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소리 (9화)
무당 할머니와 헤어진 후 나는 함백산을 올랐다.
함께 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령인 데다 이건 고스란히 내 일인데 굳이 고령의 어르신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아 차마 말하지 못하고 할머님의 연락처만 받아 들고 무작정 함백산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버스가 함백산 만항재 쉼터까지 올라간 탓에 생각보다 쉬운 산행이었다.
정음사라는 절이 워낙 유명한 곳이라 가는 길이 잘 정비되어 오르는 데도 그리 큰 어려움도 없었다.
다만 간간이 만나는 등산객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 또한 혼자만의 생각일 뿐 그들은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선택한 코스에서 정음사를 가기 위해선 정상에서 하선하는 길에 있다고 했는데 할머님은 정음사 못 가서 만나는 폐가라고 했기 때문에 정상과 정음사 사이의 폐가를 가르치는 것인지 정음사를 지나 만나는 첫 번째 폐가를 가리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문이 들었던 것은 양쪽 모두 폐가가 있다는 등산객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차례대로 가보자, 뭐가 있어도 있겠지!" 그러다 어느덧 첫 번째 폐가가 눈에 들어왔다.
하선하는 길에 만나는 폐가였기에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선 듯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겉돌기만 했다.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당으로 들어갔다.
훼손되어 뚫린 창호지 사이로 방안의 모습이 살짝 보였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가가 문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덜컹거리며 아래쪽 정첩이 떨어져 나가면서 방문이 한쪽으로 기우뚱거렸다.
그 소리에 놀라 "악!"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깜짝이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부엌으로 가 보았다.
이미 부엌문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없네! 그렇다면 내려가는 길에 있는 집이라는 말이군" 목적지가 정해지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와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와 ~ 미치겠으니 이거 진짜 믿어야 하는 거야?"
두려움이 밀려오자,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씩 자라났다.
"설령 있다 고쳐! 뭐! 어쩌라고? 죽이라고? 나더러 그 사람을 죽이라고? 미친 거 아냐?"
이곳으로 올 때만 하더라도 당장이라도 만나면 죽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그 시간이 다가오니 몹시 떨리고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더 커졌다.
그렇게 망설이다.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서둘러했다.
이 길로 폐가로 갈 것인지 아니면 되돌아가 정음사로 갈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다.
나는 결국 용기가 나지 않아 정음사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하루만 더 생각할 기회를 갖자'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폐가를 나왔다.
내가 정음사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도와주세요!, 누구 없나요?" 사내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뒤돌아 아래쪽으로 10M쯤 내려가 보니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남성 둘이 어깨동무를 하며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 다행이다. 저희 아버지 좀 도와주세요. 산에 오르다 다리를 다치셨는데 아무래도 부러진 것 같아요. 하선하기엔 이 몸으론 무리인 듯해서 차라리 정음사로 가 보려고요"
"다행이네요. 저도 마침 그쪽으로 가려던 길인데."
나는 아저씨의 왼쪽에서 아들은 오른쪽에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셋이 함께 산을 올랐다.
하지만 아저씨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번번이 주저앉으며 말씀하셨다.
"아! 아! 살살! 살살 걸어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요. 조금만 쉬었다 가요"
고작 10M를 한 시간에 걸쳐 걸을 만큼 걷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업고 가는 편이 훨씬 빠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워낙 조금의 움직임에도 크게 아파하셨기 때문에 차마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폐가에서 정음사까지 대략 1.1km인 걸 감안하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대론 안 되겠어요. 제가 정음사로 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올게요. 두 분은 여기서 잠시 쉬세요."
"아니에요. 너무 죄송한데 그러지 말고 제가 갈 테니 아버님 좀 부탁드립니다."
아들의 말할 때 할머니의 말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며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낯을 가려서요."
"아~ 예~ 그리시는구나.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들이 밝게 웃어 보이며 머리를 조아려 인사했고 나는 짧은 묵례로 화답하고 빠른 걸음으로 정음사로 향했다.
"늦어도 한 시간 정도면 돌아올 거예요." 대략의 시간을 알려줘 안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음사로 달리다 문득 아저씨 모자에 새겨진 산악회 마크가 뒤늦게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허풍선이 산악회 마크 아닌가? 언 듯 그래 보였는데…."
마크 모양이 워낙 특이해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경황이 없어 인지하지 못하다 뒤늦게 생각이 난 것이었다.
"설마! 저 아저씨가 무당 할머니가 말하던 그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머릿속에서 '중놈을 죽여야 해! 아버지 왜놈이에요, 왜놈을 죽여야 해요!'라고 왜 치던 무당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악! 이러지 마! 나한테 왜 이리 제발 이러지 마!"
나는 가던 길을 멈춘 체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순간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침착해야 해, 어떡하지?, 마저 올라갈까? 아니면 내려가서 확인해 볼까?, 확인한다면 뭘? 물어봐야 하지?" 온갖 생각들을 필터링 없이 입 밖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또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이런 내 모습을 누구에게든 들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었다.
'입조심해야겠다. 누가 신고라도 하면 그때는 모든 것이 끝이야.' 하는 마음과 '차라리 누군가에게 들켜 멈췄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공존했다.
