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소리 (8화)
"작은방으로 옮깁시다. 삼촌! 보살님 좀 작은 방으로 옮겨줘요"
"앗! 보살님 왜? 이러세요? 일단 업혀 주세요!" 그들 사이에 사내가 있었는지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주한 발소리가 지나자 또다시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제단 밑으로 흘러들어오던 빛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정확하지 않은 시간에 903호 할머니가 또다시 커튼 사이로 삶은 돼지고기 한 접시를 들이밀며 말씀하셨다.
"조금만 더 참아! 그리고 명심해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나오면 안 돼"
"예 감사합니다."
903호 할머님이 건네준 수육을 한 점 집어먹었지만, 울분 때문인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굶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 꾸역꾸역 몇 점 집어삼킨 후 생수를 마시기 위해 병뚜껑을 열었을 때 무당과 사내 그리고 여인이 법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귓속말로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누가 계십니까? 나오세요! 괜찮아요. 그러니 나오세요" 분명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대답할 뻔했지만, 조금 전 할머님의 말이 생각나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진짜 있는 거 맞아요?"
"몰라 그런 거 같은데…. 삼촌! 커튼 한번 열어봐!"
"아이 싫어요. 왜! 나에게 그러세요"
"사내가 겁은 많아가지고.... 정보살! 자네가 열어봐!" 저들은 나와 커튼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도 싫어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요"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903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가 다 됐는데 여기서 뭣들 해? 안 가?"
할머니의 물음에 무당의 의심 섞인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할머니! 저한테 뭐 할 말 없어요?"
"할 말? 뭐? 모르겠는데?"
"내가 무당질만 20년을 넘게 했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그래요. 아까 했던 말도 그렇고…."
"몰라! 아까 그랬잖아.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 말 한 거라고 무당질을 20년 넘게 했다면서 그걸 몰라?"
903호 할머니가 무당을 자극했다.
"아닌데…. 이상하단 말이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저 밑에 사람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내가 열어봐? 그럼 믿겠어? 만약 아무것도 없으면 어쩔 건데? 어떻게 사람 말을 못 믿어! 얼어 죽을…. 이리 비켜봐 내 열어볼 테니"
할머니가 몹시 쿵쾅거리며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뛰쳐나가 도망갈까?, 아니면 죄송하다고 빌어볼까?'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천을 열기 위해 오른쪽 끝단 쪽으로 손을 밀어 넣으셨고 나는 눈을 감았다.
"됐어요! 그만 내려가요."
"되긴 뭐가 돼 기껏 사람 의심해 놓고선…. 열어볼게"
"됐다고요 미안해요. 그러니 그만 내려가요"
"얼어 죽을 그러게 사람 그렇게 함부로 의심하는 거 아냐! 아무리 신발 좋은 무당이라지만 사람 그렇게 의심하고 그러면 기분 나빠"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만 내려가요."
사람들이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분명 그들이 돌아갔음을 알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그들이 돌아가고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몇 시간인지 며칠이 지난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충전하지 않은 탓에 그들이 오던 날 이미 꺼진 상태였기에 더욱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제단 밑으로 흘러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오전과 오후를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만 나와"
"그만 숨어있고 나오너라" 분명 903호 할머니의 목소리였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반쯤 닫혀있는 동공 속으로 빠르게 비집고 들어오는 밝은 빛을 보고 난 후에야 내가 잠들었음을 알았다.
"망할 놈 잠이 오냐?"
"아흑!"
"네놈 때문에 이 나이에 무슨 지랄인지 모르겠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내가 문 뒤쪽을 힐끗거리며 말하자 할머님이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씀하셨다.
"없다 이놈아, 의심은…."
"죄송합니다."
"언젠 나보고 무당이냐고 묻더니만 네 깐 놈 어디 숨어있는지 그걸 모를까."
"…."
"지낼 만은 하더냐?"
"예~ 뭐 ~ 그렇지요."
"그건 그렇고 아까 최 보살 하는 소리 들었지?"
"그자가 어눌해서 그렇지 신빨은 좋아! 아까도 봐 단번에 알아보잖아. 흠이라면 입이 싸, 고년은 입으로 말아먹을 거야"
"저~ 경비아저씨는 어떻게 되셨어요? 죽은 거 맞지요?"
"죽인 놈이 더 잘 알 텐데 뭘 물어!"
" 죄송합니다."
"그놈의 죄송하다는. 네가 날 죽인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만날 죄송하단 말이냐?"
"죄송…."입버릇처럼 죄송하다는 말이 나왔고 그럴 때면 만신 할머니가 눈을 흘겼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계획은 있고?"
"아직 모르겠어요."
"함백산에 정암사라는 절이 있는데 정암사 못 가서 폐가가 하나 있다는데 거 길 가면 그 중놈이 있다는구먼" "누가요?", "누가요? 누구긴 누구겠냐, 이놈아! 신이지, 머물지 않는 신이 오셔서 그리 말씀하시길래 전해주는 것뿐이라고. 네놈 때문에 귀찮아 죽겠다. 어찌나 다구 치는지…."
"함백산? 정음사…? 그런데 왜? 제가 그자를 만나야 하나요?"
"이미 답을 알면서 물어보는 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냐? 아니면 부인하고 싶은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멍청한 거냐?" 할머니가 매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