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0대 후반 비(非)자발적 독립
결국엔 엄마가 원하는 강제적 독립을 하게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엄마'덕분이었다.
아빠는 당시 타지에 근무중이었고, 아빠가 없으니 엄마는 더 자주 나를 문제아 취급했고 '제발 나가라'고 했다. 마치 아빠에게 엄마 혼자서 자식돌보는데 '이렇게 고생하고있다' 라는 걸 생색내기 위해 다 큰 나에게 자꾸 없는 문제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사실 대학교 졸업반일때도 아빠까지 합세해 '당장 나가라. 고시원 알아봐라' 라고 하여, 하루는 고시원을 탐방하러 혼자 떠난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난 고시원에 가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자취를 해본적도 없고 나가산적은 기숙사에서 딱 1년정도였는데, 그때도 돈이 부족해 틈틈히 일일알바를 했었고 부모님이 치사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놈의 '돈' 때문에라도 혼자 나가산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어쨋든 진짜 고시원을 알아보라고 하니, 가장먼저 대학교 앞에 있는 여성전용 고시원에 갔었는데 너무너무 비좁은데 월세는 자취방 가격과 맘먹는것 같았다. 다행히도 적정금액의 월세는 능력있는 부모님께서 지원해준다고 하니,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혼자 대학교를 다니며 생활에 필요한 '생활비'는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오지 않았다.
어쨋든 두번째 고시원도 알아보기 위해 저렴하다는 서울 고시촌에 도착했고, 지나가다가 보이는 허름한 건물의 3층정도 되는 고시원을 발견하고 전화를 걸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월세도 약25만원 정도였기때문에 저정도면 부담갖지않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방을 보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사장님이 '지금은 내가 나와있는데, 방에 사는 다른 아저씨께서 방을 보여줄거니 어서 올라가보라'고 했다.
나는 '아저씨..?' 라는 말에 당황했지만, 남자/여자 방이 따로 나눠져있겠거니 하고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어떤 런닝 차림에 눈이 다풀린 아저씨가 마중을 나와있엇다. 딱 봐도 술에 조금 취한 것 같기도 해서 내가 돌아나가려고 하니 "아니, 왜 그냥가! 방은 보고가!"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고시원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에 가자마자 곰팡이 냄새와 쾌쾌한 냄새가 코를찔렀고, 고시원 신발장에는 전부 진흙묻은 공사장 인부들의 등산화 같은 것들이 잔뜩 흩뜨려져 있었다. 신발에서도 냄새가 났고, 된장냄새같기도 하고 여러가지가 섞인 너무나 불쾌하고 숨막히는 냄새가 나서 나가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내 뒤를 막고 서서 "앞으로 들어가~ 거기가 복도야"라며 막고 서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
엄청난 두려움과 불쾌함을 느끼며 문열린 방을 하나 지나가는데, 한 할아버지가 배를 다 보인채 방바닥에 누워계셨다. 그러면서 갑자기 방마다 아저씨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고 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모두 다 술에 취하거나, 약에 취한듯한 피곤하고 쩔은 모습이었다. 물론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되지만 나는 숨이 턱하고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점점 내 뒤에 따라오는 아저씨들이 많아졌기때문에 억지로라도 방구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여기가 젤 낫다' 라고 하고 보여주신 방의 벽지에는 곰팡이는 물론 뭐를 흘린건지 갈색의 얼룩덜룩 자국이 있고, 누가 여기서 쓰러져서 나갔기 때문에 방이 비어있는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어로 대화를 하기도 했고, 동물원의 새로 온 동물을 구경하듯 눈으로 계속 나를 쫓았다.
나는 어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지 않으면 여기서 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이제 "그만요, 그만볼게요 다봤어요." 라고 했으나 아저씨는 "바로 앞이 주방이다" 라며 그 좁은 복도에서 나를 계속 앞으로 압박했다.
나는 주방에 도착했고, 어떤 중국인 아주머니 한분이 게셨지만 주방에서 나는 비린듯한 냄새에 또 정신을 차릴수가 없어 아저씨에게 "다봤으니 그냥 나갈게요!"라고 짧게 소리치고 그 길로 빨리 걸어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신발을 급하게 신는둥마는둥하며 아저씨께 "잘봤습니다"하고 그 길로 줄행랑을 쳤다.
밖에 나오자 그때야 숨이 쉬어졌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돈이 없으면 이런곳에서 살아야하나. 난 못하겠어. 아직 못나가겠어.'
물론 열심히 사시는 그 분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위생적으로 너무 힘든환경임은 분명했다.
집에 가는 길 그 고시원의 사장님의 번호로 부재중이 3통, 문자가 여러통이 와있었다. '학생, 5만원 저렴하게 해줄게 와서 살아!' 라며.
혼자서 돈 벌 의지가 약한 나는 그길로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잘못했다'고 하고서는 방에 쥐죽은듯이 박혀있었다. '그래도 부모님 감사하네, 부모님없으면 아무데서든 살아야되는거잖아' 라고 위로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 집을 나갈 의지도 용기도 꺾여 그렇게 대학을 졸업했다.
