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눈물(#11)
한쪽 벽에 비스듬한 자세로 잠에 들었던 나는 이번에는 꿈을 꾸지 않았다.
"누구야?", "글쎄 모르겠는데?"
나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족히 70은 넘어 보이는 할머님 세 분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계셨다.
그 모습에 놀라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불편한 자세로 오랜 시간 있었던 탓에 좀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저절로 '아이고' 소리가 났다.
"아이고 허리야!", "누구요?", "아아! 저…. 아이고! 허리가….", "천천히 해~ 그러다 탈 날라", "아오~ 감사합니다."
젊은 놈이 허리가 아프다는 말이 우스워 그런 건지 내 행동이 어리숙해 보여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지켜보는 할머님들이 웃고 계셨다.
조금씩 몸이 움직이자 일어나 꾸벅 인사드렸지만, 할머님은 여전히 같은 물음을 하셨다.
"누구요?", "아! 죄송합니다. 어르신 어제저녁에 이곳에 와서 모텔을 찾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님이 여기서 자고 가라고…."
"그러면 여기 사람 아니구먼! 거봐~ 우식이 아니라 했지!"
처음부터 내게 같은 질문을 하셨던 할머님이 뒤돌아 함께 오셨던 다른 분들을 향해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그러자 뒤에 계신 할머님 한 분이 내 쪽을 바라보며 물으셨다.
"어딜 가려고 이 촌구석에 왔는고? 여긴 뭐 볼 것도 없는데…."
"죄송합니다. 그냥 여행하던 길이었어요."
할머님들과 이야기하다 문득 잠결에 봤던 칼이 생각나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저~ 할머님 여기 칼 못 보셨어요?" , "칼? 무슨 칼?"
내가 칼 이야기를 꺼내자, 할머님들이 뒤로 주춤거리시며 두려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돼 물으셨다.
할머님들의 떨리는 음성과 경계하는 듯한 몸놀림이 공연히 죄스러워 어수룩한 모습을 지어 보이며 혼잣말을 빙자한 읊조림으로 상황설명을 하였다.
"꿈인가? 분명 칼 같은 게 있었는데…. 별 이상한 꿈을 다 꾸었네…."
머리를 긁적이며 갸웃거리는 행동까지 평소 모습과 달리 조금은 과한 리액션으로 말했지만 내 평소 모습을 알 리 없는 할머님들은 나의 과한 반응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칼은 무슨 칼? 젊은 양반이 식전부터 칼 타령이여 무섭게…."
할머님들이 문밖으로 나가시며 말씀하셨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꿈인가 봐요! 꿈에서 칼이 제 옆에서 잠을 자더라고요. 하하하!" 내가 웃으며 경계를 풀려 했지만,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할머님!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아버님에게 감사했다고 전해주세요."
서둘러 인사하고 회관을 빠져나왔다.
낮에 본 풍경은 밤에 느꼈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넓은 논과 듬성듬성 보이는 주택까지 평소 그려왔던 시골풍 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명 도심에선 느낄 수 없던 맑은 공기였지만 그것을 느끼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회관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로가 있었고 버스 정류소도 보였다.
익숙한 듯 버스 정류소로 향한 나는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은 체 정류소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허름한 외관과는 다르게 안쪽 의자는 제법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의자에 앉기 전 의자에 떨어진 나뭇잎을 털어내며 바닥의 먼지를 닦아보았지만, 생각보다 깨끗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곳에 앉아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선을 기타 케이스의 지퍼로 가져간 나는 그것을 열어 확인할 것인가 아니면 몇 번 흔들어 녀석의 존재를 짐작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지퍼를 열어 녀석을 직접 확인하기로 결정 하였다.
중간에 마주 보고 있던 두 개의 지퍼 중 왼쪽 지퍼를 천천히 왼쪽으로 밀어내며 동시에 오른쪽 지퍼를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단번에 녀석의 배를 갈랐다.
그러나 그것을 열어보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배를 가른 기타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열어 녀석이 아직 그곳에 있음을 알았을 때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칼이 그대로 있네! 그럼, 진짜 꿈이란 말이야?' , '꿈 치고는 너무 생생한데…. ', 그나저나 무당 할머니 말대로라면 꿈으로 나에게 알려줬다는 말인데…. 그러면 그 칼이….'
순간 머리가 삐죽거리며 소름이 돋았다. 그러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나야? 내가 칼을 구입했기 때문에 그런 건가?" , "그러면 다시 칼을 돌려주면 없어지려나?"
이미 할머니의 말씀에서 내가 녀석의 아비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제외한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경찰차 한 대가 회관 쪽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부터 마구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때마침 버스가 도착했지만, 이것을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몸은 이미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경찰차가 쫓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연신 뒤를 돌아보았지만, 경찰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과 불안한 마음이 뒤섞여 한기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당장 경찰이 뒤쫓아와 버스를 세운다면 꼼짝없이 잡힐 텐데 그러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불안했다.
그러나 쉽사리 버스에서 내릴 수 없었다.
허허벌판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막상 하차한다고 해도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때쯤 제법 번화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막혔던 숨이 트이는 듯 단전에서 올라온 불안함이 한꺼번에 입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마냥 이 순간을 즐길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무작정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야 했고 그곳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산으로 가자!" 생각이 목소리로 흘러나왔지만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본 것이라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산으로 향했다.
오르면서 보니 정리되지 않은 오솔길이 보였고 그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두시 간 남짓 걸었을 때 암자인지 민가인지 알 수 없는 조금은 특이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마치 홀린 듯 그곳으로 향했다.
"굿당이구나!" 굿당 주변은 묘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제부터 켜져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거의 바닥까지 타버린 초와 이미 다 타고 남은 초가 보였다.
굿을 하고 남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고, 나무 여기저기에는 빨갛고 파란 천 조각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천 조각들이 마치 손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져 으스스하기도 했다.
조금 더 다가가 반쯤 열려있던 작은 문을 열어보았다.
낮인데도 볕이 들지 않아 어두웠고, 한쪽 벽에는 탱화가 보였다. 탱화 밑으로 작은 제단과 그 위에는 시들어가는 꽃과 어린아이의 장난감도 눈에 들어왔다.
문을 등지고 바깥쪽을 바라보니, 주변 풍경이 생각처럼 나빠 보이진 않았다.
굿당 밖의 숲과 이곳의 고요함 사이에서, 나는 잠시 현실과 이곳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잠시 들었다.
그만큼 이곳은 마치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를 이어주는 듯한 오묘한 느낌이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었던 나는 이곳에서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