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의 재회
칼의 눈물 (#12) 시즌 1 종결
손잡이가 반쯤 부러진 빗자루를 집어 들고 당장 묶을 방부터 청소하였다.
깨끗하기로 치면 탱화가 그려진 법당이 좋긴 했지만, 탱화 속 사람들이 마치 나를 지켜보는 듯했고 무엇보다 미신 이겠지만 마치 그곳에 있으면 귀신이라도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 건물이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분명했다.
그리고 보면 그동안 센 척해왔지만 어쩌면 난 겁쟁이였을 것이다.
아무튼 서둘러 부엌 옆 작은방을 청소하고 아궁이에 불도 지폈다.
한참을 바삐 움직이다 보니 몸에서 열이 오르기도 했고 방안에 온기가 돌아서인지 나른해졌다.
몸이 편안해지니 그제야 배고픔이 몰려왔다.
다행히 원주행 버스를 타기 전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골라 담았던 빵과 초콜릿 그리고 작은 생수가 포장도 뜻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두려움에 도망치듯 지나온 시간이었기에 배고픔도 잊고 있었지만 이제야 생각이 난 것이다.
허겁지겁 그것들을 구겨 넣고 나니 또다시 나른함이 밀려왔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졸린다는…. 어쩌면 원초적 본능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난 본능에 충실히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는 동안 난 한 번도 이상한 꿈을 꾸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점점 이곳이 좋아졌다. 난 그렇게 이곳에서 3주를 더 머물러 있었다.
가끔 배고프면 3시간을 걸어 장터에서 한 주를 버틸 만큼의 음식을 사 가지고 왔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한 달이 되어갈 무렵 소변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온 나는 새벽어둠을 뚫고 들리는 인기척을 느꼈다.
어둠 사이로 보이는 불빛이 가끔 내 쪽을 비추기도 했기에 나는 서둘러 배낭을 정리하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들의 발걸음이 빠른 탓에 나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탱화가 그려진 법당 안 재단 밑으로 무작정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긴 후 미쳐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법당문이 열리더니 "쿵" 하고 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하마터면 그 소리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 아이도 힘들어라. 여기에 우선 짐을 좀 내려놓고 불부터 지핍시다."
여인의 목소리가 제단 밑으로 흘러들어왔다.
"여기 사람이 사나 봐요! 아궁이에 불이 있는데요!"
흐릿하게 또 다른 여인의 걸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네! 장안동 이보살이 왔다 갔나? 이번 주에 온다더니 벌써 왔나 보네"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그때 또다시 법당문이 열렸다.
"이보살은 아닌가 봐요! 법당에 초가 다 타고 남은 게 없는데…."
"신경 쓰지 마! 누가 왔다 갔으면 어때 따뜻하고 좋구먼. 이보살이든 저 보살이든 난 모르겠고 우리는 우리 일이나 합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발걸음 소리와 짐 옮기는 소리가 여인의 목소리와 뒤섞여 공간을 메우는 동안 제단 밑 나는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한 채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때 제단 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이 잠시 제단 앞에 머물다 돌아갔고 그가 돌아간 후부터 제단 밑으로 향냄새가 흘러들어왔다.
"할머니! 우리 커피 한잔씩 마시고 합시다."
걸쭉한 여인의 목소리가 문밖을 서둘러 뛰쳐나갔다. 그들은 쉼도 없이 분주했다.
가위질 소리와 쓸데없는 농담이 공간을 가득 메웠고 간혹 들리는 쩔렁거리는 방울 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이 아침 식사를 위해 방안을 나갔음을 알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했기 때문이었다.
침묵에 적응되어 내가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돌릴 때 삐걱거리며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단 쪽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나오진 말고 듣기만 해! 지낼 만하냐? 밥은 먹었고? 이 나이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만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신이 이리로 보내서 왔다."
분명 903호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반가움에 커튼을 열고 나가려 할 때 또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여기서 뭐 해! 어서 식사하세요!"
"알았어~ 먼저가! 조금만 쉬었다 갈 테니"
"그러지 말고 빨리 와요. 오늘 중으로 끝내야 내일 내려간다고요."
"아 글쎄 알았다니까! 다리가 아파서 그려~ 금방 갈 테니 먼저 가"
여인이 돌아간 후 할머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씀하셨다.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절대로 나오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하였다.
할머니가 투덜거리며 "에이 섞을 놈 네놈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인지 모르겠다." 하시며 나가셨고 또다시 방안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의 목소리와 의식을 알리는 징 소리가 '둥둥둥' 거리며 천천히 들리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징 소리와 어울려 장구 소리와 북소리도 들렸다.
"쿵쿵 쿵더쿵, 쿵쿵 쿵더쿵, 쿵쿵 쿵더쿵, 쿵쿵 쿵더쿵" 반복되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다.
소리가 꾸덕해져 더 이상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가득할 때 휘 ~~ 하는 소리와 함께 방안을 흐르던 공기도 숨소리도 한없이 반복되던 쿵덕거림도 허공에 갇혀 움직이지 못한 채 멈췄다.
만원 버스에 사람이 올라타듯 힘겨운 여인의 헐떡거림이 꾸덕해진 공기를 비집고 조용히 흘렸다.
"이상해! 자꾸만 칼이 보여 이게 뭐지?" 여인의 목소리가 꾸덕한 공기에 붙잡혀 멀리 나가지 못하고 허공에 갇혔다.
"할아버지가 선 듯 이야기를 안 해주시네~ 보살님들 조금만 더 놀아봅시다. 짤그랑짤그랑"
여인의 목소리는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몽환적이었지만 그것을 느낄 틈도 없이 또다시 쿵쿵 쿵더쿵 하며 잠시 흐트러진 공기를 밀집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다시 휘~~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소리가 허공에 멈췄다.
무당이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자 곁에 있던 앙칼진 목소리의 여인이 물었다.
"누구세요?"
"누구겠어! 물을 걸 물어야지 그렇게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더니 설마 할머니가 왔겠냐!"
"하하하! 그러네요. 그런데 왜? 말씀을 안 하시고 계세요?"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접신한 무당과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고 불쌍한 것 ~ 자식 잃고 마누라 잃고 기억도 잃었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너에게 하는 말 아니야, 아이고 불쌍한 놈 어미 아비 살리겠다고 헌신했는데…. 아이고 불쌍한 놈"
"할아버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여인의 물음에 무당은 서럽게 울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인은 침묵했지만 내 눈에선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 작가의 말 -
함께 호흡해 주신 구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총 20화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듯, 마무리가 아쉬워 보완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조력자 할머니의 존재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부득이 할머니의 시점을 추가하여 보다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꾸미고자 시즌 2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리며, 2월 26일 시즌 2의 첫 화를 소개함과 동시에 잠시 정비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서둘러 돌아올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