엄마아빠는 '그럼 그렇지. 니가 나갈 능력이 있겠니' 라며 못나간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본인들에 대한 소중함을 이번 기회에 잘 깨달았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쨋든 그렇게 28살이 되었고, 회사를 출근하는길 또다시 엄마에게 '꼴보기싫다. 제발 우리 여기까지만 같이 살자. 이제는 정말 나가살아. 오늘 집 알아봐라!' 라는 소리침을 듣고, 그날도 헛헛한 마음으로 퇴근 후에 다시 혼자 살 집을 보러갔다.
마침, 본가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동네에 컨디션 괜찮은 원룸이 나와있었고 나는 엄마에게 그 방을 보여주었으며 엄마는 '괜찮네.' 라고 하며 보증금을 빌려준다했고 드디어 비자발적 독립을 하게 되었다.
계약을 하고 일주일도 안되서 나는 이사를 하게 되었고, 생필품은 내가 알아서 사라고 했고, 엄마는 대신
'드라이기'를 사주겠다고 했다. 집에있는 드라이기 가져가면 엄마가 쓸 수 없으니.
나는 그런데 그렇게 싫은 엄마와 떨어지는데 너무너무 슬프고 눈물이 계속 났다. 결국에는 내 의지가 아니라 '쫓겨나듯이' 패잔병처럼 나오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왜 자꾸만 집에서 쫓겨나야되는건지, 반가운 존재가 아니라 왜 자꾸 집에서 없애야하는 존재로 취급받는건지 이사를 하는 그 날까지도 이해가 되지않아 잠깐 이사를 도우러 방문한 아빠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랬더니 아빠는 어이없다는 듯이 '왜 울어. 나같으면 좋아서 날뛰겠다. 나도 혼자살아보고싶은데'라고 속모를 소리를 했다.
그렇게 독립한 원룸에서 첫날 밤, 나는 외롭고 공허함을 느껴 잠에 깊게 들지 못했다. 점점 적응은 했지만.
그리고 본가에 있던 내 방은 바로 다음날 부터 가족들의 옷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방을 비우길 모두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독립 이후 몇개월이 안됬을 때 나는 퇴근하고 온 집에서 갑자기 숨이 막히고 답답하여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숨이 너무막혀. 너무 외로운것 같아 힘들어' 라고 했더니 엄마는 바로 '인생은 원래 외로운거야. 혼자 잘 사는 사람이 되야되. 인생은 원래 혼자야' 라고 하며 숨막히는 위로를 해주었다.
어느 날은 내가 방에 혼자 있다가 극심한 외로움과 우울감에 또 엄마에게 전화를 해 '엄마, 나 집에서 다시 같이살면 안될까? 너무 외로워서 죽겠어.' 라고 했더니 엄마는 바로 '안될것같애. 아빠랑 상의해봤는데 너가 다시 집에 돌아오면 또 불화가 생길 것 같다고 아빠가 하더라고. 그래서 안되' 라고 거절했고, 희미하게 한마디를 붙였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나는 점점 애탔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
어떤 날은 엄마가 기분이 좋은지 본가에 밥먹으러 오라길래 갔는데, 집이 너무 어색하고 원래 내가 없던 자리처럼 나를 뺀 엄마,아빠,동생 셋이서만 가족이고 나는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셋이서 하하호호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있는 장면에서 내가 있던말던 신경쓰지 않고 대화를 하는 모습에 뭔가 공허했고, '내가 저 비좁은 원룸에서 숨막히다는 생각을 할 때, 이들은 이렇게 자기들끼리 아무 문제없이 화목하게 잘 지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같이 있어도 혼자 외로워했다. 또 금새 '여기 불편하다, 그냥 내 집으로 가고싶다'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하루는 출근 준비를 하는데 원룸에서 갑자기 또 눈물이 줄줄나고 숨이 막혀 119를 불러야하나 싶다가, 인터넷을 뒤져 '정신과', '심리상담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출근도 하지 못할 정도여서 회사에 급히 연차를 내고, 당장 지금 예약이 되는 상담센터가 급히 필요해 여차저차 한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제가 지금 눈물이 계속나고 숨이막히는데 예약이 가능할까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7년 전 첫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하루는 상담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전화가 왔었다.
"ㅇㅇ야 뭐하니, 잘지내니?"
나는 방금 전 심리 상담소에서 휴지를 들고 눈물을 쏟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래서 엄마한테도 말해야겠다 싶어서 "아니, 나 심리상담 다녀왔어."라고 했고, 엄마는 엄청 놀라면서 "무슨일있어?" 라고하길래
"아니 일은없는데, 그냥 힘들어서"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아이고 뭔일이야. 그래 잘 다녀봐"라고 했고, 나는 덤덤하게 "엄마도 다닐래? 엄마도 다녀보면 좋을것 같아."라고 했더니 엄마는 안봐도 뻔히 보이는 손사래를 치며 "얘 내가 거길 왜가니, 난 안가안가 내가 뭐하러가"라며 강렬하게 거절했고 마지막엔 '그래. 너 잘지내면 됬다.' 라고 하며 통화가 끝났다.
나는 전화를 끊고 순간 '이게 잘 지내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곧 '그래. 뭘 기대하는거지. 그만할 때도 됬잖아. 내가 원하는 따듯한 한마디, 그리고 위로나 사과는 이제 그만바랄 때도 됬잖아. 그냥 가자' 라고 생각하며 깊은 한숨과 미처 남아있던 눈물 몇방울을 떨어뜨리며 '내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