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칼의 눈물 14화

방울 소리(2화)

칼의 눈물 #14 (시즌 2 , 2화)

by 서기선

우리보다 먼저 부산에 도착한 외삼촌은 남포동에서 장사를 하셨다.

주로 미군의 통조림과 담배를 취급하셨는데 제법 벌이가 되자 하나둘 따라 하는 상인들이 늘어났다며, 목멘 소리를 자주 하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외삼촌의 친구가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운전병 몇 명과 친분이 있어, 그들을 통해 보급품을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다른 상인들보다 빠르고 안정적인 물품 확보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아버지는 외삼촌의 보급품을 가계까지의 배달하는 일을 시작하셨는데 나중엔 아버지의 성실함이 마음에 든다며 운전병 몇이 보급품을 아버지에게 독점 판매하는 등의 성과를 얻으셨다.

때문에 처음 아버지를 은근히 무시하시던 외삼촌도 아버지를 함부로 하지 못하셨다.




"형님! 이번에 러키 스트라이크 들어오면 전부 나한테 줘요. 다른데 주면 안 됩니다."

"처남! 다른데도 좀 줘야 안 되겠나?"

"형님 또 그런다. 하나밖에 없는 처남인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예? 형님이 어떻게 그 자리에 있는데…."

"알지! 나도 아는데 다른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다들 힘든데 안 글라? 대신 카멜 조금 더 챙겨줄게"

"됐습니다. 카멜 형님이나 많이 피우소!" , "어허~ 처남 화났나?"

"아이고 우리 누님만 불쌍하지, 어떻게 이렇게 벽창호일까?" 외삼촌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치며 말씀하시다 멀찍이 서있는 나를 보며 한걸음에 달려와 "너는 절대로 아버지 닮지 말아라 알았나?" 하시며 돌아가셨다.

두 분의 대화가 사뭇 진지했지만, 나는 사투리를 쓰는 아버지와 외삼촌의 모습이 마냥 신기해서 웃었다.

12살이 되던 해 전쟁이 끝났지만, 우리는 한동안 부산에 더 머물러야 했다.

그간의 세간도 정리해야 했지만, 그것보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내가 또 1년만 더 있다가 가자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엔 존재하지 않은 내용이다. 다만, 어른들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부산에 계속 남아있길 원하셨지만, 외삼촌과 아버지의 크고 작은 대립이 계속되었고 아버지 또한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더욱이 내가 1년이라는 구체적인 날짜를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내 말대로 1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마땅히 돈벌이가 시원찮아지자, 아버지는 국가 재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한동안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던 내 귀에 또다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간난아! 아버지 갔다 올게~" , "아버지 잠시만요! 오늘은 가지 마세요!"

"응? 왜?" , "위험하데요" 순간 아버지가 경직되시며 "또 그 아이 목소리를 들은 것이냐?" 하며, 나직이 물으셨다.

내가 고개를 떨구며 "예"하고 대답하자 아버지가 내 양쪽 어깨를 잡으시며 말했다.

"한동안 들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또 듣기더냐?" , "예"

"엄마에게는 아무 소리 하지 마라. 간난아, 고맙다. 그런데 오늘은 진짜로 가야 한다. 아주 중요한 날 이거든 밀린 월급 받는 날이야! 대신 일은 안 할게" 아버지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하지만!"

"괜찮아! 아버지 일 안 하고 돈만 받아서 올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엄마 걱정하시니까 방금 한 말은 비밀이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시며 말씀하셨다.

그것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른들 말로는 공사 현장에서 불발탄이 발견되었는데 인부들이 그것을 사무실에 옮겨 두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무실에 도착해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현장 소장과 몸싸움을 하던 중 불발탄을 건드려 폭파되는 바람에 그곳에 있던 소장과 아버지 그리고 몇몇 일꾼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고 살아남은 인부를 통해 들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실신하셨으며, 정신이 들고난 후 왜? 이번엔 동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며 원망의 눈 빛으로 불만을 토로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비밀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울기만 했다.




커가면서 주위 어른들이 신내림을 받는 것이 어떠냐며 권유하였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하지만 혼기가 다가올수록 불안했던 어머니는 결국 내림굿을 허락하셨다.

물론 최종결정은 내 몫이었지만 나 역시 비밀을 안고 살 바엔 차라리 드러내자는 맘으로 내림굿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결국 나는 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어머니 되실 분의 말씀으로는 신이 머물지 않는다며 당신도 처음 겪는 일이라 딱히 설명하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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