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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Jun 16. 2024

수직 홍채 4

개미귀신

그들이 떠나고 홀로 남은 창수는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선택했냐는 무사시의 물음에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조차도 답을 찾지 못했다. 

축 처진 몸으로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왼쪽 안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든 그가 서너 장을 넘겨 마침내 찾아낸 페이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곳엔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여러 명의 명단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왜? 어떤 이유로 이곳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모두 12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진 세로줄에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름들이 빼곡했으며, 범도와 테슬라 무사시의 이름도 보였다. 

"이게 뭘까? 왜? 이걸 나에게 준 걸까?" 무표정한 모습으로 바라보던 창수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더니 오른쪽 눈썹이 살짝 위로 오르다 떨어졌다.




금강 작가의 2층 거실 공간이 옅은 보라색으로 변하더니 잠시 일렁였다. 

그리곤 일렁임 속에서 김창수가 걸어 나왔다. 잠시 주변을 흩어보던 그가 아래층 계단을 내려가며 천천히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커피포트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곤 안주머니에서 옅은 푸른빛을 띠고 있는 길쭉한 은빛 막대기 하나를 꺼내 들고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은빛 막대기가 지날 때 막대 밑으로 푸른빛이 돌았다. 

그는 커피포트가 있는 주방에서 창가 쪽으로 걸으며 쉼 없이 허공에 은빛 막대를 휘적거렸다. 

그러다 창가 쪽 바닥에서 푸른빛 사이에서 밝은 형광물질 하나가 반짝였다. 

"여기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테슬라! 지금 보이는 좌표로 와 주겠나" , "찾았나요?" 테슬라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창수는 "응"하고 짧게 답했다. 

"지금 갈 테니 어떤 표식도 하지 말고 놔두세요." 통화를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며칠째 내리던 비가 그쳐 하늘은 투명한 파랑과 따뜻한 노을빛이 섞여 아름다웠다. 

물방울이 가득 맺힌 나뭇잎들이 빛을 받아 반짝였고, 잦은 비에 모습을 감추었던 초록의 향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창문을 바라볼 뿐 열지는 않았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마중 나온 초록의 향기에 취하고 싶었지만, 어떤 조치도 하지 말라는 테슬라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젖은 도로에 내려앉자 마치 황금빛 도로처럼 보였다. 

당장이라도 황금빛 도로를 걷고 싶다는 생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간 김창수가 현관문을 열자, 초록의 향기가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들어왔다.

금강이 거닐던 마당에 빗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가 생겼고 웅덩이에 비친 하늘이 거무스레했다. 

그가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멀리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는 서둘러 현관문을 닫고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마지막 계단을 오를 때 거실 중간이 일렁이며, 일렁임 속에서 테슬라 걸어 나왔다. 

공간이 일렁일 때 이미 테슬라임을 알고 있던 창수가 그의 모습이 일렁임을 벗어나기도 전에 "빨리 왔네" 하며 인사했다. 

"그렇지 않아도 로즈에서 나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어디 있나요?" 창수를 힐끗 쳐다보던 테슬라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두리번거리는 테슬라의 모습에 '후'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그 모습이 어수룩해 보여서라기보다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낯빛에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와" 앞장서 걷던 김창수가 조금 전 형광물질을 목격했던 창가 쪽 바닥을 가리키며 "여기야"하고 말했다. 

테슬라가 김창수의 손끝을 쫓다 말고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그곳에서 휴대전화처럼 생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색 측정기를 꺼내 들었다. 

윗부분에 볼펜 심처럼 얇고 긴 안테나를 뽑아보니 마치 개미귀신처럼 생겼다. 개미귀신처럼 생긴 측정기를 이리저리 흔들던 테슬라가 "역시"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라니? 뭐가" 김창수가 물었다. 

"처음엔 무심코 파괴했었는데…. 어느 순간 차원 의문 조각이 나타날 때마다 뭔가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데이터를 수집했었는데 이젠 확신이 서네요." 그가 개미귀신처럼 생긴 장비를 내밀며 말했다. "어떤 확신 말인가?" 김창수가 물었다. 

"지금은 알려드리기에 곤란해요. 그보다 서둘러 아지트로 가야겠어요." 테슬라가 김창수에게 내밀던 장비를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먼저 아지트에 도착한 테슬라와 김창수가 범도와 무사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간이동을 통해 아지트 내부로 올 거라는 테슬라의 생각과는 다르게 범도와 무사시는 출입문을 통해 그들과 합류하였다. 

그들이 모이자, 김창수가 일어나 말했다. 

"다시 모이라고 한 이유는 그동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 친구가 뭔가 들려줄 이야기가 있답니다." 테슬라를 소개한 후 김창수가 자리에 앉았다. 

손에 데이터를 담은 태블릿을 들고 팀원들 앞에 홀로 서 있는 테슬라의 표정이 결연해 보였다. 

팀원들은 테슬라의 설명을 기다리며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몰입하였다. 

"제 생각에는, 수직 홍채 녀석들이 거대한 차원의 문을 만들기 위해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테슬라가 말문을 열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 조각들을 끼워 맞춰 차원의 문을 조금씩 키우다 보면 결국 일정한 크기가 되었을 때 우리들처럼 차원의 문을 통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김창수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게 가능한가? 그렇게 쉽게 차원의 문을 만들 수 있다고?" 

"제 추측이에요." 테슬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물론, 아직 정확하진 않지만…."모두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무사시는  팔짱을 낀 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무미건조했지만, 눈빛에는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테슬라가 태블릿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두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조각을 모으지 못하도록 원초적으로 파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들이 만들어 소환하려는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쉽지 않습니다."

범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군, 어느 쪽도 쉽지 않겠지."

"하지만 그들이 소환하려는 것이 어떤 건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나. 그리고 얼마나 올지도 가늠하기 힘들고…."김창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네" 범도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김창수의 말에 테슬라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긴 시간은 아니었다.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다시 테슬라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지금처럼 그들이 조각을 만들면, 즉시 파괴하는 것입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그동안 수집한 데이터 덕분에 이제 우리는 그 조각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테슬라가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 조각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어떻게?" 김창수가 테슬라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제 그것을 만들어봐야지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만드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테슬라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은 정보가 너무 부족해 막막했는데 이제 방향이 정해졌으니 만드는 거야 뭐 하하하!" 테슬라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던 팀원들이 미소로 그와 함께했다. 모두 웃고 있었지만, 김창수의 생각은 달랐다. '누군가 죽어야 만들어지는 조작을 빨리 찾아낸들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는 말인데…. 처음부터 그것을 만들지 못하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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