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母스 15화
# 2023년 겨울 tow
지난해 12월 신춘문예 마감 하루 전 갑자기 동화 한 편이 떠올라 일필휘지一筆揮之 하였는데 막상 쓰고 보니 그림이 아쉬웠다.
어떻게든 세상에 내놔야겠다는 생각에 딸아이에게 아직 제목도 정하지 못한 동화 한 편을 복사해 던저주고 [딸~ 아빠 그림 좀 그려줘] 하며 공연히 친한 척 다가갔지만, 딸아이의 반응이 탐탐지 않아했다.
굳이 딸아이에게 부탁한 것은 녀석의 꿈이 웹툰작가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작가를 꿈꾸고 있는 녀석이니 그림실력은 이미 검증된 상태라 나의 이야기와 딸아이의 그림이 만나면 시너지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였지만 녀석은 나와 함께 일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이미 거절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설득과 회유를 시도했다.
[야! 지난번에 보니까 태블릿 망가진 거 같던데... 이번작품 그려주면 아빠가 하나 사줄게] 뜸 들이던 녀석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참아보려 하지만 이미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딸아이의 입꼬리를 보았던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다.
[그러지 말고 아빠가 미리 사줄게 그러면 너도 작업하기 편할 것 같은데 어때?] [있으면 좋기는 하지] [좋아 그러면 하는 거다]
그렇게 문서 없는 계약이 이루어졌고 약속대로 테블린을 구입해 줬다.
하지만 딸아이가 이미 받아놓은 계약을 먼저 이행해야 한다며 차일피일 무루는 것이 아닌가 그래 뭐 난 급한 것 아니잖아! 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갈 무렵 딸아이에게 진행상황을 듣기 위해 식사자리에서 넌지시 물었다.
[요즘은 어때?] [뭐가?] [계약한 거 먼저 그려줘야 한다며] [아 ~ 그거 다 했지, 그리고 지금 그리고 있는 건 일요일에 의뢰받은 거 하고 있는데] [헐 ~ 아빠 거는? 아빠가 먼저 아니야?] [알았어 그려주면 되잖아] [언제? 언제 해줄 건데?] [아이 기다려봐]
귀찮다는 듯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던 딸아이가 벌떡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방문을 “쿵” 하며 닫아버렸다.
[뭐야? 내가 뭘 잘못했어?] 억울해서 함께 식사하던 식구들에게 물었지만 관심 없다는 듯 모두 아무런 말 없이 식사를 이어갔고 그 모습에 화가 난 내가 한소리 덧붙였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댓 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뭐야 지금 나 혼자 떠드는 거야?] [놔둬 저 계집에 나중에 내가 혼내줄게] 집사람이 거들어보지만 그 역시 내가 찾던 답은 아니었다.
[혼내긴 뭘 혼내 내가 말하는 건 그런 말이 아니잖아, 왜 사람 말하는데 무시하냐고 제야 그렇다 쳐도 당신이나... 아들~ 너희들 말이야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러자 큰아들이 굵직한 목소리로 내 말을 가로막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아빠 제 저러는 거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닌데 뭘 새삼스럽게 화를 내요] [야 인마 내가 지금 저 녀석 이야기하는 거가 아니잖아 너희들 태도를 지적하고 있는데 왜 저 녀석을 들먹거려]
[그거는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아무 말 못 했어요]
막상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아들에게 더 이상 바락바락 소리 질러봐야 어른스럽지 못할뿐더러 그럴수록 내가 더 비참해지는 듯한 느낌이라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날 저녁 딸아이가 카톡으로 자신이 그려준 모자 쓴 고래 한 마리를 그려주었는데 그림 밑으로 “아빠 이렇게 그리면 돼?” 하며 짧은 메시지를 보내주었지만 직답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메시지 확인 즉시 하트를 난무하며 무한사랑을 표현했을 나였지만 이번엔 참았다.
어떻게든 화가 나 있음을 딸아이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아빠 ~ 왜 톡 안 줘] 하며 몸을 베베꼬며 들어오던 딸아이가 나의 왼쪽 팔을 끌어당기며 [화났어~?] 하며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넸고 이번에도 나는 [아니~] 하며 딸아이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일전에 여동생이 자기 아들, 딸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일지 모른다며 자신의 뺄 셈 철학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때 사랑한다면 조금은 덜어낼 필요가 있다고 여동생이 조언했었는데... 충분히 이해했지만 딸아이에겐 유독 그것이 힘들다.
이번에도 또 바보같이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 잘 그렸네 이렇게 그려달라고 더도 말고 딱 15컷만 그려줘 아빠가 동화책 나오면 한턱낼게] [그냥 전문가한테 맡기면 안 돼?] [그럴 거면 진즉 맡겼지 딸 하고 함께하고 싶어 그러지!]
