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칼의 눈물 15화

방울 소리 (3화)

칼의 눈물(15화) 시즌 2# 3화

by 서기선

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무당과 일반인의 중간에서 불안하게 줄타기하며 살아야 했다.

어떤 날은 신통력 좋은 무당으로 다른 날은 평범한 간난이로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런 자식의 삶이 달갑지 않았던 어머니는 늘 안타까워하셨다.

내가 19살 되던 해였다. 빨래터에서 돌아온 나를 어머니가 조용히 부르셨다.

"간난아! 이리 좀 들어오니라"

물먹은 빨래는 서둘러 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소쿠리 밖으로 물이 새어 나와 금세 대청마루에 물이 고이기 때문이다.

"이것 좀 널고요" 그러나 어머니의 불호령에 소쿠리를 대청마루 끝단에 내려놓고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마루 끝단을 선택한 건 그곳에 두어야 그나마 마루가 덜 상하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흐르면 마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선 최선의 방법이었다.

"앉아라 서있지 말고" 멀뚱히 서있는 나를 잠시 바라보던 어머니가 치마 끝단을 아래로 가볍게 잡아당기며 말씀하셨다.

평소와 다르게 어머니는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나를 빤히 들여다보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애써 눈을 피하시며 나직이 말씀하셨다.

"간난이 올해 스물이지?" , "아니요 열아홉인데요" , "그어나 거나" , "왜요?"

"간난이 많이 껐다. 벌써 스물이네" , "열아홉이라니까요!"

내가 제차 열아홉이라며 대들자 멀어졌던 엄마의 시선이 매섭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이게 꽉! 어디서 소리를 바락바락…." 그러나 어머니는 더 이상 뒷말은 하지 않으셨다.

"왜요? 왜 갑자기 이러는데요? 빨리 말해요 나 바빠요."

"아니다 나가서 일 봐라." , "어휴 답답해 죽어 불겠네! 뭐냐고요? 뭔 말을 하고 싶어 그런디요?"

어머니는 '후유~'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더 이상 말씀을 하진 않으셨다.

"나가 일 봐라." 답답하긴 했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고 어머니가 그날 나에게 하려던 말을 들은 건 다음 날 복길이 엄마에게서였다.

산에서 나 무한 짐을 이고 복길 내 집을 막 지날 때였다.

담장 너머로 내 모습을 먼저 확인한 복길이 어머니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소리치셨다.

"간난이 시집간다며! 신랑은 봤냐? 마음에 들더냐? 하하하"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이라 할 말도 잊은 채 댓 구조차 하지 못했다.

"간난이 많이 컸네. 벌써 시집을 다 가고…." 아주머니가 연실 실실 대며 말씀하셨다.

"아! 뭐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데요 시집을 가긴 누가 간다고 그래요!"

가뜩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어 힘든 사람에게 쓸데없는 농담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미워 버럭 화를 내었지만, 오히려 아주머니는 더 크게 웃으며 "엄니가 말 안 하더냐? 하하하" 하시며 되물으셨다.

"말이요? 무슨 말요?" , "진짜인갑네~ 어서 가서 물어봐라."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서둘러 집으로 가려는데 아주머니가 혼잣말로 '그런 건 동자가 안 가르쳐주나?' 하셨다.

그 말에 가던 길을 멈추고 아주머니를 노려보자, 아주머니가 흠칫 놀라시며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부엌에 계시는 어머니를 향해 "엄마"하고 짧게 소리쳤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를 보지도 않고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들었냐? 누가 얘기하던?" 하시며 도리어 물으셨다.

"그럼 참말이에요? 복길엄마 말이 참말이냐고요?" , "그놈의 여편네 입이 한 냥도 안 되는구먼! 왜? 남들 다 가는 시집인데 뭐가 어때서 소란이야."

여전히 어머니는 아궁이에 잔 나무를 집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싫다고요 누가 시집보내달라고 했어요?" 내가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시며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그럼 평생 엄마랑 살려했냐?" , "예 당연히 그래야지요"

"시끄러워! 이년아, 징그러워 죽겠네! 잔말 말고 그리 알고 있어 준비는 내가 할 테니 넌 그리 알아"

잠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실 때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어머니는 또다시 시선을 돌리셨다.

그때 봤던 엄마의 눈과 당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족히 30년은 걸린 듯했다.

첫째 아들 이민 갈 때만 해도 흘리지 않던 눈물이 딸아이 시집가던 날 어찌나 슬프던지 화장대 앞에서 눈물을 훔치다 무심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당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말없이 흐느꼈다.

내가 혼자 울고 있을 때 안방 문이 열리며 남편이 들어와 곁에 앉았다.

"뭘 그리 울어요! 누가 들으면 초상난 줄 알겠네! 그만해요. 좋은 날 무슨 청승이야!"

나를 타박하는 말이었지만 기분 나쁘게 들리진 않았다.

남편의 평소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이건 틀림없는 위로의 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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