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칼의 눈물 13화

방울 소리 (1화)

칼의 눈물 #13 (시즌 2 , 1화)

by 서기선

시즌 2/ 1화 방울소리


나는 어릴 적부터 신기가 있는 아이였다.

내가 기억하는 건 8살쯤 엄마하고 빨래터에 함께 갔을 때였지만 어른들 말로는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싹이 보였다고 했다.

정확히 어떤 점이 그렇게 보였는지 알 순 없지만 어른들은 간혹 오늘은 "동자가 뭐라 안 하냐?" 하며 묻곤 했었다.

하지만 엄마나 아빠가 없을 때만 물으셨고 부모님이 계실 때는 슬금슬금 눈치만 보시다 돌아가셨다.

그도 그럴 것이 동자 운운하며 물어오는 걸 부모님이 눈치채기라도 하시는 날엔 온 동내가 시끄럽게 싸움하셨는데 어찌나 사납게 대드는지 평소 온화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된듯했다.

8살 아니 어쩌면 그보다 많거나 적었을 수 있을 나이쯤이었다.

커다란 빨래 광주리에 빨랫감을 넣으시던 엄마가 앉지도 못하고 빨래터로 향할 때였다.

길복이 내 집에서 막 돌아오는 날 보던 엄마가 "따라오니라" 하며 앞장서셨고 난 말없이 뒤를 따랐다.

나보다 먼저 빨래터에 도착한 엄마가 광주리를 내려놓고 빨래를 막 끄집어 내릴 때 뒤따라오던 나와 먼발치에서 눈이 마주치자 "어서 오니라" 하며 소리치셨다.

"내 " 하며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나는 엄마의 왼쪽에 앉았는데 순간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사내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피해 달아나야 해!'하는 소리였다.

"엄마! 어서 피하라는데요?", "뭐! 누가? 누가 그카데?" , "몰라요. 머릿속에서 그러는데요!"

순간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빨랫감을 다시 주워 담으시고는 내 팔을 잡고 빨래터 밖으로 물러나셨다.

무언가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엄마는 먼발치에서 빨래터를 지켜보고 계셨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휴~ 이번엔 아닌갑다." 하시며 내 손을 끌 때였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짐 보따리를 들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저기 명자네 아닌가요?" 내 손끝을 따라가던 엄마의 시선이 명자 어머니에게서 멈췄다. "이봐~ 어딜 가는가? 어이~ 명자 엄마! 어딜 가냐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명자 엄마에게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소리치자 그제야 명자 어머니가 우리 쪽을 보면서 소리쳤다.

"아이고! 아직 소식 못 들었어요? 이북서 빨갱이가 내려온다는구먼요. 어서 형님 내도 피난 가셔요."

그 말에 광주리를 잡았던 손을 내려놓으며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뛰었다.

그때가 1950년 6월 이었다.

그리고 보니 내 나이 83이니 계산해 보면 당시 나는 9살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전쟁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공포 자체였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간혹 들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을은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제외하곤 타지에 연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때문에 마을 밖으로 나갈 일도 없었다.

그 때문일까 피난을 위해 마을 밖을 나온 아버지의 모습은 평소 모습과 사뭇 달랐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면 선 듯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시는가 하면 허둥대는 모습과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은 이전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에 지켜보는 나는 불안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어머니는 매 순간 자신이 주도해 가며 시종일관 아버지의 판단을 도왔다.

마을 밖을 나온 아버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하셨지만, 처음으로 마을 밖으로 나온 나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처음 며칠이지만 말이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행렬에 합류한 우리는 인파에 떠밀려 남쪽으로 흘러갔지만, 그곳의 끝은 어디인지 얼마나 더 가야 끝인 건지도 불투명했다.

하루는 어른들이 열차를 타야 한다며 내 손을 잡고 뛰신 적이 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기차 타면 안 된다는데요? 그거 타면 죽는데요" , "뭐!" 아빠는 여간해선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말수 적고 우직한 성품인 데다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기차 타면 죽는다는 말에 동공이 흔들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아빠를 처음 본 나는 나의 말 한마디가 가지고 올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되었으며, 다음부턴 진중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오니라" 내 팔을 잡아당긴 건 아빠가 아닌 엄마였다.

아빠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차린 엄마가 이번엔 앞장서 걸으며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

"간난 아버지 뭐 해요! 따라오지 않고" , "아버지 빨리 와요!" , "오냐! 간다."

그때 그 기차가 폭격당해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 우리가 부산에 도착하고 난 후였으니 족히 넉 달은 지난 다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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