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일기장 one

# 코스母스 16화

by 서기선

사나웠던 인생 3막


# 어머님의 일기장 one


휴가 전 어머니의 편지로 이사 간 집 주소를 알계되었고 한동안 어머니의 편지를 왼쪽 가슴에 비닐로 포장한 상태로 가지고 다녔다.

비닐로 한 번 더 포장한 것은 그렇지 않으면 땀에 젖어 1시간도 버티지 못할 테지만 꼼꼼히 비닐 포장한 후 편지를 다시 군용 수첩 사이에 끼워 넣으면 형태를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머니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길 바랐고, 작은 수고의 비해 수백 수천 배의 보상이 되는 셈이니 주저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휴가 전 어머니를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필승]....... [휴가를 명 받았습니다. 필승]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선임병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양했지만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다.

“내 부모라고 다르겠나 모든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겠지” 하면서도 어머니의 반응이 궁금하긴 했다.

그리고 드디어 첫 휴가가 정해졌다.

휴가 일주일 전부터 입고 나갈 옷에 열심히 다림이 질을 했으며, 신발은 매일 물광과 불광을 번갈아가며 닦았다.

그리고 그런 수고는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함께 나갈 휴가 조원 그중에서도 첫 번째 휴가를 맞이한 군인은 아마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휴가 보고를 마치고 부대를 벗어나면 마을 인근을 돌아다니는 버스를 타야 한다.

일부 선임들은 부대 앞을 지키고 있던 가족 혹은 친구들이 마중 나오기도 했지만 나와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편의성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일찍 자신을 반겨줄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은 부러웠다.

30분쯤 기다렸을까? 지평선 끝에서 몽골몽골 흙먼지가 일더니 버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포장길을 달려오던 버스가 유난히 좌우로 흔들렸는데 마치 신이 나 춤을 추는 듯 보였고 덩달아 나도 몸을 좌우로 살짝살짝 움직여봤지만 이네 쑥스러워 다시 차려자세로 선체 버스가 다가서기만을 기다렸다.

동기 2명과 함께 버스에 오르자 주위 시선이 모두 우리를 응시했다.

몇 안 되는 승객 중 유난히 나이 들어 보이던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휴가 나가는구먼 자네들은 몇 기인가?] 기수를 물어보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자신이 나와 같은 공군 출신임을 넌지시 자랑하는 것이거나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이곳부터 출신 출신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야 한 달에 한 기수씩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해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와야 할 일병 아무개 같은 관등 성명이었지만, 마른침을 삼키느라 관등 성명 대신 기침이 먼저 튀어나왔과 그 모습을 보던 운전기사 아저씨가 껄껄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던 아저씨를 향해 [이 씨 애들 놀라잖아 그만해] 하시는데 두 분이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대화 내용이었다.

결국 아저씨의 물음에 대답을 한 건 곁에 있던 동기 녀석이었다.

[신경 쓰지 마요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 아저씨 아들이 그 부대 출신인데 아무나 보면 그런 걸 물어봐요 하하하] [아~ 예 하하하!] 짧은 대화가 이어졌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버스가 기차역 주변에 다다랐다.

버스정류장에서 기차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물론 거리상으론 멀었지만, 비포장길을 벗어나면서 내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먼 거리였지만 순식간에 기차역까지 달려와 나를 버려둔 채 다른 차들과 뒤섞여 모습을 감추었다.

조치원역에서 탑승한 내가 부산역까지 가기 위해선 대략 3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로 이동할 것이고 근처에선 다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부대에서부터 집까지 5~6시간 걸린 듯했다. 서둘러 나왔지만, 집에 도착했을 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후였다.

큰집에 몇 번 다녀간 적 있어 동내는 낯이 익었지만, 집은 이사 간 집은 낯설었다.

양팔을 벌리면 닿을 듯 좁은 골목길 입구에 섰을 때 골목 안쪽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전 단 하나가 발밑에 떨어졌다.

[호방 나이트?] 호박을 잘못 읽은 건가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지만 분명 호방이었다.

[뭐야 이름도 촌스럽네 호방이 뭐야!] 공연히 전단에 적힌 나이트클럽 이름에 화풀이하며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워낙 골목이 좁아서 그런 것인지 대부분 문이 미닫이문이었다.

[대문이 미닫이문이라니... 이동 내 참 특이하네]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걷고 있을 때쯤 유일한 여닫이문이 보였는데 그곳이 세로 이사 간 집이었다.

