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르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 본다. 베네치아에서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내에서 이동 수단은 버스였다. 이동시 남편과 둘이었다면 야간버스를 노려봤을 텐데 초등학생 둘에겐 무리라 생각해 낮에 이동했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여정인지,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크로아티아 지도를 보며 이동하는 중간 지점마다 숙소를 마련해야 했다. 크로아티아에서 꼭 들려 볼 곳을 플리트비체 공원과 두브로브니크로 정한 상황이라, 두브로브니크까지 가는데 아이들이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버스 시간을 고려해 자다르와 스플리트를 넣었다. 그래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자다르로 향하는 버스 시간에 따라 일정을 맞춰 움직였다.
자다르를 검색하니 일몰이 멋지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일몰 시간을 확인하고 자다르에 도착해 숙소에서 간단히 라면을 먹고 해안가를 갔다. 이른 저녁을 챙겨 먹지 않고 갔어야 했는지,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어둑해지며 해가 넘어가는 게 보였다. 해가 넘어가는 그곳을 향해 우리는 뛰었다. 뛰는 도중 아들이 배가 아프다며 멈춰, 나는 일몰 보는 걸 포기하고 아들에게 갔다. 그리고 함께 걸었다. 남편은 촉박하게 일정을 잡았다며, 저녁은 거기 가서 일몰을 보고 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그곳에 가면 그래도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미 해가 졌으나 그 잔상이 남아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들었다. 밀려오는 파도가 파이프 관을 통해 내는 오르간 소리를. 그 소리를 아이들은 바닥에 몸을 낮춰 들었으며, 나 또한 그 소리를 귀 기울이며 가만히 있었다. 바다가 있는 곳에서 태어나 자라 바다는 내게 낯설지 않다. 꿈에 빈번히 등장하는 배경도 바다이다. 어떤 바다는 내게 돌고래를 보내고, 어떤 바다는 거친 파도로 나를 덮쳤다. 그리고 그 바닷속에서 나는 무언가 잃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고 부드럽게 반짝이는 윤슬에 몸을 맡기며 평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바다가 연주하는 낮은 저음의 고동 같기도 한 그 소리와 칠흑으로 변모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 하니 내 심장이 둥둥거리며 뛰었다. 저 마음 깊은 곳 알 수 없는 감정이 칠흑 같은 바다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자유를 갈망했고, 일상과 다른 삶, 달라진 나를 기대했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이 배경이 되어 나는 일상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자유를 찾았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행이 익숙해지면서 이 또한 일상임을 느꼈다. 그래서 칠흑 같은 바다를 보며 저 깊숙이 드러나지 않았던 나의 내면이 밤하늘 별빛의 반짝임과 같이 내게 모습을 보였다.
칠흑 속에서도 물결이 일렁이며 소리가 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칠흑 속에서도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나를 느끼고자 하는 나를 깨달았다. 나는 참 나를 생각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느끼는지 온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게 나이다. 그걸 일상에서 지나치고, 무시하고, 통제했다. '칠흑이 검다.'고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생략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아픔을 느끼지 못해, 몸이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삶을 살았다. 느닷없이 목이 마비가 되어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통제되지 않는 몸을 고스란히 느끼는 무기력함 속에서 울어야 했다. 정신이 힘들어서 몸으로 나타나는 거라는 의사의 말을 부정하며 인정하지 못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약에 의존하는 게 싫어서 어떻게든 정신을 극복하려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도 내 통제 범위에 넣고자 애쓰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여행 중에 나는 아프지 않았다. 내 마음은 나를 알고 있었던 거다. 나를 통제하는 일이, 원치 않은 일을 하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걸, 나를 병들게 한다는 걸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은 내 마음이 얼마나 지쳤는지 알아차리게 했다. 그리고 내 가족과 함께 한 곳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무심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하루 먹을 음식, 하루 이동할 거리, 하루 몸을 쉴 곳을 확인하고 보고 느끼고 먹고 즐기며 단순화하는 삶이 얼마나 기쁨인지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줬다. 그게 여행이라는 걸 아니 그게 삶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안 것 같다. 하지만, 늦게 안 지금이 새로운 시작이고, 새 삶이라는 것도 잘 알기에 우리의 여정이 늘 새롭고 감사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바닥에 귀 기울이며 파도가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를 듣고 있다. 평소라면 나는 바닥이 더럽다며 어서 일어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와 같이 아이들에게도 통제하고 싶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다면 아이들이 하게 내버려 둘 필요가 있음을, 아이들이 가져야 할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내가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도 아이들도 자유가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걸음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