자는 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사진만 한다면, ' `사진은 나다, 내 삶은 사진이다.`라고 생각하며 카메라를 끼고 살았다. 사진이 내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진을 찍는 일이 부끄럽다. 사진에 대한 내 마음을 접은 일이, 카메라가 내 손에 없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지 않는 것이 부끄러워 사진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일보다 드물었다. 내가 찍은 사진이라곤 아이들 사진이 전부였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사진에 미쳐 산 세월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구나 사진을 다 찍고 있었으며, 누구나 사진을 찍어주겠다거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물론 기념사진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사진은 그랬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환경에 있든,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그냥 자유자재로 생각을 풀어놓게 해주는 것, 나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사진을 그만둔 것에 대한 속상함과 화, 이면에 그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살아가지 않는 내 삶에 화가 나있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우리가 여행한 시기가 4, 5월이라,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계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여행 중에 한국인을 만나는 게 흔하지 않았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스르지산을 가기 위해서 버스를 나선 그때 한국인 노부부가 보였다. 아들은 반가운 나머지 노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물어보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버스 시간과 가는 노선이 같아서 노부부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스르지산에서 두브로브니크의 전경을 바라보고,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때 노부부가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본 노부부는 사진을 정말 잘 찍었다며, 이번 여행에서 건진 사진이라고 무척 좋아했다. 평범한 사진이었다. 그 평범한 사진을 나는 얼마나 비범하게 바라봤는지, 그게 뭐라고 그렇게 화를 내면 처다도 보지 않고 살았는지 순간 내가 우스워졌다.
그곳에서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행복했다. 기뻐했다. 많이 웃었다. 적당한 해가 질 무렵의 시간, 흐린 날씨 속에서, 파인더 안으로 들어온 세상이 나를 반겨주었다.
여행은 삶에서 외면하며 살았던 일을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괜찮아, 그냥 해도 돼. 오늘 하루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온전히 널 위한 거야.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돼. 뭘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즐기면 돼.'
잊고 살았다. 눈을 반짝이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지냈던 시간을, 현실 속에서 방황은 하되, 꿈은 놓지 않았던 시간들, 그 꿈의 결과 따위는 내가 중요하지 않았음을 그냥 그 자체가 좋았던 그 시간이, 그 사진들을 지우고 사느라 내 현실이 참 고달팠다.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나니 그제야 나는 나를 바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자유로움을 갈망하는지, '창작하겠소...'라는 말을 얼마나 좋아했고, 그 결정대로 삶의 물결을 만들고 싶어 했는지.
남편은 늘 말한다. '너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
그러면 나는 무수한 말들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한다.
'뭣이 중요한데...'
그 무수한 말들이 참 초라했음을 안다. 나는 이미 10대를 거쳐 20대 중반을 달렸던 그 시간에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장 갈망하는 건, 나를 이미지화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수한 생각을 이미지화하고, 그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피사체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사진 속 그런 나와 닮은 당신을 마주하는 것, 그 일의 즐거움이 되살아나자 나는 미친듯이 날뛰었다. 그래서 나는 스르지산에서 미친듯이 기뻐했던 그 순간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거기서 시작이었다. 나를 표현하는 일을 통제하지 않겠노라고. 현실로 돌아간다면, 무수한 생각으로 나를 막지 않겠노라고, 그저 이렇게 글을 쓰고, 찍고, 그리고, 표현하며 살겠다고. 무수한 핑계 속에서 나를 지키겠다고, 자유롭게 풀어주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밤에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