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깨달음 상점

상쾌한 총 달콤한 칼 팔아요

by 절대신비


프롤로그

서문을 따로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의 모든 글은 서문이자 유언이다. 시작이자 끝이다. 바로 생이다. 내 글이 어떤 글인지, 어떤 태도로 쓴 것인지를 이야기하는데 어쩌면 거의 모든 지면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태도. 오로지 삶의 자세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관심사는 철학 계보에 따라 철학자들의 말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철학자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사상 오롯이 받아내는 것. 즉 철학을 철학하는 것이다. 단지 기존 철학자의 사상을 탐구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전제다.


또 다른 전제는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 이 우주에 시간과 공간과 물질은 없다는 것. 여기서 철학이란 인문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물리학과 유기적 관계에 있는 최종학문이라는 것. 즉 인문학은 물론 과학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라는 것, 깨달음 혹은 열반과 동의어라는 것이다.


대상은 인류다. 후대다. 고로 나의 친구다. 개인적으로 친구란 아주 특별하고 까다로운 단계를 거친 인연이라고 여기지만 여기선 특별히 인류를 나의 친구라고 상정한다. 문학과 학문의 궁극적 지향은 두말할 것 없이 인류 구원이므로. “세상 모든 친구들이여!”


실제로 나는 매일 SNS로 독자들과 실시간 피드백 시간 가지고 있다. 중간중간 길게는 몇 년씩 은둔의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은 실제 은둔을 위한 은둔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사상 시간 위를 굴러 장대해지는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중력으로 인해 도리어 별처럼 응축된 사건이었다.


덕분에 나의 글은 어느 정도 농축되어 걸쭉한 액체가 되었다. 때론 동결건조된 고체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씩 먹으면 즉시 에너지를 주는 초콜릿. 아니라면 그대라는 자동차의 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 요즘으로 말하면 배터리. 언젠가는 수소연료전지.


은둔이란 예컨대 특이점*이다. 하나의 생이 끝나고 또 하나의 생이 시작되는 지점. 시간도 공간도 없는 아주 특별한 지점. 말하자면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경계다. 되는 일이라고는 없는, 그러나 꿈을 간직한 처절한 시기의 은유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나의 우주는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그 소멸과 격발에 축배를.


말할 수 있다. 누군가 지켜봐 주지 않아도, 내 안의 진리와 함께 여기까지 왔다는 것. 이 별과 저 별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 시간 통과하고 지평 넘어, 온 우주 가로질러! 너와 나 사이에는 우주만큼 광대한 사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언어가 아니라 오로지 너와 나 ‘사이’에 있다.


나는 실제로 시간 삭제한 후 후대 의식하며 글을 쓴다. 멀리 있는 독자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대. 바로 시간과 공간 초월한 사유 방식이다. 그럴 때 우주 저편으로 멀어져 가거나 다가오는 ‘너’를 본다. 사실 내가 다가가는 것이기도 하다. 둘은 같다. 이른바 상대성 원리.


아스라하게 멀어져 가는 ‘너’는 나의 또 다른 모습. 광대한 우주에서 홀로 우뚝한 네가 바로 나의 독자이기 때문이다. 남아 있을 친구에게 마지막 말 남긴 뒤 나도 그렇게 저 너머로 날아간다. 때로 내 품에 안겨 고요히 눈 감은 ‘너’를 보기도 한다.


순간 ‘너’의 눈동자가 내 심장으로 떨어진다. 우리 -지금 이 순간의 -추억이 미지에서 지금의 우리를 슬쩍 넘겨다보곤 한다. 상상력이 아니다. 나는 상상력 발휘하지 않는다. 그저 늘 최초의 인간이 될 뿐이다. 최후의 널 만날 뿐이다. 신의 동공으로 우리 생 지나가는 것 목도할 뿐이다.


철학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누구나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진실 알려준다. 엔트로피* 시시각각 증가하고 있다는 진리 말해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할 말 해야 한다. 너의 서문 혹은 유언은 무엇인가? 죽기 전에 어서 말하라.


우리는 지금 빛에 올라타고 있다



청초호에서 박민설




*엔트로피 : 물리학에서 엔트로피는 닫힌계closed system에서의 무질서도, 즉 손실되어 복원이 불가능한 정도라고 말한다. 계의 외형을 바꾸지 않은 채 구성 성분을 재배열시킬 수 있는 경우의 수라고도 한다. 흔한 예로 유리컵이 깨져서 산산조각이 나면 엔트로피 높아지는 것이다. 컵은 깨져서 파편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파편은 다시 컵이 될 수 없고 에너지로서 쓸모없다고 보는 것이다.


사랑, 혹은 만남도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권태나 이별이 된다. 태양도, 지구도 점점 망가져서 쓸모없어지게 된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엔트로피는 주어진 물리계가 허용하는 최댓값 이내에서 항상 증가한다.

다만 엔트로피 높아지는 동안 우리가 진리 깨닫는다면 혹은 육체적으로도 더욱 건강해진다면 우주의 효율(=질서) 조금 더 높일 수 있다. 에너지 소비(=무질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그럴 때 엔트로피 증가 속도 늦출 수 있다.


지구도 우주로의 진출이 쉽지 않다는 전제하에 –태양 포함 -닫힌계라고 치면 에너지는 점점 소비되어 사라진다. 에너지 최대한 복구하여 엔트로피 증가 속도 늦추는 것이 작금의 인류에게 과제일 것! 물론 우주로의 진출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구에서 태양계로, 태양계에서 우리 은하로 닫힌계의 범위 확장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외부가 없을 때의 엔트로피는 언제나 어디서나 증가한다. 결국 0에 이르고 사건은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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