[알았어. 그럼 또 그려볼게] [그래 고마워 ~]
그렇게 어르고 달래 가며 4컷을 더 받았지만, 딸아이가 더는 그리지 않았다.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 딸아이가 바빠진 개인 용무도 한몫했지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생각해 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 [뭐가?] [그림말이야 오늘 서점에 다녀왔는데 신작 그림책들을 몇 권 봤거든... 그런데 quality가 장난 아니야 난 그 정도는 못해] [야 이놈아! 해보지도 않고 포기 먼저 하냐? 아빠가 언제 그림 예쁘게 그려달라던? 그냥 딸이 그려준 그림으로 하고 싶다고 그냥 너의 그림이면 좋다고 아빠는] [아냐 아빠 이건 진짜 아니야 아빠가 쓴 원고 재미있었거든 그런데 내가 망칠 수는 없어 그러지 말고 전문가에게 부탁해] [야! 가스나야!] [아빠 싫다고]
딸아이가 어떤 그림을 보고 와서 저리 자존감이 낮아졌는지 알 수 없지만,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결국 딸아이의 도중하차에 처음의 위치로 돌아온 원고는 다른 주인을 찾아야만 했다.
이젠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고 라이크잇 해주는 것이 일상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나의 글에 라이크잇 해주었다고 메시지가 날아와 잠시 짬을내 어떤 분인지 또 그분은 어떤 글을 쓰시는지 보기 위해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이야기 중간쯤 간혹 그려진 그림들이 너무나도 인상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내 원고에 삽입할 그림을 그려줄 수 있냐는 메시지를 보냈고 작가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렇게 한동안 묵혀두었던 동화가 다시 세상밖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작가님의 그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비록 그림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진행이 되는 듯했다.
어느덧 작가님과 3주가량 소통해 가며 4컷의 그림을 받았다.
표지와 첫 장면부터 이어지는 4컷을 받은 것이다. 너무나 기뻐 서둘러 투고에 들어갔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파워포인트를 켜고 적고 삽입하고를 3시간가량 싸우다 보니 어느덧 그럴싸한 투고 기획안이 만들어졌다.
이미 지난번 투고 후 연락처가 남아있던 출판사 몇 곳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자정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계속되자 잠들어있던 집사람이 일어나 또 한소리 한다.
[안자?] [어! 자야지] [빨리 자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한다고] [어! 미안해 빨리 정리할게]
가정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일이 잘 ~ 풀리면 피곤한지 모르듯 한 것 부풀어있던 나에게
뜬금없이 집사람이 또 한소리 보탠다.
[그러면 당신 동화작가 되는 거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기에 당황했다.
[글쎄~ 동화작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사실 요즘 에세이를 쓰고 있고 이미 서너 편의 에세이가 출판을 앞두고 있었지만, 동화책이 에세이보다 출판일이 빨랐을 뿐인데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던졌고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는 나는 또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중, 장편의 에세이나 소설보다 동화는 작업과정이 훨씬 쉬웠고 진행도 빨랐기 때문에 잠시 고민이 들긴 했다.
무엇보다 미취학 아동 대상 학원과 교육원을 운영한 경험이 있었고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 또한 고민해 볼 만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문득 나는 어떤 것을 가장 잘하는가? 어떤 것을 써 내려갈 때 가장 행복한가? 글감들은 어디서 찾고 있고 앞으로 어떤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가와 같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결론짓지 못했고 그냥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간의 글감들을 모아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어머니 이야기와 지금 하고 있는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그리고 탈고 후 출판 대기 중인 원고들을 재점검하는데 전념하기로 했다.
브런치에 어머니 이야기를 연제 하던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빠 연제중인 글 모두 읽어 봤는데 빠진 부분이 있던데 혹시 알아?] 물론 알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적어가고 있지만 이미 작고하신 어머니의 이야기는 어느 소설 속의 주인공보다 더 드라마 같다.
하지만 너무 적나란 표현은 되도록 숨기려 노력했던 것인데 동생이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가령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나 어머니에게 했던 행동은 어느 정도 수위조절이 필요했고 또 그래야 살아계신 아버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늙어버린 숨소리와 그마저도 그리워질까 두려운 남매를 위해 수위조절이 절실하다.
당신의 지난날을 반성하라고 적어 넣기엔 이미 너무나도 오래돼버린 이야기였고 어머니의 무덤에 적어 넣은 “여보 다음생에도 우리 부부 합시다”라는 아버지의 문구가 진심이길 바라며 조금은 비겁하지만 아니 어쩌면 어머니의 방식인 측은지심에서 오는 포용이라는 형벌을 내림으로 진정 당신이 깨닫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