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던져진 존재다. 사실이지 각자의 의지로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것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하에 이 행성에 도착한 것이 아니다. 인간뿐 아니라 우주 안 모든 존재가 그렇다. 어느 날 눈 떠보니 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무작정 세계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저 나무가, 하늘이, 우주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객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대상이며 약자다. 엑스트라다. 대신 제가 도리어 세상에 자신 던질 수 있다. 객체에서 주체로 갈아탈 수 있다. 포지션 바꿀 수 있다. 강자로 거듭날 수 있다. 차원 뛰어넘어 훌쩍 도약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의 일이다.
이미 그렇게 발상 전환한 이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났다고 믿는 이들, 주체적으로 부모를 선택했다고 여기는 자들. 신비주의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그 또한 주인공의 마인드. 철학적 태도다.
주인공은 스스로 일어서는 자, 우뚝 서는 자, 일신우일신 앞으로 나아가는 자. 으슥한 곳에서 기존의 주인공 몰래 처치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주인공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평가는 없다. 오로지 절대평가가 있을 뿐. 실력 키우는 것, 담대해지는 것, 그런 방식으로 여유로워지는 것.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라면 매 순간 웃는 자가 주인공이다.
기복이나 종교적 집착은 신만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신에게 모든 권위 부여하는 한 인간은 인간일 수 없다. 인간이 객체로 머무는 한 철학은 철학이라 불릴 수 없다.
던져진 채로 있으면 결정론적 인간, 벌떡 일어나 자신 던지면 비결정론적 인간이다. 그를 ‘양자적 인간’라 불러도 좋다. ‘긴 안목으로 큰 걸음 걸으며 확률 높여가는, 신의 계획 가진 인간’이라는 의미의 명명이다.
허공 혹은 사랑하는 무언가에 자신 던져도 좋다. 추락할 것을 염려하지는 말자.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론적 방향으로 던지는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보이저 1호 정도는 가볍게 따라잡을 수 있다. 빛의 속도로 가면 내일 이맘때쯤 추월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진공 통과한다. 적막 뚫고 날아간다. 던지는 동안 중력 느낄 수 없다. 늙을 수도 없다. 연료는 사랑이다. 혹은 분노다. 존재함으로써 분노하고 분노함으로써 사랑을 증거 하노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무대를 선고*받은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주체와 객체 사이의 분위기, 혹은 감독과 관객 사이에서의 입장, 그 애매한 환경뿐이다.
주어진 역할에 끌려다닐 것인가? 혹은 환경 딛고 일어나 새로운 역할 주체적으로 창조할 것인가? 자신만의 이익에 골몰할 것인가? 인류 단위로 사유 확장할 것인가?
사물 빼고 인간만을 논하기로 하자면 사명을 타고난 인간은 없다. 단지 운명에 몸을 실을 것인가? 산에 오르다 마침내 산이 된 사람처럼 스스로 사명이 될 것인가?
기실 인간은 깨어있기만 하면 된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하나 그 살아 있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게 문제. 바로 신과 자유의지의 문제다.
단언할 수 있다. 매 순간 신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우주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빛*을 쪼여 입자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이 신이라는 존재가 따로 있어 우리를 관측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란 행위. 자유의지는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우주는 에너지가 들어온 계의 입자처럼 일제히 한 방향 보고 있다. 즉 방향성 가진다. 우리도 빅뱅과 다르지 않 -다고 여길 수 있-으므로 우리 각자가 낮은 에너지 되는 것이다. 존재 이퀄 에너지! 그럴 때 우리 각자의 우주는 일관된 방향으로 앞으로 간다.
엄밀히 말하면 ‘너’와 ‘나’ 사이의 상호작용이 방향성 가진다. 엔트로피 증가하는 방향이다. 이를 신의 방향이라 명명할 수 있다. 그 방향성 이미 완전하여 신을 확신하는 것이니 우리도 신과 다르지 않은 것. 신의 명백한 증거다.
신과 나는 둘이 아니다. 그를 분리하는 순간 우주는 갈기갈기 찢어진다. 이 시점에 폐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원론적 사고 혹은 분리주의. 세계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세계의 전제이자 단서다. 철학의 출발점이다.
전장에서 자라난 피 묻은 깃발, 포지션 바꾸기 혹은 차원 도약*. 바로 철학이다.
*무대를 선고받은 : ‘자유를 선고받았다’는 사르트르의 표현에 동의하는 바.
*빛 : 또는 입자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관측자가 –빛을 쪼여 –입자를 관측하는 순간 빛의 간섭에 의해 입자 상태(위치와 속도)가 달라진다는 양자역학의 전제. 빛이 아니라 감지의 주체도 마찬가지.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졌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영향 주지 않고 입자 정보를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 진실.
*차원 도약 : 필자가 만든 깨달음 용어. 깨달음은 경도와 위도에 높이를 추가하는 것. 2차원 평면의 세계에서 비로소 3차원 입체의 세계로 도약하는 차원 도약이다. 이 책에서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깨달음 제1 용어다. 깨달음이란 생을 깨닫는 것, 주체가 되는 것. 그러므로 철학과 동의어다.