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칼의 눈물 22화

칼의 눈물 (#22)

방울 소리 (10)

by 서기선

두 눈동자가 머릿속에 각인되면서 불현듯 '어쩌면 이들은 같은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슬픔과 미래의 슬픔이 공존하는 것 같은 묘한 감정도 있었다.

그자를 겨누던 칼을 거둬들이고 다시 밖으로 나온 나는 폐가 주변을 휘감은 그리 굵지 않은 자작나무 중 가장 실한 놈을 찾아 그것에 칼을 묶었다.

다행히 멧돼지 기피제를 알리던 하얀색 끈이 있었기 때문에 녀석을 묶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내가 녀석을 묶고 마지막 매듭을 묶기 위해 양 끝을 서로 맞닿을 때 갑자기 칼이 바르르 떨며 몸부림쳤다.

그러다 잠시 열린 칼집 사이에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살짝 베였지만 상처가 그리 크진 않았다.

나는 바르르 떠는 녀석을 보며 무당 할머니의 말씀에 확신을 가졌다.

"이 녀석아! 내가 네 슬픔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야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만들게 돼 내가 저 녀석을 죽이면 그 아들놈은 또 어떻겠니! 미안하지만 여기서 끝내자."

내 말에 녀석은 더욱 떨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리기 위해 뒤돌아설 때 녀석이 검은 연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의 먹구름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처럼 강렬했지만 날이 저물었던 탓에 쉽게 드러나지 않아 녀석의 이상 반응을 눈치 제지 못 했다.

녀석을 뒤로하고 그자가 누워있던 폐가로 걸으며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할머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셨다.

"뭐! 손을 베였다고!"

"예 하지만 걱정할 만큼 상처가 크지 않아요. 살짝 베였어요. 하하하!"

"야, 이놈아! 지금 웃음이 나오냐 내가 뭐라고 했냐! 칼에 베이면 아들이 어둠에 잡아먹힌 거라고 했냐 안 했냐! 어떻게든 빨리 그 녀석을 부러뜨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어" 그제야 할머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제 어떻게 해요?"

"어쩌긴 뭐가 어째 어둠이 아들놈을 삼켰으니 그 녀석은 더 이상 네 아들이 아니야 그러니 빨리 그놈을 부러뜨려야지 아이고 멍청한 놈! 조심해!" 할머니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패닉이 되었다.

내가 어찌할 바 몰라 생각에 잠긴 사이 그자의 아들이 건장한 사내 둘을 데리고 돌아왔다.

"왜 나와계세요?" 그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니 그자의 아들이었다.

"아! 예~ 답답해서요." 나는 마치 준비된 대답처럼 자연스럽게 둘러대고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아버지!"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그자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다 나와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저 사람이 날 죽이려 했어! 저 사람이…. 아까…. 나를 죽이려 했어!"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자의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까 저자가 내 목에 칼을 대고 죽이려 했다고" 몸이 떨리는 것인지 목소리가 떨리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떨며 이야기했다.

그자의 말에 나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지만, 뒤에 있던 건장한 사내 둘이 내 뒤를 막아서며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설명 좀 해 주셔야겠는데요" 당장이라도 나를 때려죽일 기세로 물었다.

"아…. 그런 게 아니에요. 칼이 저 사람을 죽이려 했어요. 오히려 나는 저자를 살렸어요, 진짜예요"

나는 진실을 이야기했지만, 믿어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내 말을 믿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저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나 누구도 믿지 않았다.

"저 미친놈 잡아요" 그자의 아들이 소리쳤다.

나는 달아나지 못하고 사내에게 잡혀 정음사까지 끌려갔다.

폐가를 나갈 때 아들과 함께 들것을 들고 있던 사내가 자작나무에 묶어둔 칼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좀 봐 누가 칼을 나무에 묶어놓았네 하하하!"

"그러게 별일이네…." 나를 잡고 있던 사내가 그쪽으로 다가가 묶어놓은 매듭을 풀 기세로 손을 뻗었다.

"안 돼!? 그러지 말아요. 그러면 우리 다 죽어요!" 내가 큰 소리로 소리치자 흠칫 놀라 손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아이 미친놈 깜짝이야 네가 묶어놨냐?"

"예 풀지 마세요. 그러면 우리 다 죽어요"

"와~ 진짜 미친놈이네" 나를 잡고 있던 사내가 내 머리를 한차례 쥐어박으며 말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또다시 매듭을 풀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안돼! 다급해진 나는 그자를 밀쳐내고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저놈 잡아요." 들것에 실려 가던 그자가 소리쳤다.

내가 달려가자, 매듭을 풀려다 말고 내 뒤를 바짝 따라붙어 또다시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어딜 도망가" 우리가 실랑이하는 동안 들것을 들고 있던 사내가 내 쪽의 사내에게 소리쳤다.

놔두고 빨리 갑시다.

더 어두워지면 그나마 이 길도 힘들어요. 나는 그렇게 정음사로 끌려갔다.




"아침 일찍 경찰에서 온다네요." 그자의 아들이 어느새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휴~ 다행이다. 그럼, 몇 시쯤 오시나요?" 팔다리가 묶인 채 딱히 누구를 지칭하지 않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누구도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묶여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무료했다.

방 안이 따듯해서인지 무료함 때문인지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꿈을 꾸었다.




"이것이 그것인가?" 하얀 도포를 입고 정자관을 쓰고 있는 노인이 희끗거리는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갓을 쓰고 있던 선비가 들고 있던 칼을 내보이며 말했다.

칼집에서 칼을 꺼내어 이리저리 살피던 노인이 눈 모양의 장식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건 사람의 눈 아닌가? 이런 걸 어찌 여기에 새겼을꼬....? 허나 명검이라 하기엔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노인이 경상 위에 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허나 이 칼에 죽어 나간 왜놈의 목이 일만이 넘는다고 하옵니다."

"그렇다면 장수가 훌륭한 것인데 어찌 자네는 칼 때문이라 했는가?" 노인이 몸을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칼을 소지한 자가 말하기를 이것이 미친 듯이 홀로 사방을 날아다니며 왜놈의 목을 쳤다고 합니다."

"하하하! 자네 농이 지나치는구먼!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노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조금은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제가 왜? 대감을 놀리겠습니까!" 선비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하! 알았네! 알았어! 이 사람 하하하! 믿어주지!" 노인은 여전히 믿지 못했지만, 젊은이와의 관계를 위해 수긍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대감!!! 여전히 믿지 못하시는군요. 저를 그렇게 보셨다면 더는 대감과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비가 호통치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선비의 호통에 짜증이 난 노인이 한층 커진 목소리로 반문했다.

"정녕 사실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나? 증명할 방법은 있는지 물었네!"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선비가 물러섬 없이 노인의 말에 또박또박 반박하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증명해 보시게" 노인이 헛웃음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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