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눈물(19화) 시즌 2# 7화
최 보살을 처음 찾았을 때 너무나도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역이 같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물론이고 그곳에 오는 사람들 역시 그를 선왕당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내가 알고 있던 선왕당의 성이 최 씨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신발 좋기로 동내에서 꽤 유명하지만, 입이 싸 마음을 트기엔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왜! 자신이 산에 기도드리러 가는 데 따라가야 하는지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결국 최 보살의 기도에 동행하기로 하였지만 동행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다고 생각했다.
80이 넘은 노인의 산행이라니…. 나조차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섰지만, 동자의 도움이었을까 아니면 그간의 관리 때문인지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중에 쉬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때마다 일행의 눈치를 봐야 했지만, 그들 역시 힘들긴 매한가지였는지 특별히 타박하지는 않았다.
굿당에 도착했을 땐 내가 어떻게 이곳을 올 수 있었는지 나조차도 믿기지 않았다.
굿당에 도착하자 동자가 녀석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굳이 알려주지 않았어도 녀석이 제단 밑에 숨어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요즘의 제단은 아래에 서랍처럼 문을 달아 그곳에 수납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앞을 천으로 막았지만, 오래된 제단은 마치 밥상처럼 안쪽이 비어 있다.
기리고 이곳의 제단은 오래된 것으로 안쪽이 비어있는 구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늘어진 천의 밑단이 안으로 말려들어 가 있었고 그것은 요즘의 제단에선 보기 힘든 아니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안으로 무언가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반대 상황이었으면 끝단이 바깥쪽으로 향했어야 했기에 녀석이 그곳에 숨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온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나와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아무도 없는 틈에 녀석에게 음식을 밀어 넣어주며 말을 걸어보았다.
밥은 먹었냐? 살만하더냐? 같은 원초적인 질문과 내가 말할 때까지 절대로 나오지 말라는 말도 남겼다.
그러자 녀석의 울먹이는 음성이 제단 밑으로 "예"하고 흘러나왔다.
"에이 섞을 놈 네놈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인지 모르겠다." 하며 타박했지만 미워서라기보다 안도함의 넋두리 같은 것이었다.
다시 인연이 이어지니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가 번졌다.
짧게 휴식을 취한 최 보살과 일행이 곧바로 기도에 들어왔다.
제단을 마주 보고 북과 징을 그리고 장구를 칠 보살들이 벽을 등지고 앉았고 최 보살은 방 중앙에서 그들을 진두지휘하였다.
요란한 악기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워 더는 들어가지 않을 만큼 꾸덕꾸덕해질 때 최 보살이 "휘~" 하며 밀려 들어오는 악기 소리를 가로막더니 입을 열었다.
"이상해! 자꾸만 칼이 보여 이게 뭐지?"
그러자 북을 치던 보살이 그것이 뭐냐고 물었지만
"할아버지가 선 듯 이야기를 안 해주시네~ 보살님들 조금만 더 놀아봅시다." 하며 최 보살이 다시금 자리에서 뛰다 돌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다 또다시 휘~~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소리가 허공에 멈췄다.
최 보살이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자 곁에서 북을 치던 보살이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누구겠어! 물을 걸 물어야지 그렇게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더니 설마 할머니가 왔겠냐!"
"하하하! 그러네요. 그런데 왜? 말씀을 안 하시고 계세요?"
북 치던 보살이 접신한 최 보살에게 "말씀해 보세요" 하며 운을 떼자, 최 보살이 갑자기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불쌍한 것 ~ 자식 잃고 마누라 잃고 기억도 잃었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너에게 하는 말 아니야, 아이고 불쌍한 놈 어미 아비 살리겠다고 헌신했는데…. 아이고 불쌍한 놈"
"할아버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주거니 받거니 하던 보살들의 물음에 최 보살은 울기만 할 뿐 더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 보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중놈을 죽여야 해! 아버지 왜놈이에요, 왜놈을 죽여야 해요!"
"아이고~ 어린놈이 어찌 그런 풍파를 견뎠을꼬~ 불쌍하다 불쌍해~!" 최 보살은 그 말을 남긴 채 쓰러져 바둥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차례 곁을 지키던 보살들이 물어보았지만 더 이상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 이래…. 어떻게 하지? "
당황한 보살들이 어찌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때 내가 "예 알았어요. 그놈도 잘 알아들었을 거예요. 인제 그만 놓아주세요.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하고 말을 걸었지만, 동자가 시킨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쓰러져있던 최 보살이 정신이 들었는지 일어 나앉아 서럽게 울었다.
"또 왜? 그러세요?" 누군가 최 보살에게 물었다.
"몰라요! 할아버지가 계속 울리시네…. 그런데 이건 누구 이야기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요"
"어린놈이 견디기엔 너무 힘든 세상을 살았어~ 불쌍한 놈! 하시면서 계속 울리시는데 누구 이야긴지 모르겠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할머니! 뭐 알고 있는 거 있어요? 아까 잘 타이르겠다고 하셨잖아요?"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분위기가 그러니 그리 말한 거지 내 나이쯤 되면 반은 무당이여"
그러자 최 보살이 갑자기 깔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년 참! 물건이 내! 인제 그만 내려가자!"
"예? 지금은 안 돼요! 벌써 어두워졌는걸요. 내일 아침에 내려갑시다."
"알았다. 이년아!" 최 보살은 짧게 대답하고 또다시 혼절하였다.
- 작가의 말 -
시즌2를 언제 마무리 지어야 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처음 약속한 대로 할머니의 삶을 빠르게 훑고 지나왔으니 더는 의미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제 둘이 만났으니, 이후의 이야기는 주인공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둘의 시점을 이해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메인 페이지의 이미지를 칼과 방울로 표기했었는데 눈치채셨나?
모르겠습니다.^^
아시겠지만 브런치는 30화 이상의 글은 브런치 북으로 만들기 쉽지 않아요.
메거진은 그렇던데 연재는 처음이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칼의 눈물 20화부터는 주인공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