대문을 열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는데 첫 번째 충격은 위쪽으로 쭉 벗은 계단 때문이었다.

대략 40도는 됨직한 각도였는데 걸어 올라간다는 느낌보다 기어가는 듯 올라가야 비로소 주방이 보이는 살면서 그렇게 특이한 구조의 집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와 ~ 살벌하네 그런데 여기가 맞기는 하는가?]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문에 적힌 주소를 살펴보았지만 확실했다.

계단을 기어 올라가던 중 또 한 번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였는데 계단 여기저기 혈흔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예전 어머님의 모습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마 불안해서 그랬을 것이다. 혈흔이라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서둘러 올라가며 [엄마~] 하고 부르자 위쪽에서 방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다급히 뛰어나오시며 나를 반겨주셨다.

어머니는 웃고 계셨지만 난 반가움을 뒤로한 채 어머니의 상태로 먼저 살폈고 눈에 띄는 상처가 없었기에 안도할 수 있었다.

내가 잊지 않고 준비해 간 인사말을 큰 소리로 내뱉자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셨다.

고생했다고 말씀하셨지만, 목이 메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고, 그 모습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어머니가 짧게 잘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옛 생각을 하시는 듯했다.

학창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신 모양이었다.

[살 좀 찌지! 그대로 내...] [그러게 난! 많이 먹는데 살이 잘 안 찌네요. 하하] [아침! 밥은?] [먹었어요. 시간이 몇 신데, 벌써 먹었지]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많았는데 딱히 생각나지 않네 하하하 분명 많았거든 그런데 진짜 신기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어요.] [생각나면 이야기해 줘]

그렇게 잠시 이야기하던 중 계단에서 보았던 혈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주방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안방 왼쪽은 동생 방이었는데 내가 오는 바람에 한동안 동생이 안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동생은 저녁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꽤 밝아 보였다.

동생이 돌아올 때쯤 어머니가 잠시 장을 봐서 오셨는데 꽃게탕을 해주실 모양이었다.

내가 여전히 꽃게탕을 좋아하신다고 믿고 계신 듯했지만, 사실 나는 맛을 떠나 일일이 살을 발라 먹어야 하는 귀찮음 때문에 더는 꽃게탕을 먹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꽃게탕은 범접할 수 없는 맛이 있었기에 한껏 기대하며 다른 가족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어머니가 밥상을 차리고 있을 때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와~ 꽃게탕이다. 그러면 그렇지 오빠 왔구나] 퉁명스럽게 툭 내뱉어 보지만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오빠 없을 땐 안 해줬거든 그러니까 오빠는 엄마한테 잘해줘야 해] 무심한 듯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이야기했지만 뼈가 들어있는 말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쳤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계셨고 그사이 동생과 잠시 이야기를 하였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빠! 계단 오를 때 뭐 이상한 거 못 봤어?] 동생이 혈흔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혹시 혈흔이니?] [봤구나... 내가 엄마 보고 그렇게 살지 말고 차라리 그냥 이혼하라고 했어. 내 말을 들을 양반도 아니지만...] [.......] [이젠 나도 지겹다니까?] 동생의 푸념에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계단의 혈은 일부러 않지 운 거야 아빠 보라고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어떻게...]

[아빠보고 차라리 우리 다 같이 죽자고 했더니... 이제는 나도 때리더라... 엄마가 그거 말리다가 더 많이 맞았어, 엄마가 이야기 안 했지!] [응 아무런 말씀 없었는데...] [내가 그러줄 알았어. 엄마는 늘 그래 왜! 그러는지 몰라 정말 너무 답답해 어쩌면 좋겠어?] [그래도 아빠가 오빠는 어려워하니까 한번 이야기해 봐] 동생도 이미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으로 종용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불안함은 커진다.

술에 취해 들어오실 확률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었다.

물론 술에 취해 들어왔다고 언제나 폭력성을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그랬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불안에 떨며 아버지의 빠른 귀가를 빌었다.

안방에 모여 TV 시청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큰아버지의 목소리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내의 목소리도 함께 뒤섞여 들려왔다.

어머니가 서둘러 안방 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하려고 몸을 일으켰고 뒤이어 나와 동생이 아버지와 손님을 맞이하였다.

[어! 아들 왔네 하하하] [아버지 오셨어요! 오늘도 한잔하셨네요] [암 한잔했지 와하하!] 큰소리로 웃던 아버지가 뒤이어 올라오는 큰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형님! 우리 아들 휴가 나왔네요] [어 그래 왔나?] [큰아버지도 오셨어요!] [그래 고생 많지?] [아닙니다. 고생은 무슨... 누구나 다 가는 군대인걸요] 아버지가 서울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왔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막일였다.

