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母스 17화
# 어머님의 일기장 tow
어머님의 일기장엔 강원도에서의 일과 중 일부만 적혀 있었는데 많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처음 몇 장은 내가 어린 시절 적어두었던 나의 글이었기에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지만, 뒤쪽의 글들은 어머니의 일기라기보다는 당신의 당시 심정을 적어 넣은 글이었고 글 머리에 날짜가 적혀 있었기에 일기라고 보았지만, 매일매일을 적은 글이 아니기에 일기라고 하기보다 주기에 가까웠다.
어떤 날은 하루 두 번도 적으셨고 또 어떤 날은 건너뛰었으며 어떤 날은 노랫말을 적어 넣은 것도 있었다.
어머니는 나와 필체가 비슷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너는 엄마 닮아서 악필이야 어쩜 닮을 게 없어 필체를 닮느냐?] 라며 놀리곤 하셨다.
나는 어머니와 닮은 것이 참 많다.
필체도 그랬지만 시를 좋아한다든가 감수성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하루는 서유석 씨의 타박네라는 노래를 듣다가 감정이 동요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가 당신과 닮은 아들의 모습에 함께 눈물을 보이셨다.
[엄마는 왜! 울어?] [몰라! 아들이 우니까 눈물이 나네] 하시며 당신의 눈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으셨지만, 당신의 눈물이 어떤 것임을 난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시조도 좋아하셨는데 나 역시 그랬다.
어머니가 첫 소절을 읊으시면 다음 소절은 내가 받아읇었고 그런 놀이를 자주 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어머니는 좋아하셨다.
어머니와 시조 대결을 하던 날 내가 송강 정철의 효행 시를 읽었는데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시더니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엄마, 아빠 신경 쓰지 말고, 자식이 행복하면 부모도 행복한 거야 알았지?] 갑작스러운 말씀에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지만, 당시 나는 어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왜 그리도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셨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사실 말고도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외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처음엔 어머니의 성품을 지적하셨는데 무조건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어머니를 답답해하셨다고 그것 때문에 외도를 한 것이라며 정당화하셨다고 적혀 있었다.
차라리 싫어졌다고 하시지... 이 얼마나 비겁한가 말이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폭력을 사용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폭력을 키운 것은 어머니 본인이라며 자책하는 글도 있었다.
처음 폭력을 가하셨을 때 단호히 대처하지 못했던 당신 때문에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된 것이라며 비통해하셨지만, 그 또한 아버지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떻게 되었건 폭력이라는 것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는 일 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 연예폭력 같은 것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물론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가 어떤 이유에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는지와 같은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다.
하지만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폭력은 범죄이고 범죄를 용인(容認)하는 국가는 없으므로 아버지의 행동도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품으셨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불쌍하다. 그리고 가엽다고 이야기하고 계셨다.
특히 아버지는 2번의 화재사고로 제기하기 힘들 정도로 떨어졌을 때 당신의 힘으로 일어서기보다 처가의 도움을 바랐었고 그런 부분이 어머니와 많이 대립했었다고 어머니의 일기장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고를 하신 아버지를 불쌍한 사람이라며, 애써 포장하고 계셨지만, 처지가 안되고 애처롭다는 의미를 지닌 불쌍하다. 보다는 가엾다, 딱하다의 의미를 지닌 안타깝다는 표현이 맞는듯했다.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N에 대한 미운 감정도 비교적 솔직한 당신의 심정을 적어두셨는데 특히 N과 있었던 사건은 나를 다시 한번 분노케 하였다.
아버지와 N이 여관방에서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셨다는 어머니는 복잡했던 당시의 심정은 내용만큼이나 휘갈려적은 필체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살아온 세월마저 부정하는듯한 아버지의 대응은 가족 이전에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마저 저버리는 행동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아버지의 외도가 단순 플라토닉 러브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리도 처참히 짓밟을 수 있는가 말이다.
읽고 있는 동안 눈물에 시야가 흐려져 닦고 읽기를 반복했으며,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움이 함께 자라났다.
어머니의 일기는 내가 처음 어머니에게 글쓰기를 권했을 때를 시작으로 3달 동안 이루어졌으며, 이후 다른 일기장이 생기신 것인지는 아니면 이곳에서 멈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뒤쪽에 아직 백지상태의 공간이 제법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한 가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과연 어머니가 진짜로 아버지를 포용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라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될 텐데...
동생의 말처럼 차라리 이혼하시는 것이 옳은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그마저도 싫다고 하셨으니 속을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잠시 어머니와 짧은 대화를 했었는데 요즘 어머니에게 취미 같은 것이 생겼고 그것에 대단히 만족해하셨다.
그것은 바로 동생이 운영하는 가게에 나가는 것인데 어머니는 동생이 일하는 모습을 굉장히 사랑스러워했으며,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렇게 동생과 함께 있으면 당신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고 동생이 차지하는 무게감도 커졌다.
그래서인가 동생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령 혈흔을 일부러 치우지 않았다는 도발적인 행동이나 이혼을 촉구하는 언행까지도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내게는 여전히 어린 동생이었지만 어느새 커버린 동생의 모습은 마치 애어른 같아 보였다.
자신의 소신을 말할 줄 아는 동생의 모습이 대견하다기보다 어른스러웠다.
나야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알지 못하지만, 아버지의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어른들이 동생을 볼 때면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당당함이 그리고 기세가 마치 아버지의 어린 시절 같다며 말씀하셨다.
반면 나는 어머니의 성향을 물려받아 조용하고 침착했지만, 어머니와는 다른 현실주의자였다.
어머니는 뭐랄까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함의 절정 같은 이슬 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산에 흐르는 물 같은 조금은 현실적인 성향이다.
훗날 아버지가 작고하신 어머니를 회상하며 이슬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당신도 인정하면서 왜 그러셨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용서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해탈解脫 (사람의 마음을 얽매고 있는 화, 욕망, 유혹, 괴로움 등에서 벗어나다.)의 경지에 오르셨을지도 모른다.
큰 외삼촌이 스님이시라 어려서부터 불법에 대한 가르침이야 더할 나위 없이 많이 들었을 테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리되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보살’이라는 별명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가 설령 해탈하셨다 하더라도 평범한 내가 이해하기엔 무리지 않는가 아닌 내가 아니더라도 보통의 인간이라면 화가 나면 욕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대입시험을 앞둔 어느 날 한동안 음악에 빠져 있던 자신을 벌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기타를 부숴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희열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당시 내가 맛보았던 카타르시스를 어머니에게 알려 드리려고 이미 깨져 못 쓰게 된 그릇 몇 개를 주워다 어머니에게 던져볼 것을 권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행동이 마뜩잖으셨는지 고개를 절래 거르시며, 왼손에 들려있던 그릇을 빼앗아 자신의 오른손에 드시곤 당신의 왼팔로 다시 내 팔을 잡아끄시더니 마당에 있던 화단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던 어머니는 그곳에서 이미 깨져버린 그릇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시며, 작은 화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셨는데 당시의 작은 화분이 동생 가계에서 찍은 사진 속 화분과 유사했다.
어쩌면 어머니의 작품이거나 아버지를 닮았다던 동생이 어머니의 손재주를 닮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일기장 속 어머니의 사진이 너무 밝은 모습이라 입대 전 가져가고 싶었지만 마치 동생을 지켜주는 수호 사진이라도 되는 양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고 나는 다시 본래의 자리에 넣어두었다.
일기장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사진을 찾은 건 대단한 성과였지만 어머니가 마치 해탈했을 것만 같은 과정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나 미움은 오히려 불어났고 불어난 반감의 크기만큼 측은지심 역시 자라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