결국 전자를 택한 나는 903호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죽이라고 일러주는 내 마음은 편하겠냐! 몰라! 이놈아, 결국 네 일이니, 네놈이 알아서 해! 어쩌자고 신이 자꾸만 네놈 이야기만 하시는지 나도 모르겠다."
"할머니 무서워요~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염병하네. 그러는 놈이 경비를 죽였냐!"
"아! 그건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네가 했던 네 아들놈이 했건 결국 칼을 든 놈은 네놈이잖아!"
"그렇지만…." 틀린 말이 아니 이게 딱히 할머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통화 종료 후 나는 정음사로 가던 길을 멈추고 부자가 머무는 폐가로 발걸음을 돌렸다.
'혹시 사람을 죽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미친놈이라고 하겠지?'
'과거에 왜놈이었냐고 묻는 것도 웃기는 말인데…. 뭐라고 하지?'
'사람 데리고 오겠다고 했는데…. 어디 있냐고 하면 뭐라고 말하지?'
'전생에 당신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죽였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복잡한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르자, 머리가 아팠다.
그런 생각들과 잠시 잊었던 경비아저씨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라 구토까지 올라왔다.
"우웩!, 우웩!, 우웨엑! 퉤! 아우~ 그 할머니는 왜! 경비아저씨 이야기를 해가 지고. 웩!"
한참 고약질을 하고 있을 때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괜찮으세요?" 폐가에 있어야 할 그자의 아들이었다.
"여긴 어떻게…?", "불안해서요", "불안? 뭐가요?" 불안해서 뒤따라왔다는 그자의 말이 '너를 믿지 못하겠어'처럼 들렸다.
"오해하진 마세요. 함백산은 아버지 따라 자주 왔었거든요. 아무래도 그쪽보다 제가 길을 더 잘 알 것 같아서요. 곧 해도 질 테고. 제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어디 불편하세요?"
"아~ 예 좀 체했나 봐요"
"그러길래 제가 간다고 했잖아요! 제가 올라갈 테니 내려가서 쉬세요.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그자의 아들이 네게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전혀 웃어줄 마음이 없었다.
"쳇! 사내자식이 눈웃음은! 이제 곧 원수지간이 될 텐데…. 뭐가 좋아 방긋거리는 거야" 그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잘됐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둘보다는 환자 하나가 수월할 테니 말이야."
그리 생각해서일까?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발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어느덧 폐가에 도착한 나는 숨을 고르기 위해 입구에 서서 잠시 눈을 감으며 깊고 긴 호흡의 시간을 가졌다. 크게 들이마신 호흡을 천천히 내뱉어가며 정신없이 뛰고 있는 심장을 어르고 달랬다.
심장이 울음을 멈출 때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지만, 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허어억!" 나는 너무 놀라 뒷걸음질 치다 자빠져 손바닥이 긁혔다. 하지만 손바닥의 긁힘 따위에 아파할 정신이 아니었다.
내 앞에, 패가에 있어야 할 칼이 바르르 떨며 허공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게 왜! 또 보이는 거야?" 매지리 회관에서 봤던 모습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미 한차례 허상을 경험한 나는 조금 전 떨림을 뒤로하고 무시하듯 그것을 지나쳤다.
그러나 내가 믿었던 허상이 현실에 존재함을 느끼자 또 다른 공포로 다가왔다.
오른쪽 손등으로 칼의 손잡이 부분을 휘적거리다 '툭'하고 손끝에 건드림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중놈을 죽여야 해! 아버지 왜놈이에요, 왜놈을 죽여야 해요!' 또다시 머릿속에서 무당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이러지 마!" 또다시 귀를 틀어막고 소리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녀석은 나와의 간격을 유지한 채 내가 달아난 만큼 내게 다가왔다.
내가 바르르 떨며 뒷걸음질 칠 때 이미 끊어져 바닥에 나뒹굴던 하얀색 끈이 만져졌다.
하얀색 끈 뒤에는 멧돼지 접근 방지용 기피제 설치 구간이라는 푯말이 달려 있었지만, 나는 푯말보다 끈에 시선을 두었다.
흰 끈을 칼에게 가져가자, 칼집에서 나온 칼이 얼마나 예리한지 한순간에 잘려 나갔다.
"오지 마!, 오지 마!" 여전히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지만, 녀석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문득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자 녀석이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바닥에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궁금해진 내가 발끝으로 "툭" 건드려 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녀석을 응시하다 지난밤 꿈에서 만난 녀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부모를 위해 제 발로 용광로를 기어들어 가던 모습부터 어머님의 죽어가는 모습까지 그런 생각이 나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눈물을 훔치고 바닥에 떨어진 칼을 무심코 들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녀석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처음 녀석을 사들일 때의 모습 같았다.
"그래 가 보자" 녀석을 왼손에 들고 다시 폐가로 들어가 빠른 걸음으로 그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제법 요란한 소리로 걸어 들어갔지만 그자는 어찌 된 건지 움직이지 않았다.
잠을 자는 것 같기도 했고 혼절한 것 같기도 했다.
"차라리 잘됐네! 서로 얼굴 마주 보면 마음이 약해질 텐데…. 잘 됐어!"
내가 누워있는 녀석을 베기 위해 칼을 뽑아 녀석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그러다 칼끝에 달린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 눈에서 밝게 웃던 이자의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