큰아버지가 목수였는데 무리 중 우두머리 격인 일명 “오야지”라고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당신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일하고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아버지에게 뒤처리를 부탁하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큰아버지의 기대 이상으로 그 일을 잘하셨고 마침내 두 분은 의기투합하셔서 계약과 수금은 아버지가 공사와 인부는 큰아버지가 담당하셨고 한동안 두 분 모두 자신들의 성과에 만족해하셨다.

큰아버지와 함께 일하시는 인부 한 분이 집으로 왔다는 건 오늘은 무사히 넘어간다는 청신호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장님에서 관장님으로 그리고 또다시 사장님으로 그리고 지금은 체육관을 그만두셨음에도 여전히 관장님으로 불리길 희망하셨기에 아버지를 따르는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여전히 관장님이라고 불렸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동안 식구들은 하나둘 병들어 갔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안위만 걱정할 뿐이었고 어머니나 자식은 당신의 의식 끝자락 어디쯤 있으려나? 어쩌면 그마저도 없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불쌍한 사람이라고 정의하셨다.

한눈에 보기에도 취기가 있어 보였지만 함께 오신 큰아버지와 동료인 아저씨가 한 공간에 있었기에 흔들리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아버지는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님이 돌아가신 건 그 후로 2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모두 지쳐갈 때쯤이었는데 흥에 겨운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였다.

[산 너울에 두둥실 홀로 가는 저 구름아 너는 알리라 내 마음을 부평초 같은 마음을...]

몇 달 새아버지는 녹슬은 기찻길에서 내 마음 별과 같이로 갈아타기를 하신 듯했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노랫말에 처음으로 귀 길이여 들었는데 처음으로 아버지가 노랫말로 당신의 메시지를 던지고 계심을 알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녹슬은 기찻길을 부르셨는데 노랫말에 “어머니 아버지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매여 불러봅니다.” 하는 메시지가 들어있었고 지금의 가사에는 “너는 알리라 내 마음을 부평초 같은 마음을”이라는 메시지가 숨어있었다.

당신은 노랫말로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계셨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바람을 핀 것이고 그것을 몰라주는 어머니가 미웠기에 폭력을 행했다는 비겁한 자기 합리화가 아닌가 말이다.

손님이 돌아가고 난 후에도 아버지는 누워서 천장을 보며 내 마음 별과 같이 를 한동안 더 부르셨고 지겨워진 나는 동생 방으로 몸을 숨겼다.

한동안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조용해졌다. 잠이 든 모양이다.

버스에서 기차로 다시 지하철로 6시간을 이동했기에 피곤할 만했지만, 웬일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던 나는 오래된 책꽂이의 책들 사이에 분홍색 표지에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 시선이 꽂혔다.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내가 쓰던 일기장이었지만 열쇠를 잃어버려 일기장의 용도라기보다는 시상이 떠오를 때면 습작하던 습작노트였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노트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습작노트를 끄집어내려니 곁에 있던 우표수집 노트가 함께 따라 나왔다.

우표수집노트에는 옛날 돈과 오래된 우표가 많았다. 어린 시절 우표수집이 취미였던 내가 새로운 우표가 발매될 때마다 우체국 직원보다 더 일찍 우체국 문이 열리길 기다려가며 수집했던 우표들이었기에 한 번에 2가지 보물을 찾았다는 기쁨에 몹시 설렜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으면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이게 뭐야. 이게 아직 있었네]

우표책의 첫 장을 열자 500원짜리 지전(종이돈)과 100원짜리 지전(종이돈)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은 화폐단위가 “원”이지만 우표책에 꽂혀있는 지전 중에는 10전과 50전짜리 지전(종이돈)도 있었다.

그리고 존재마저 흐려져 잊혀졌던 크리스마스 실도 수십 장 보였다.

내가 그렇게 옛 생각에 젖어 행복했던 기억들을 소환하고 있을 때쯤 처음 발견했던 습작노트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나는 어떤 글들을 습작했었을까? 설레는 마음과 행복한 상상을 하며 노트를 열었고 설렘과 기쁨은 내가 습작노트를 열 기 전 까만 허용 했다.

내가 노트를 잊고 지내는 동안 나의 습작노트는 어머니의 일기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습작노트를 아니 어머니의 일기장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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